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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후가 불안한 국가재정
▲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전대미문의 경제침체로 세계 각국이 허둥대고 있다. 치료제가 없는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을 막으려 인구이동을 제한하다 보니 경제가 엉망이 됐다. 바이러스 치료제는 연말에야 나올 수 있다고 한다. 그때까지 이런 상태를 유지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사회적 거리 두기’ 방역을 그만둘 수도 없는 오도 가도 못하는 상태다.

세계 각국은 경제침체를 완화하기 위해 대규모 재정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최근의 재정정책은 큰 규모와 함께 현금을 국민에게 직접 지급하는 방법이 고려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애초 경기부양 목적의 감세정책을 시행하려 했다. 하지만 여러 경제학자들이 감세가 무용하다고 비판하자 약 30조원(250억달러) 규모의 현금을 성인에게 지급하겠다고 정책을 변경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개혁진영과 차기 대선후보들이 공격적 재정확장과 재난기본소득으로 불리는 현금지급을 요구하고 있다. 김경수 경남도지사와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모든 국민에게 100만원을 현금 또는 소비쿠폰으로 주자고 제안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여러 경제학자들이 정부의 대규모 재정지출을 요구하는 이유는 이번 사태가 보통의 경제위기와 다르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심각한 경제위기는 대부분 금융 혼란에서 발생했다. 2001년 닷컴버블, 2007년 서브프라임 사태만 봐도 그랬다. 그런데 이번 위기는 경제 내적 논리와 전혀 무관한 바이러스 방역으로 인한 소비와 생산 급감이 원인이다. 총수요정책으로 불리는 전통적인 금리·물가·조세·투자 등의 경제정책은 의학적·물리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경제학자들은 복잡한 정책이 아니라 방역이 끝날 때까지 경제주체들이 버틸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최후 지불자로서 역할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이 방역기간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으면, 그리고 노동자가 실업과 빈곤으로 노동능력을 상실하면 방역이 끝나도 경제가 회복되기 어렵다. 정부는 재무위기에 빠진 기업이 사업과 고용을 유지할 수 있도록 대출을 제공하고, 실업보험을 확대하고 사회보장제도가 닿지 않는 시민에게 생계유지비를 지원해야 한다. 빠른 지원이 필요한 만큼 관련 제도가 잘 구축돼 있지 않다면 정부가 현금을 직접 지급하는 것도 좋다.

그런데 이런 주장의 결정적 결함은 현재의 경제침체를 방역으로 인한 소비·생산 감소로 너무 단순하게 여긴다는 점이다. 바이러스 방역이 위기의 방아쇠를 당긴 것은 맞지만, 실은 세계경제는 그 이전부터 심각한 기저질환을 앓고 있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바이러스가 기저질환을 악화하면 바이러스를 치료해도 환자는 낫지 않는다. 기저질환 악화로 건강이 더 나빠진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세계경제는 이미 코로나 사태 이전부터 이윤율 하락으로 표현되는 구조적 위기를 심각하게 겪고 있었다. 경제학계에서는 이를 2010년대의 생산성 둔화라는 주제로 토론해 왔다. 최근 경제가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던 이유는 재정적자와 양적완화로 인한 착시효과였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쏟아부은 돈으로 미국에서는 소수 ICT기업이 주식시장 붐을 일으켰다. 중국에서는 국영기업의 엄청난 손실을 덮었으며, 일본에서는 민간소비와 저축을 늘렸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로 이 모든 것이 거품이었음이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주식시장은 폭락하고 있고, 세계적으로 기업부채 위기가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을 엄습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코로나 사태가 끝나도 ‘V자’ 반등이 아니라 ‘L자’ 침체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4차 산업혁명 담론과 주식시장 열풍으로 잠시 세간의 관심에서 사라졌지만, 2010년대 경제학계를 달궜던 이슈는 다름 아닌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 이론들이었다. V자 경제회복 경로에서는 정부가 최후 지불자로 역할하면 좀 더 빠르게 경기를 회복시킬 수 있다. V의 저점은 낮아지고 폭도 좁아진다. 하지만 세계경제가 L자 경로로 향하면 정부가 최후의 지불자로서 역할하며 쌓았던 부채가 국민경제 전체의 발목을 잡는다. 정부가 최후의 대부자로서 민간에 장기간 자금을 공급해야 하는데, 코로나19 사태 기간에 늘어난 부채로 대부해 줄 수 있는 여력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세계 각국은 세계 금융위기로 인해 부채가 크게 증가한 상태였다. 코로나19 대책은 세계 금융위기만큼이나 정부 적자를 키울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부채도 크게 증가했다. 이런 상태에서 경제침체가 이어지면, 민간과 정부가 동시에 위기에 빠지며 경제가 극심한 혼란에 빠질 수 있다.

한국의 경우 더욱 이런 위험이 크다. 정부가 재정적자를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낮아서다. 한국 원화는 달러·유로·엔 같은 세계 여러 나라가 사용하는 기축통화가 아니다. 현대 관리통화제도에서는 통화가치가 정부 지불능력 또는 정부에 대한 금융시장 신뢰로 유지되는데, 비기축통화를 사용하는 국가는 그 신뢰의 기본수준이 기축통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부채무가 증가하면 당연히 지불능력과 신뢰가 더 빠르게 하락한다.

혹자는 이런 사정을 무시하고 한국의 국가채무가 매우 낮다며, 지금은 마음껏 적자를 늘려도 된다고 주장한다. 선진국 중 기축통화를 사용하지 않는 나라와 한국을 비교해 보자. 국제통화기금(IMF)의 2019년 추정치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채무비율은 대만 34%, 스위스 39%, 스웨덴 37%, 노르웨이 40%, 이스라엘 62%, 오스트리아 42%, 한국 40%다. 이 중 5년 사이 가장 빠르게 이 비율이 증가한 나라는 노르웨이와 한국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5년 내 가장 이 비율이 높아질 나라는 이스라엘과 한국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이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다. 한국의 국가채무는 안심해도 되는 상황이 아니다.

코로나19로 취약계층 지원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필요한 곳에 정부 지원을 집중하자. 적자를 지나치게 키우는 무차별적 현금살포보다는 현재 제도를 최대한 활용하고, 정책적 정밀성을 높여 필요한 곳에 빠르게 지원이 이뤄지도록 하자. 그리고 우리는 코로나 이후 위기도 준비해야 한다. V자 회복을 기대하다 낭패를 겪으면, 코로나보다 더 큰 피해를 노동자가 입을 수 있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jwhan77@gmail.com)

한지원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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