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강연 공인노무사(정의당 비상구)

임금은 자본주의 체제 정의 문제

“대표노무사의 보수는 직원 임금의 3배를 넘지 않는다.”

사회적기업 컨설팅을 주로 하는 동료 공인노무사의 경영철학이다. 더 많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 임금 쥐어짜기가 통용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에 대한 욕망을 참아 내기란 고행에 가까운 행위임에도 그의 생각과 실천은 확고하다. 반면 CJ제일제당 대표이사 임금은 최저임금의 469배, 삼성전자 회장 임금은 372배다. 금융회사 최고경영자 평균임금도 최저임금의 50배 이상이고, 100배 이상도 10명이다. 342개 공공기관장 평균연봉은 최저임금의 8.9배, 국회의원 보수는 최저임금의 7.3배다.

전체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월 250만원을 못 벌고 있는 현실에서 민간기업·공공기관·금융기관의 최고경영자들이 수십 배에서 수 배가 넘는 임금을 받는 것은 성과와 능력에 따라 임금을 받는 시장경제라 하더라도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임금 불평등이 고착화된 사회에서는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성장도 사회통합도 보장할 수 없다.

“돈 많이 벌어서 비싼 음식 먹는 것 누가 탓합니까. 그런데 그 옆에서 굶고 있단 말이죠. 옆에서 굶고 있는데 암소 갈비 뜯어도 됩니까? 암소 갈비 뜯는 사람들 불고기 먹으라 이거예요. 그러면 옆에 있는 사람 라면 먹을 수 있단 말이에요.”

고(故) 노회찬 의원의 말씀은 여전히 선명하다.

최고임금제(살찐고양이법)는 불평등 해소의 출발점

심각한 임금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최고임금을 최저임금과 연동(국회의원 5배-공공기관 7배-민간기업 30배)하는 ‘최고임금제’를 도입해야 한다. 최고임금제는 독일·프랑스 같은 주요 선진국에서 기업가의 탐욕을 제어하기 위해 몇 년 전부터 논의되고 있는 제도다. 일명 ‘살찐고양이법’으로 알려져 있다.

헌법 119조2항은 국민경제의 성장뿐만 아니라 적정한 소득의 분배,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 남용 방지, 경제주체 간 조화를 통한 경제민주화를 위해 국가의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 권한을 보장하고 있다.

이 같은 헌법 조항에 비춰 볼 때 최고임금제는 임금 불평등 해소를 위해 도입해야 할 최소한의 장치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20대 국회에서 법안을 발의했지만, 거대 정당들의 외면으로 심사조차 하지 못했다. 그사이 부산·경기·창원·전북 등 지방자치단체에서 공공기관 최고경영자의 보수를 제한하는 조례가 만들어진 것은 그나마 성과이며 진전이다. 이제 국회가 응답할 차례다.

미국 노동 전문기자 샘 피지개티는 그의 저서 <최고임금>에서 최고임금 실현을 위한 강력한 수단으로 ‘공공지갑’(public purse)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현실경제는 민간부문과 공공부문이 교차하고, 민간기업은 정부 차원의 지원이나 공공사업의 수주 없이 자생적으로 운영되기 어렵다. 때문에 공공자금이 들어 있는 지갑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다.

최고임원 보수를 직원 임금보다 25배나 50배·100배 이상 지급하는 기업에는 정부 사업계약이나 지원금·세금 우대가 제공되지 않는다고 가정해 보자고 한다. 오늘날 정부가 환경이나 젠더문제 등을 갖고 있는 기업과는 계약을 하지 않거나 페널티를 주는 것처럼 임금격차를 기업의 주된 평가로 삼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대안기업에 도움을 주고, 소득격차를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몽상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정치권력의 ‘의지’와 유권자의 ‘선택’


“싹 다 갈아엎어 주세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조리 싹 다~”

신인 트로트 가수 유산슬은 사랑에 재개발이 필요하다고 노래했다. 이젠 정치에도 재개발이 필요하다. 지난 5년간 당 노동담당자로서 지켜본 국회 모습은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바람을 온전히 담아 내지 못했다. 노동자 서민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만한 법안일수록 오히려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폐기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이 되는 당과 국회의원이 다수파가 돼야 한다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 시간이었다. 지금 당장 판을 갈아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를 교체하지 않으면 요원한 일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사회가 평등하게 노동이 아름답게 민중이 주인되게. 가난한 보통 사람들의 삶을 바꾸고, 거침없는 대개혁으로 불평등과 기득권을 타파하는 정치권력이 필요하다. 이런 정치권력의 ‘의지’를 만드는 것은 유권자의 ‘선택’이다. 노동자 서민의 정당과 미래로 나갈 것인가, 수구 기득권 동맹세력과 반동의 시간으로 회귀할 것인가.

우리는 행복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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