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연경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시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자 정신없이 돌아가던 쳇바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많은 기업이 재택근무를 실시하거나 휴업을 하고, 국가 시스템도 일시 정지됐다. 필자가 소속된 사무실만 해도, 지난주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회의가 서면회의로 대체돼 구술심리가 제한되고 노동위원회 심문일정도 기약 없이 미뤄졌다. 덕분에 일이 좀 줄었지만 내 월급은 정상적으로 나온다. 노무사 업이 노동집약 산업이라거나 정신질환이 노무사의 직업병이라는 등 스스로 직업 비하적인 생각을 많이 했지만, 이런 위기에 타격을 받지 않는 것만으로 나는 취약노동자는 아닌 것이다.

위기는 취약한 곳에 먼저 찾아온다. 재택근무로 전환할 수 있는 시스템과 규모를 갖춘 기업의 직원들은 임금을 정상적으로 받는다. 국가에 의한 강제폐쇄가 아니라 회사가 결정해 휴업하는 경우라면 원칙상 그 직원들은 근로기준법에 따른 휴업수당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5명 미만 사업장 근로자들, 프리하지 않은 프리랜서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일용직 근로자들은 그대로 소득상실의 위기에 처했다. 시스템 정지에서 비롯되는 위기를 본인이 직접 감당해야 한다. 취약노동자들에겐 예방이 또 다른 위기를 초래한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 위기가 닥치자 모든 위험을 사용자에게 부담시키는 게 정의는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자주 가는 술집에 들렀더니 직원들은 나오지 않고 사장님 혼자였다. 공치는 날이 많아 당분간 혼자 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직원들에게 휴업수당을 줄 것 같진 않다. 5명 미만 사업장이라 불법은 아니다. 직원들은 그만큼의 소득을 잃고 있겠지만 지금 상황에 사장님을 비난하기도 어렵다. 근로기준법이 모든 사업장에 적용돼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작은 사업장에서 이 위기에 법을 지킬 수 있을까 생각했다. 하루 종일 코로나19 관련 뉴스가 나오는 요즘, 사장님에게 사람들의 외출을 자제시키는, 손님들의 발길을 끊는 뉴스보도가 반가울 리 없다.

그리고 이런다고 막을 수 있는 것이냐, 자영업자들만 다 죽이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난 사실 대놓고 말하지 않을 뿐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노무사 자격증을 따기 전 취약노동자 시절 이런 일이 터졌다면 나는 어땠을까. 다니던 직장에서 나오지 마라고 한다면, 마음 편히 ‘위험하니까 집에만 있어야겠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아니다. 월세를 내고 휴대전화 요금을 내고 뭐라도 먹으려면 어떤 일이든 구해야 하고, 일도 돈도 없이 고립된 상황은 감염보다 무섭다. 어쩌면 ‘차라리 감염돼 격리되면 밥이라도 줄 텐데’라는 생각을 했을 수 있다.

여러 가지 생각이 이어진다. 어차피 막을 수 없는 거라면 경제라도 정상적으로 작동시켜야 하는 거 아닌가. 치사율은 아주 높지 않다, 어차피 죽을 사람은 죽는다, 독감처럼 지나가도록 놔두고 이길 사람은 이기고 못 이기는 사람은 할 수 없다, 다 죽는 것보단 낫지 않나. 하지만 다른 생각이 이어진다. 취약노동자를 핑계 삼지만 이 생각은 기존 시스템 회복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어서 빨리 쳇바퀴를 다시 돌리자는 이야기인데, 쳇바퀴를 다시 돌리는 건 누구를 위한 일일까. 시스템 마비로 가장 타격을 받는 건 취약계층이지만 그 회복으로 득을 보는 건 그들이 아니다. 그러니 그들을 위해 쳇바퀴를 돌리자는 건 기만일 테다.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생각. 이 사태 이전 정신없이 돌아가던 우리의 쳇바퀴가 과연 최선이었나? 그대로 회복하고 보존해야 할 완벽한 것이었나? 아니다.

마스크 부족 사태를 보면서 이 정도면 정부가 배급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배급까지는 아니더라도 유사한 제도가 시행됐다. 몇 달 전이라면 말도 안 되는 발상이지만 지금은 그 필요성에 다들 공감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 수요 대비 부족한 것이 비단 마스크뿐이었을까. 모두에게 필요하지만 골고루 나눠지지 않았던 것들, 그 공평한 분배의 필요성. 이 위기를 전화위복 삼아 이런 것들에 대해 공감하고 위기 이후엔 더 좋은 체제를 만들어 갈 수 있는 마음들이 생겼으면 하고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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