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세화 변호사(서비스연맹 법률원)

봄!

아직 그렇게 불러 보기에는 어색한 2020년 2월의 어느 날 아침.

모 택배회사 위탁대리점 소속 택배노동자들의 쟁의기간 중 원청사인 택배회사가 자신의 직영기사를 이용해 쟁의행위로 중단된 배송업무를 대신 수행하도록 한 행위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43조(사용자의 채용제한)에 위반된다는 법원의 판단이 있었습니다. 그곳은 일주일 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속출한 지역에 포함된 곳이었습니다.

#1. 아직 그 무렵에는 28명이었습니다. 한국의 코로나19 확진자는 흔히들 특정 종교의 여파라고 하는데, 그로부터 일주일여가 지나자 대구·경북지역에서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한국 사회는 불안과 우울의 늪으로 빠져들기 시작했고 ‘사회적 거리 두기’캠페인은 수천만의 ‘섬’을 만들었습니다.

#2. 아직도 어떤 이들은 사용자를 직접 대면하지 않고 전산시스템 등을 이용해 외부에서 일하거나 영업적 속성을 지닌 업무를 한다면, 습관적으로 근로기준법이든 노조법이든 ‘노동자’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심지어는 헌법 조문(헌법 119조1항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까지 인용하며 “자율과 창의가 중시되는 업무를 수행하는 자는 ‘상인’이지 ‘노동자’가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와 다른 판단을 하면 “헌법규정을 무시하는 결과”에 이르게 될 수 있다고 ‘위협(?)’하기까지 합니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영화감독조차 “어느 나라에나 가난한 사람과 부유한 사람이 있고, 그 사이에는 가파른 계단이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헌법 10조·11조·32조·33조·34조·119조2항…. 많은 헌법 조항, 노조법을 비롯한 여러 법률을 대학 강단 등에서 배우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법은 각자의 존재이유가 있고 생겨나게 된 역사적 배경이나 필요 정도는 어렴풋이 알면서 살아갑니다.

#4. 수많은 법이 그 존재이유를 뽐내고 있음에도, 이 우울한 시기를 관통하면서 보건과 방역에 있어서도 ‘가파른 계단’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목격했습니다. 정부 각종 지원대책의 그물에서 벗어난 사람들. 이주노동자·장애인이 있습니다. 또 ‘자율과 창의’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개인사업자’라고 칭하는 대리기사·학습지교사·택배기사·배달기사 등 노동자들입니다. ‘도심 집회 금지’라는 위하를 뚫고 기자회견을 합니다. 매일같이 ‘국민’을 직접 대면하는 업무임에도 마스크나 손세정제를 구하기 어렵다고. 우리의 ‘안전’과 ‘보건’과 ‘생계’를 책임지는 사용자와 교섭을 하고 싶다고.

기나긴 이 ‘우울증’의 터널을 지나면, 특정 종교 신자들의 집단감염으로 누구보다 큰 고초를 치른 지역의 법원에서 항소심 재판이 열립니다. 언젠가는 텅텅 비지 않을 기차를 타고, 하루 종일 운전하지만 최저임금에 근접하는 기본급을 받아 온 택시노동자를 만난 후 우리는 법정문을 열고 걸어 들어가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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