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하반기부터 공공기관 자회사 운영실태가 경영평가에 반영된다. ‘사회적 가치 구현’ 평가지표에 일자리 창출 항목으로 공기업은 4점, 준정부기관은 3점이 적용된다. 공공기관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이 관련 법령이나 지침에 부합하는지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모회사 경영평가를 통해 자회사 노동조건 하락을 막겠다는 방안인데 미봉책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정규직 전환 위한 자회사 전수조사했더니
종전 용역계약 때 맺은 ‘갑질계약’ 여전


25일 공공노련에 따르면 정부 관계부처 합동으로 지난 23일 ‘공공기관 자회사 운영 개선대책’이 마련됐다. 이번 대책은 정부가 2018년 12월31일 권고한 ‘바람직한 자회사 설립·운영 모델안’ 취지와 달리 공공기관 자회사가 단순 인력공급 용역회사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 데 따른 것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해 9월부터 11월까지 57개 공공기관 소속 70개 자회사를 전수조사했더니 종전 용역계약 당시 적용한 낙찰률을 그대로 적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용역계약 당시 평균 88.5%였던 낙찰률은 자회사 전환 이후에도 평균 91.7%로 소폭 상승하는 데 그쳤다. 특히 기존 용역계약을 답습하는 갑질계약도 부지기수였다. 이를테면 “자회사는 단체행동시 대체인력을 확보해야 한다”거나 “자회사 쟁의행위시 계약해지가 가능하다”같이 노동 3권 제약 내용과 “모회사 경영방침 변화에 따라 언제든지 계약해지할 수 있다” 혹은 “자회사 직원 연차휴가 의무사용을 근로계약서에 명시해야 한다” “모기관이 자회사 직원 교체 요구시 자회사는 즉시 교체 의무를 진다” 같은 조항들이다. 지난해 정부가 자회사에 대한 부당·불공정 계약에 대한 자율개선을 권고했는데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정부는 올해 상반기에 모기관의 과업지시서와 계약서를 전수조사해 시정조치하겠다고 칼을 빼들었다.

불공정 계약행태가 고쳐지지 않으면서 자회사 노동자 처우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종전 용역회사 지급비용을 처우개선에 전액 활용한 기관은 32.7%(16곳)에 불과했다. 일부 활용한 곳은 57.1%(28곳), 미활용한 곳도 10.2%(5곳)였다. 자회사 전환에 따른 임금인상 효과는 월 25만원(231만원→256만원)으로 11.4%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2018년 정부가 ‘바람직한 자회사 모델’로 제시한 경영협약 체결 기관은 46.5%로 절반에도 못 미쳤다. 상당수 모기관이 자회사를 여전히 용역업체로 취급하고 통제와 감독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100명 이하 소규모 자회사, 비영리 재단법인으로 전환 추진

이번 대책의 초점은 자회사의 안정성과 공공성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에 맞춰졌다. 정부는 모기관이 적정 자본금을 출연하거나 필수 설비를 이관해 자회사가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을 내놨다. 또 100명 이하 소규모 사업장이거나 별도 자체 수익사업이 없이 모기관 지원 사업만 하는 경우에는 주식회사(영리법인) 형태가 아닌 재단법인(비영리법인)으로 전환해 부가세 감면분을 처우개선에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또 종전 관행에 따른 낙찰률을 임의로 적용하지 않도록 했다. 예정가격을 산정할 때도 노임단가를 포함해 모든 비목에 대해 원가계산가격의 100%를 적용해야 한다. 모기관이 단가를 후려치지 않고 적합한 대가를 치러 자회사 노동자 처우개선을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자회사 선금 보증금 납부 면제와 단순노무용역 인건비는 선금 지급을 허용하도록 관련 규정도 개정할 방침이다.

이 밖에 △모-자회사 노사 공동협의회 설치·운영 △30인 이상 사업장 노사협의회 의무 설치 △노동이사제 도입 검토와 노동자 이사회 참관제 시범실시 △자회사 노동자 복리후생에 모기관 사내근로복지기금 활용(근로복지기본법 개정시)처럼 노사관계를 정립하는 내용도 눈에 띈다.

정부는 모기관이 자회사 운영을 개선하도록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관련 항목을 신설해 하반기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구체적인 평가기준과 방법을 연구용역을 통해 마련하면, 2021년 상반기 발표하는 경영평가 점수에 반영한다.

엄진령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은 “이번 대책은 모기관 경영평가에서 자회사 운영실태를 반영해 정부가 제시한 바람직한 자회사 모델로 유도하겠다는 의미”라며 “비정규직을 직접고용한 공공기관에 대한 가점은 되레 없어 간접고용 문제의 근본 해결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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