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서희 청년유니온 기획팀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한국 사회가 멈췄다. 그러나 멈춰 버린 사회 이면에는 그 멈춤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멈추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가려진 노동’이 이번 사태를 통해 드러났다.

한 콜센터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감염되면서 그들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언론은 주목했고 여론은 이들을 질타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고객과의 통화가 주업무인 이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일부 고객들은 마스크를 쓰고 얘기하면 잘 들리지 않는다고 항의할 것이다.

콜센터 노동자들은 스스로를 ‘닭장의 닭’이라고 표현한다. 1평도 채 되지 않는 업무 공간은 얇은 가벽을 사이에 두고 다닥다닥 붙어 있다. 방음시설은 꿈꿀 수도 없다. 건물 한 층에는 수백 명이 빽빽하게 앉아 근무한다.

콜센터는 모든 일이 디지털로 처리되는 세상에서 사람 대 사람으로 고객을 도와줄 수 있는 유일한 창구다. 특히 코로나19가 전국적으로 유행하는 현재 상황처럼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고 인터넷 접속이 늘어날수록 이곳 노동자들은 쉬지 못한다. 무엇보다 필요한 노동이고 누구보다 필요한 노동자였으나 이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전화기 한 대와 감정소모뿐이었다.

배달노동자 역시 ‘사회적 거리 두기’를 가능하게 하는 숨은 공신이다. 한국의 비교적 성공적인 ‘사회적 거리 두기’ 캠페인 이면에는 이례적으로 발달한 배달산업이 있다. 인터넷만 연결돼 있으면 원하는 물품을 원하는 시간대에 받을 수 있다. 주문한 즉시 출고돼 다음날 바로 받아볼 수도 있고 밤 11시까지만 주문하면 다음날 새벽에도 받아볼 수 있다. 최근 코로나19 확산과 함께 배달 물량이 급증하면서 많은 배달노동자들이 적절한 휴식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일감의 폭발적 증가는 이들의 저임금과 얽혀 휴식권을 박탈하고 있다.

비정규 노동자는 감염병 확산에서도 차별을 받아야만 할까. 지난 2월28일 확진자가 발생한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는 정규직 노동자에게 방진마스크를 지급한 반면, 사내하청 비정규 노동자에게는 제대로 지급하지 않거나 방한대를 지급했다. 사측은 정규직 노동자와 사내하청 비정규 노동자가 모두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음에도 비정규 노동자에게만큼은 마스크를 지급할 의무가 없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자본은 모두가 고통의 가능성을 부여받은 감염병 앞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선을 그어 약한 자들의 존엄을 무너뜨렸다. 비정규직 노동은 기업 이윤 증대를 위해 만들어진 노동형태지만 이들이 없으면 기업이 운영될 수 없는 아이러니한 현상을 보이고 있다. 필요한 존재지만 그들에게 그만큼의 정당한 대우는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한국 사회가 바쁘게 돌아가는 동안 조용하고 빠르게 그 밑바닥을 지탱해 줬던 노동들이 코로나19 확산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렇게 드러난 ‘가려진 노동’의 구조적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이들이 무너지면 한국 사회 전반이 무너진다는 사실을 자각해야만 한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온갖 자원과 행정력을 동원하는 적극적인 자세는 가려져 왔으나 드러난 이 노동자들이 겪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위기 속에서 빛나는 한국 사회의 대처능력이 노동자를 향해서도 펼쳐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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