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호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 울산사무소)

대상판결 : 서울중앙지법 2020. 2. 6. 선고 2016가합524550·2016가합553442(병합) 판결


컨베이어벨트에서 작업하는 직접생산공정
컨베이어벨트에서 작업하지 않는 간접공정


이른바 간접공정을 직접공정과 다르게 볼 수 있는지에 대해 서울중앙지법 41민사부는 ① 간접생산공정은 실제 업무수행 과정에서 시·종업시간, 휴게시간, 연장 및 휴일근무시간의 근무시간 등 근로조건의 설정·관리 방식이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한 직접생산공정과 크게 다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피고가 ‘사양식별표’ 내지 ‘PDI 정비지침서’ ‘보수작업 작업표준서’ 등을 통해 수행에 필요한 지시를 하는 등의 지휘·명령권을 보유·행사한 점 ② 특히 생산관리업무의 경우 컨베이어벨트의 생산 일정에 맞춰 적시에 조립부품 등을 제공해야 하고, 수출선적업무의 경우 역시 컨베이어벨트를 활용한 피고의 생산물량에 직·간접적으로 좌우될 수밖에 없는 등 컨베이어벨트의 생산속도 및 일정에 연동돼 이뤄지게 된 점 ③ 간접생산공정을 담당하는 사내협력업체들도 피고가 정한 표준 TO에서 정해진 인원을 해당 작업에 투입해야 했고, 피고의 필요에 의해 담당 공정 또는 업무수행 방법이 변경되기도 한 점 ④ 피고는 일의 결과가 아닌 사내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의 근로시간의 양에 따라 월별 기성 도급금액을 지급하는 한편, 앞서 본 직접생산공정과 마찬가지로 사양일람표·사양식별표·서열 모니터·PDI 정비지침서 등을 통해 해당 업무 수행에 필요한 업무지시를 하는 등의 지휘·명령권을 행사한 반면, 사내협력업체가 스스로 독자적인 지휘·명령권을 행사했다는 정황은 찾아보기 어려운 점 ⑤ 피고는 간접생산공정의 업무를 담당했던 사내협력업체들을 선정하는 과정에서도 입찰 등의 방식으로 전문성·기술력을 심사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피고의 근로자들이었던 사람들이 대표로 있거나 업체 대표자가 기존에 피고의 사내협력업체를 운영한 경력이 있는 등 피고와 일정한 관계가 있는 사내협력업체들과 이 사건 도급계약을 체결했고, 이 또한 인력의 안정적 공급과 효율적 관리에 치중한 결과로 보이는 점 ⑤ 해당 원고들의 담당 업무는 피고에 의해 구체적이고 세분화돼 정해졌고, 작업 소요시간에 따른 시간당 생산 대수, 세부업무별 투입인원 공수, 필요인원 등을 피고가 주도해 결정한 점, 피고와 현대차 노조가 단체협약에 의해 사내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의 임금인상 등에 관한 합의를 하면, 이 합의가 ‘사내협력업체 도급계약 조건 개선’으로 이어지고 이에 따라 사내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의 임금이 결정되는 점, 사내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에 대한 격려금 지급 여부 등에 관한 결정권을 피고가 행사하고, 사내협력업체는 지급금액을 임의로 조정하거나 독자적으로 지급 여부를 결정할 수 없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사내협력업체는 인력공급 역할만 하는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근거로 현대자동차와 이른바 간접공정에 근무하는 비정규직 근로자들 사이에 파견근로관계가 존재한다고 판시했다.

결국 이러한 판례의 판시는 컨베이어벨트에서 직접 업무를 수행하지 않더라도 컨베이어벨트에 밀접하게 연동돼 현대자동차의 통제 아래 있고, 현대자동차가 서열 모니터·PDI 지침서 등을 통해 지휘·명령을 비정규직 작업자들에게 관철했기 때문에 불법파견 관계가 성립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줬고, 이를 통해 컨베이어벨트가 그 자체가 아니라 컨베이어벨트가 표상하는 현대자동차의 생산시스템에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편입됐는지 등의 근로관계의 실질에 주목해 파견 법리를 전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판결이다.

