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과 국민을 보면 자괴감이 든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일에 과학기술 전문성과 역량으로 뒷받침해야 하는데 우리는 평소 그런 준비를 하지 않았다.”

정부 출연연구기관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12일 한숨을 내쉬었다. 한국화학연구원 등 10개 출연연구기관이 참여하는 신종 바이러스 융합연구단은 지난달 17일에서야 질병관리본부에서 코로나19 표본을 넘겨받았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감염병연구센터는 같은달 21일 표본을 받았다. 코로나19 진단과 치료 후보물질을 개발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중국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발견되고, 올해 1월 중순 우리나라에서 첫 확진자가 발생한 뒤 한참이나 지난 시점이다.

우리나라 과학연구를 선도해야 하는 출연연구기관이 코로나19 사태에서 뒷북을 치고 있는 원인은 무엇일까. 공공연구노조는 출연연구기관이 적용받고 있는 연구과제중심 운영제도(PBS 제도)에서 원인을 찾는다. 이 제도에 따라 출연연구기관은 인건비·연구비의 상당 부분을 정부 지원이 아닌 자체 사업으로 충당하고 있다. 정부가 발주하는 외부수탁 과제를 수행한다. 정부 발주 과제를 잘 이행하고 자체사업으로 수익을 내야 기관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노조 관계자는 “다른 연구기관과 경쟁해 수탁과제를 따오는 것이 출연연구기관의 최우선 과제이고, 해마다 살림살이를 걱정하는 처지여서 돈이 되지 않는 연구를 하기 쉽지 않다”며 “출연연구기관은 코로나19와 같은 국가적 재난상황을 극복하거나 대비하기 위한 역할을 주된 임무로 삼기 어렵다”고 말했다. 2월부터 시작한 출연연구기관의 코로나19 연구에 대해서도 비관적으로 예상했다. 단기간에 성과를 내야 하는데 급조된 팀으로 가능하겠냐는 것이다.

노조는 출연연구기관이 공공성 목적을 달성·수행하기 위해서는 운영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노조는 “정부는 출연연구기관이 공공적 역할과 사회적 책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공공성을 우선에 두고 기관평가를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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