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재훈 여행작가

베네치아는 지금 한참 홍역을 앓고 있다. 어쩌면 잠시 앓고 말 홍역이 아니라 백약이 무효한 불치병일지도 모를 몸살을 하루가 다르게 앓고 있다. 절반은 넘치는 여행객들 때문이고, 나머지 절반은 전 지구적 기후변화 때문이다.

이탈리아 여행을 계획하고, 도착지로 베네치아를 찜한 뒤, 베네치아에 관한 뉴스가 이어졌다. 베네치아 주민들이 대형 크루즈 선박들의 입항을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 먼저였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크루즈 선박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타서 도시가 수용한계를 넘어서는 게 문제인가 싶었지만, 도시의 수용한계를 넘어서는 관광객 문제는 이미 고질병이었다.

지금 문제가 되는 신종병은 그게 아니었다. 빌딩 하나만큼이나 큰 몸집의 크루즈 선박이 입출항을 위해 베네치아를 가로질러 갈 때마다 거기서 만들어진 물결이 온통 물길로 연결돼 있는 이 도시 곳곳을 물에 잠기게 한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실제 베네치아에 가서 크루즈를 눈앞에서 보면 베네치아 사람들의 염려가 그냥 염려가 아니라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거대한 욕망 덩어리처럼 보이는 크루즈가 곱게 보일 리 없었다.

이어지는 소식 역시 물난리였다. 이번에는 기후변화가 몰고 온 새로운 병증이었다. 겨울에 비가 많이 오는 도시라 그렇지 않아도 수위가 간당간당하다. 그런데 기후변화가 본격화하면서부터는 위험한 수준까지 수위가 오르기 시작하더니 올겨울에는 1966년 이후 53년 만에 가장 높은 수위를 기록하기에 이르렀다.

베네치아의 랜드마크와도 같은 산마르코 광장은 물에 잠겨 버렸고, 9세기 이후 1천200년 동안 5번밖에 침수된 적이 없다는 광장 옆 산마르코 성당조차 바닷물이 들어차 버렸다는 소식.

도시는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이런 난리통에 그 도시를 ‘관광’하기 위해 들른다는 건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었다. 주민들 걱정에, 여행자의 얄팍한 기대까지 겹쳐 날씨가 제자리를 찾기만을 바라며 짐을 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방수 덧신까지 꼼꼼하게 챙기는 내 모습이 좀 그렇다.

그렇게 한편으로는 마음 졸이고, 한편으로는 미안해하면서 비행기에 올랐고 11시간을 날아 베네치아공항에 도착했다.

성수기는 아니라서 공항은 그다지 붐비지 않았다. 공항버스로 20분 만에 베네치아 본섬까지 들어갈 수 있었고, 버스에서 내려 10분 정도 돌길에 캐리어를 끌어 숙소에 도착했다.

시실리 출신이라는 카운터 아가씨는 정말 ‘내가 가진 정보를 다 주겠다!’는 의욕을 불사르며 이런저런 얘기를 해 줬지만, 결정적으로 해지는 시간을 6시가 넘어서라고 말해 주는 실수를 범했다.

실제로는 5시면 해가 넘어갔다. 도착해서 산마르코 광장으로 가 해넘이를 보고 싶었던 내게는 엄청난 가짜뉴스였던 셈. 하지만 이게 결과적으로 나쁘지만은 않았다. 거미줄 같은 베네치아 골목을 굽이굽이 돌아 먼저 도착한 곳은 도시의 두 번째 랜드마크인 리알토 다리.

핫플레이스답게 다리는 온통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저마다 손에 스마트폰 하나씩을 들고 찍사가 돼 어둑해지는 다리를 찍느라 바쁜 모습들이었다. 다리에 도착할 즈음 벌써 해는 기울어 가고 있어서, 광장까지 가서 해넘이를 보는 일은 포기했다. 하지만 리알토 다리 위와 아래에서 지켜보는 일몰의 대운하는 광장만큼이나 아름다웠다.

운하는 주위 건물의 그림자에 가려지면서 유화 물감이라도 뿌려 놓은 듯 두터운 검푸른색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이번 여행을 핑계로 무리해서 장만한 최신형 아이폰님의 인공지능 야간촬영 능력을 동원해서 찍었더니 고흐의 그림이 따로 없다. 눈으로 본 것보다 더 환상적인 ‘사진빨’에 찍은 사람조차 당황스럽다. 찍은 채로 보정 없이 뽑아도 바로 엽서 사진이 될 지경이니 말이다.

그런 사진 같은 풍경을 옆에 끼고 운하변을 슬슬 걸어본다. 조금씩 더 어두워지고, 조금씩 더 짙어지는 운하 위로 바포레토라고 불리는 수상버스와 작고 날렵한 수상택시, 연인과 가족들을 태우고 운치를 흘리는 곤돌라가 이리저리 얽혀 지나간다.

세상 평화로움은 여기 다 가져다 놓았다는 듯 먹먹하게 어두워져 가는 분위기가 전 세계 관광객들을 몰고 오는 베네치아의 힘인가 보다. 분위기는 분위기고 하루 종일 제대로 먹은 게 없는 터라 급히 식당을 찾기 시작했다.

만국공통이겠지만 핫스팟 주변 식당은 대체로 지나치는 게 정답이다. 자릿값이 반이라고 음식 맛은 메롱한 경우가 부지기수이기 때문.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골목 안쪽에 분위기 뽐내며 자리 잡은 레스토랑에 들렀다. 꾸덕꾸덕한 카르보나라와 리소토·스파게티를 시키고 와인 한잔씩을 마시며 주위를 둘러보다 놀란 것 하나.

이탈리아라서 그런가. 모두들 제법 커다란 피자를 한 판씩 앞에 놓고 칼로 잘라 먹고 있었다. 그랬다. 이탈리아에서는 1인 1피자가 진리였다. 피자를 잘라서 나눠 먹겠다는 우리 말에 살짝 움찔하던 웨이터의 당혹스러운 눈빛은 한 이틀이 지나서야 제대로 이해가 됐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여행이 끝난 지금까지도 내게 1인 1피자는 무리니까 말이다.

여행작가 (ecocj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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