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호 공인노무사(성동근로자복지센터)

모두에게 충격이 되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우리 일상을 큰 폭으로 바꾸고 있다. 모임과 만남은 중단됐고 사람들과 식사를 하거나 악수를 하는 것도 조심스럽다. 초유의 4월 개학은 수업운영은 물론이고 입시·돌봄·노동 같은 예기치 않은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가게들은 한산해진 반면 약국 앞엔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한 사람들의 줄이 매일 반복해 이어진다. 북적이는 지하철에서 만난 서민들은 서로가 불안한 존재가 됐다. 하루에도 몇 번씩 경보음을 울리는 안전안내문자의 확진자 안내는 소중한 정보가 되면서도 점점 반경을 조여 오는 공포로 느껴지기도 한다. 세상이, 삶이 바뀌고 있다.

세상이, 삶이 바뀌는 것은 노동이 바뀌는 것이기도 하다. ‘사회적(물리적) 거리 두기’를 위해 출퇴근 시간을 조절해야 하고, 업무공간과 일의 방식을 변경해야 하기 때문이다. ‘잠시 멈춤’을 위해 일의 양과 노동시간을 조절해야 하며 연기된 개학으로 인해 일터와 삶터에서의 시간을 조율해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노동은 아직 코로나19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정부의 ‘사회적(물리적) 거리 두기’와 ‘잠시 멈춤’은 사업장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밀집 공간에서 불안한 마음을 쓸어내리며 전화응대를 하던 콜센터 상담사들은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할 수 없었고 결국 여기저기 콜센터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서울 구로구 콜센터에서는 100명이 넘는 확진자가 나왔으며 대구에서도 60명의 콜센터 상담사가 확진판정을 받았다.

정부는 부랴부랴 상담시 마스크 착용, 칸막이 설치, 상담사 간 간격 확대, 재택근무 같은 대책을 내놨지만 이런 대책들이 하루 이틀 사이에 실행될 리 만무하다. 상담사들은 콜센터119 밴드를 통해 마스크 착용 외에 별다른 변화가 없다며 여전히 불안해하고 있다. 영세한 규모의 콜센터들은 상황이 어떤지 파악조차 힘든 지경이다.

다른 이들의 사회적 거리를 메우기 위해, 그리고 생계를 위해 ‘잠시 멈춤’을 할 수 없었던 택배 노동자는 결국 과로로 생을 마감했다. 동네 마트를 꺼려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온라인 택배물량이 폭증한 것으로 보인다. 생을 마감한 노동자는 평소 가족들에게 ‘밥도 못 먹고 화장실도 가기 어렵다’고 했다고 한다. 망인 외에도 지금 택배노동자들은 늘어난 물량에, 새로 도입되는 새벽배송으로 과로에 시달리고 있지만 대부분 특수고용직이라 노동법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불가피하다는 휴업은 노동자들에게 무급휴직과 강제 연차휴가 사용으로 전가됐다. 직장갑질119에는 매출이 급감한 웨딩홀에서 부서 전원을 모아 놓고 일방적으로 무급휴가 사용 동의서를 받았다는 등 무려 360건 넘는 무급휴가·연차 사용 강요 상담이 쇄도했다. 무급휴가나 연차 사용 강요를 거부하는 노동자에게 회사는 사직을 종용한다고 한다.

그 밖에도 재택근무·순환근무를 채택했다던 대기업 관리자들은 사무실에서의 일을 멈췄지만 그들이 관리하던 공장은 멈추지 않았다. 휴업수당 보전을 포함해 노동자와 기업을 지원한다던 정부 대책들은 손님이 줄어든 식당 아르바이트 청소년에게 미치지 못했다. 재난은 사회적 약자에게 더 가혹했고, 재난의 무게는 아래로 아래로 흘러내렸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노동의 위험은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 같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2천500만명이 실업자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보다 심할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항공업에서는 이미 ‘코로나19 실업’이 시작됐고, 병원·학원·식당 업종에서도 유사한 상담사례들이 접수되고 있다. 재택근무 활성화 같은 유연근무제는 노동자의 시간과 임금을 더 불안하게 하고 메커니컬 터크(Mechanical Turk) 같은 플랫폼 노동을 확산시킬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4차 산업혁명 흐름까지 더해지면 전통적인 노동관계는 대부분 일터에서 사실상 해체될 수도 있다.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보다 그로 인한 사회의 변화와 불평등, 빈곤의 심화가 더 큰 위기가 될 수도 있다.

이 위기에 대한 해법은 기존 대책의 개선 정도로는 부족하다. 아니 부족한 게 아니라 결코 막아 낼 수 없다. 우선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 문제를 더 이상 이윤이 기준인 사용자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노동자가 직접 참여해 결정할 수 있도록, 대규모 실업에 대비해 (우리가 실업급여라 알고 있는) 구직급여를 실업급여로 전환해 노동자의 생계를 보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전통적인 산업에서 밀려나는 노동자들도 과학문명의 이익을 고루 누릴 수 있도록 (예를 들어 기본소득 같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상상과 논의가 필요한 시기다.

이런 와중에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 예외 확대와 대형마트 휴업 제외 등 일부 탐욕적인 경영계 주장에 휘둘리면 안 된다. 이는 장시간·밀집 노동이 코로나19를 확산하고 있는 현 상황에 아무런 학습도 맥락도 없는 민원일 따름이다.

최근 5년여마다 닥친 세계적 감염사태가 있었지만 지금 상황은 경제체제와 과학문명·생태·인류 삶의 방식이 중첩돼 발생하고 있는 본질적 위기상황이라는 진단이 호소력을 얻고 있다. 이는 어쩌면 우리의 생산방식과 노동에도 본질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일 수도 있다.

아직 그 누구도 답은 모른다. 살아남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할 시간이 온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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