“남편이 암환자예요. 내가 혹시나 코로나19에 걸리면 집안은 풍비박산하는 거예요. 그래서 대문 밖에도 안 나가요. 일을 못하니 빚내며 살고 있죠. 그런데 대리운전보험료가 140만원에서 200만원으로 올랐어요. 3월16일까지 보험료 납부해야 했는데, 결국 못 냈고요.”

10년차 대리운전기사 김자영(59·가명)씨는 지난달 18일부터 일을 못하고 있다. 슈퍼전파자인 31번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의 진단 결과가 발표된 날이다. 그날 이후 대구·경북지역 확진자가 급증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A대리운전업체는 3월 초 보험료 인상을 알려 왔다. 무사고자로 분류된 김씨의 보험료는 지난해 기준 144만5천원에서 올해 194만원으로 올랐다. 대리운전업체와 보험사 계약이 갱신되는 과정에서 보험료 액수가 조정된 것이다. 지난 16일까지 연간 보험료의 25%인 48만5천60원을 내지 못한 그는 보험계약을 갱신하지 못했다. A대리운전업체에서 일을 할 수 없게 됐다는 의미다. 대리운전기사는 개인보험이 아닌 대리운전업체를 통해 단체보험을 드는데, 가입하지 않으면 해당 대리운전업체에서 일할 수 없다.

30일 <매일노동뉴스>가 대구지역 대리운전업계를 취재한 결과 대리운전기사들은 최근 급격히 오른 보험료를 감당하지 못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대리운전업체를 통해 대리운전 기사들이 드는 단체보험의 폐단이 A대리운전업체와 B보험업체의 계약 갱신기에 드러난 것이다. 대리운전업계에 관행처럼 이뤄지는 단체보험 가입 강요를 금지하고 개인보험·건당보험 등으로 보험 선택권을 넓혀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보험료 내기 위해 일 나가야”

대리운전기사는 콜 건당 수수료를 받아 생활하는 특수고용 노동자다. 콜을 잡기 위해 최소 2개, 많게는 5개의 프로그램을 이용하는데, 사용하는 프로그램 업체가 정해 주는 보험을 들어야 한다. 김자영씨가 이번에 계약을 갱신하지 못한 A대리운전업체는 대구지역에서 60%가량의 콜을 점유하는 곳이다. 김씨는 “두 달간 빚을 내 (생활비를) 썼는데 빚을 더 내야 하는 상황”이라며 “만약 보험료 50만원을 구한다고 해도 (코로나19가 잠잠해지기 전까지) 바로 일을 시작할 수도 없는 상태”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대구지역 대리운전기사들은 전례 없는 보릿고개를 견디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30일 자정 기준 대구지역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6천624명으로 전체 확진자 중 68.6%를 차지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콜수가 예전 같지 않다. 대리운전노조(위원장 김주환) 대구지부(지부장 차준녕)에 따르면 현재 대구지역에서는 대리운전기사가 오후 7시부터 새벽 5시까지 하루 10시간 꼬박 일해야 겨우 5건의 콜을 수행한다. 대리운전 기본요금 1만2천원 중 대리운전업체 수수료·셔틀버스운영비 등으로 3천700원이 빠지는 것을 감안하면 5건 콜을 소화해도 대리운전기사가 손에 쥐는 돈은 4만~5만원 수준이다. 통상 오후 8시에 출근해 다음날 새벽 한두 시에 퇴근하는 경우 벌이는 2만~3만원 수준으로 떨어진다. 대리운전기사 사이에서는 “보험료를 내기 위해 일을 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개인보험·건당 보험 도입해야”

김주환 위원장은 “개인보험의 경우 사고를 낸 사람만 할증이 붙지만, 단체보험은 사고 건수가 단체보험 가입자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며 “대리운전 기사가 원보험사에 직접 보험을 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리운전노조는 그간 ‘대리운전업체-보험중개업자-보험사’라는 삼중 구조 아래 대리운전기사가 착취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해 왔다. 차준녕 지부장은 “대리운전 단체보험의 경우 운전자 과실이 단 10%라도 있으면 30만원의 면책금을 내도록 하면서 보험료도 과다하게 책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차 지부장은 “콜 건당 보험료를 지불하는 건당 보험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A대리운전업체 관계자는 “그 부분(보험금 급격 인상)에 대해서는 저희가 드릴 말씀이 없다”며 “보험사에 직접 문의해 달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급격한 보험료 인상이 단체보험 폐단 때문이라는 지적에 “대리운전자보험이 단체보험밖에 없어서 그렇게 든 것”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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