2차 업체 소속의 경우

이른바 간접공정을 직접공정과 다르게 볼 수 있는지에 대해 서울중앙지법 41민사부는 ① 특정 업체들 사이에 ‘근로자 파견계약’이 존재하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도 형식적인 계약서의 작성 여부보다는 해당 업체들 사이에서 근로자가 제공하는 근로의 실질적인 경위와 내용이 검토돼야 하는 점 ② 먼저 피고보조참가인에 관해 보건대, 피고보조참가인이 취득한 도급대금이 장비대여료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보이지 않고, 오히려 피고와 피고보조참가인 사이에 작성된 이 사건 도급계약에 의하면 하도급의 조건으로 ‘피고와 사전 협의를 통해 동의를 얻을 것’을 명시하고 있는 바, 피고보조참가인은 피고의 동의하에 피고로부터 도급받은 업무를 2차 사내협력업체에 하도급한 것으로서 피고는 2차 사내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로부터 근로를 제공받게 된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인식하고 있었던 점, 피고와 피고보조참가인 사이에 체결된 이 사건 도급 계약과 피고보조참가인과 2차 사내협력업체 사이에 체결된 도급계약은 사업장명·대표자 성명을 제외하고 도급작업명·도급금액 등 계약의 내용에 아무런 차이가 없는 점, 피고보조참가인은 피고의 사업장에 별도의 사무실조차 갖추고 있지 않았으며 작업 수행과 관련해 자체적으로 인력을 조달하지도 않은 점 ③ 2차 사내협력업체가 담당한 업무는 피고 소속 정규직 근로자 또는 피고와 직접 이 사건 도급계약을 체결한 사내협력업체가 수행하던 업무와 동일했던 점 ④ 2차 사내협력업체는 피고의 사업장에 소속 근로자들을 파견했고, 피고가 이들 2차 사내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을 사용해 자동차 생산 등 업무를 수행하도록 했을 뿐, 피고보조참가인이 2차 사내협력업체들을 관리하거나 지휘·명령권을 행사하는 등으로 업무수행에 관여했다는 사정을 찾아보기 어려운 점[피고와 피고보조참가인은 피고보조참가인이 자체 제작한 WEB-JIS(웹지스) 정보에 의해 업무가 이뤄진 등 피고보조참가인이 실질적인 역할을 했다는 취지로 주장하나, 웹지스 정보는 피고가 제공하는 서열정보를 재가공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을 근거로 2차 업체 소속의 원고들도 현대자동차와 사이에 파견 근로관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즉 계약의 형식보다 근로관계의 실질을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근로관계 소송의 대원칙에 충실했고, 비록 현대자동차와 하청업체 중간에 별개 사업자가 끼어들고 일부 역할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본질적으로 원청의 지시를 전달하는 역할에 머무른다면 파견근로관계의 성립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으로 유사한 소송에서 기준이 될 수 있는 의미가 있는 판결이라고 생각된다.

나가며

불법파견 소송이 여러 산업 분야에서 거듭 제기되다 보니 원청 및 하청업체 사용자는 여러 가지 수단을 동원해 근로관계의 실질을 위장하고 파견이 아닌 도급에 해당한다고 강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근로관계의 실질에 입각해 원고들과 현대자동차의 근로관계의 본질을 밝혀냈다는 점에서 대상판결의 의미는 매우 크다고 할 것이다. 나아가 2차 업체와 관련해 현대자동차가 실질적으로 사용했음에도 단지 2차 사내협력업체들과 명시적인 계약 체결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현대자동차에 사용사업주로서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본다면, 실질적으로는 위법하게 근로자를 파견받아 사용하면서도 제2의 사내협력업체를 끼워 넣는 방식으로 파견법 적용을 손쉽게 회피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게 됨으로써, 파견근로자의 상용화와 장기화 방지라는 입법취지를 훼손하는 결과에 이르게 된다는 재판부의 판시가 이 판결의 핵심 의미를 잘 지적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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