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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노동자 건강에 대한 단상김정수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 김정수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코로나19 여파로 조용히 지나갈 수밖에 없었지만 지난 8일은 세계여성의 날이었다. 이날은 세계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한 날로, 1908년 3월8일 미국의 여성 노동자들이 “빵과 장미”(근로여건 개선과 참정권)를 요구하면서 시위를 한 것에서 시작됐다.

지금은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지는 여성들의 참정권이 실현된 지 이제 겨우 100년 남짓에 불과한 것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그러한 주장이 여성노동자들에게서 시작됐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임금노동을 하는 여성들이 많아지면서 그들이 남성들과 동등한 노동자로서의 권리, 혹은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인식하고 주장하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로부터 100여년이 지난 지금 한국 사회에서 여성노동자들은 건강하게 일하고 있을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임금노동을 하는 노동자는 사회적 약자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근로조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작업환경, 불의의 사고나 질병으로 인해 노동력을 상실한 경우를 대비한 사회적 안전망을 보장하는 법률 같은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

그런데 모든 노동자들이 같은 처지인 것은 아니다. 어떤 노동자들은 다른 노동자들에 비해 좀 더 열악한 환경과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다.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와 하청노동자·특수고용 노동자·이주노동자가 그렇다. 이들에게 특별한 관심과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그런데 여성노동자들은 어떠한가. 남성노동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열악한 환경과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음에도 문제제기는 다른 이슈들에 비해 많지 않은 듯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눈의 띄지 않는 여성노동자 작업 위험요인

우선 사람들이 ‘열악한 환경과 취약한 상태’에 대해 생각할 때 전통적인 제조업의 ‘물리적 작업환경’을 위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인 듯하다. 물리적 작업환경은 눈에 보이기 때문에 이해하기 쉽다. 여성들이 물리적 작업환경이 좀 더 열악한 전통적인 제조업보다는 서비스업이나 사무직에 종사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여성노동자들이 열악한 환경과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다고 주장하면 대번에 “그게 뭐가 힘들어?” 하는 반응이 뒤따른다. 하지만 서비스업이나 사무직의 작업환경에는 직무스트레스·감정노동 같은 전통적인 제조업과는 또 다른 차원의 위험요인이 존재한다.

산업구조가 변해 가면서 이런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요인에 노출되는 노동자들이 늘어나고 있고 그 위험요인도 더 고도화돼 가고 있다. 이런 현상은 제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어떻게 클린룸에서 일하는 전자산업 노동자들에게 백혈병이 생길 수 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됐다. 그리고 수많은 여성노동자들이 전자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여성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과 취약한 상태는 일부든, 상당 부분이든 우리 사회의 양성 불평등에서 기인한 것일 수밖에 없다. 근본적인 문제제기다. 그런데 이는 매우 정치적인 이슈이므로 민감한 주제다.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어쨌든 여성노동자들이 남성노동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열악한 환경과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럼 여성노동자들의 건강과 관련된 문제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여성노동자만의 업무상질병

우선 여성이라서 생길 수밖에 없는 건강상 문제들이 있다. 방광염 혹은 신우신염·생리 불순 같은 비뇨생식기계질환이 대표적이다. 유산이나 기형아·장애아 출산과 관련된 문제들도 그렇다. 이런 문제들은 장시간 노동·직무스트레스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몇 년 전 국내에서 발생한 중요한 사건이 하나 있다. 2009년에서 2010년까지 제주의료원에 근무하는 임신 간호사 15명 중 5명이 연달아 유산하고 4명이 선천성 심장질환을 가진 아이를 출산했다. 그들은 업무관련성을 주장하며 산업재해 보상을 신청했다. 그런데 유산한 간호사들은 업무상재해로 인정받았지만 선천성 장애아를 출산한 4명의 간호사들은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했다.

근로복지공단이 선천성 장애아를 출산한 것을 산재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후 소송이 진행됐는데 흥미롭게도 1심과 2심의 판결이 완전히 달랐다. 1심은 선천적 이상을 갖고 태어난 아이를 산재보험 적용 대상으로 봐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하지만 2심은 산재보험 지급 대상이 아니라고 보고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 사건은 아직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9월에는 국회에서 선천적 태아질환 산재 인정 법제화를 위한 토론회가 열리기도 했다.

산재 유발하는 직장내 성폭력·가사노동

여성이라서 더 잘 생길 수밖에 없는 문제들도 있다. 직장내에서 발생하는 성희롱·성폭력으로 인한 신체적·심리적 문제다.

외상후 스트레스장애와 같은 심각한 정신질환을 유발할 수도 있다. 지난해 말에는 재가요양보호사·도시가스 검침원을 포함한 방문서비스 여성노동자들이 업무 중에 겪는 성희롱·성폭력 실태에 대한 조사 결과가 발표돼 충격을 주기도 했다.

남성의 참여가 다소 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가사노동은 대부분 여성들 몫이다. 여성노동자들의 부가적인 가사노동은 대표적인 업무 관련성 질환인 근골격계질환이나 뇌심혈관계질환의 유발 혹은 악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현행 업무상질병 인정기준에는 이에 대한 고려가 반영돼 있지 않다. 심의 과정에서 오히려 역으로 “부가적인 가사노동은 개인적인 사정이므로 업무 관련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식의 배제 논리로 작용하기도 한다.

몇 년 전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던 미투(Me Too·나도 피해자) 운동은 숨죽이며 지내 왔던 여성들의 권리의식을 향상시켰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인권 감수성 향상을 촉구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

여성노동자들의 건강에 대한 관심 또한 비단 여성노동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하기 위한 의미 있는 한 걸음일 것이다.

김정수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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