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석호 노동운동가

칼럼에 그림이 붙었다. 그렇다. 이번 칼럼은 그림에 관한 얘기다. 비정규직 청년작가 김동희에게 부탁해서 만든 그림이다. 이제석 광고연구소의 세계인권선언 65주년 기념 인권캠페인 작품에서 착안했다. ‘인권을 보호합시다’라는 문구의 설치작품이었다. 타인의 인권을 밟고 올라서서 인권을 부르짖는 기현상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사회적 반향이 있었다. 그 작품의 문구를 ‘비정규직 차별을 철폐합시다’로 바꾸고 펜화로 그렸다.

그림을 보았는가. 어떤 느낌이 들었는가. 그림을 본 시간이 1초였나, 3초였나, 5초였나. 만약 10초 이상 길게 봤다면, 대체로 심경이 복잡했을 것이다. 그림에서 언뜻 떠오르는 상황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위에 올라선 이가 주로 정규직이겠지만 비정규직도 있다. 아래 웅크린 이는 정규직도 있다. 재벌사 원청 비정규직과 2·3·4차 하청 정규직의 처지를 비교하면 된다. 그림 주인공이 둘 다 비정규직일 수도 있다. 올라선 이는 교수·언론인·정치인, 그리고 평범한 국민일 수도 있다. 성찰의 책임을 일부 정규직에 떠넘기려고 만든 그림이 아니다. 운동과 정치와 사회가 책임을 함께 짊어지고 극복하자는 의미를 담은 그림이다.

인권작품사진을 비정규직으로 응용해서, 노조간부 교육을 해 본 적이 있다. 파워포인트 화면이 뜨자 몇몇 간부 입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노동운동이 이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질문을 던지고 강의를 이었다. 노동운동의 성찰과 사회연대전략을 대안으로 주장했다.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던 때는 그랬다고 치자. 그러나 이제 세상이 다 알고 있다. 어찌해야 하나. 당연히, 그리고 빨리, 함께, 개선해야 한다.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특히 노동조합 활동가와 간부들 모두 그렇게 얘기한다. 그런데 석연치 않다. 뒤에 한마디가 따라붙는다. 조합원이 반대해서 안 된다는 핑계와 변명 말이다.

정녕 그런가. 정말 조합원 때문인가. 2018년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와 기아차지부는 원청과 하청의 임금 격차를 줄이려고 하후상박 임금연대전략을 구사했다. 현대·기아차 임금은 평균 4만5천원 인상됐고, 115개 협력사 임금은 5만6천100원 올랐다. 같은해 금융노조 KB국민은행지부도 하후상박을 실현했다. 임금을 2.6% 인상했는데, 저임금직군 임금은 5.2% 인상했다. 이듬해에는 금융노조 산하 모든 은행에 하후상박을 적용하는 협약을 체결했다. 2019년 부산지하철노조는 통상임금 소송에 따라 발생할 임금상승분 300억원과 근로기준법 개정에 따라 확대되는 추가 휴일수당 70억원 등 370억원을 내놓았다. 공공기관 임금인상 가이드라인 1.8%도 0.9%로 양보했다. 그렇게 해서 540명의 신규인력을 채용하는 고용연대를 실현했다.

사회연대전략이 안 되는 책임을 조합원에게 떠넘기는 이에게 묻는다. 2018년의 현대차·기아차 조합원과 2019년의 금융노조 조합원, 부산지하철노조 조합원은 별나라에서 온 조합원인가. 그들은 성인군자고 다른 조합원은 시정잡배인가. 이 노동자나 저 노동자나 비슷비슷한 수준으로 사고하는 같은 노동자 아니던가.

조합원 일부가 반발하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조합원을 설득하고 참된 노조로 만들어 가는 것은 누구 책임인가. 그러려고 활동하고 간부도 되는 것 아닌가. 욕먹기 싫고 귀찮아서 안 하는 책임을 조합원에게 떠넘기지 말자. 목숨 걸어도 될까 말까 하는 노동해방까지 주장하면서 그러는 것은 비겁하다.

이 그림, 저작권이 없다. 노동운동과 시민운동과 정치 등 사회 곳곳에서 활용하라고 만든 그림이다. 이 그림이 필요 없는 세상을 빨리 이루자는 취지로 만든 그림이다.

노동운동가 (jshan896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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