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노동조합 규약에서 그 가입을 제한하고 있지 않는 한 근로자를 최대한 조합원으로 조직하는 것이 대한민국헌법이 근로자에게 특별히 단결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한 취지에 부합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당장은 사업장 내에서 그동안의 노사관계를 변경하는 것이라서 사용자와의 관계 등에서 다소 불편이 초래될지라도 사용자에 맞서 근로자로서 권리를 확보해야 할 노동조합이 결국은 가야 할 길일 수밖에 없는바, 채무자 조합이 이 사건 가처분신청을 계기로, 무엇보다도 법원의 이 사건 가처분결정이 하기 전에라도 그러한 길로 가는 결단을 내려 채권자를 비롯해서 채권자와 같은 이유로 조합원으로 권리 행사를 하지 못하고 있는 소외 회사 근로자들이 채무자 조합에서 조합원으로서 조합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칼럼 쓰기를 시작해야 하는데, 9일 오후 3시가 넘도록 신청이유보충서를 마무리하지 못했다. 내 속이 다 타들어 갔다. 노동조합을 상대로 조합원 지위를 인정해 달라는 가처분소송 사건이었는데, 나는 그 가처분신청서에서 이렇게 위 내용을 결론으로 작성해 제출했었다. 2주 전에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심문기일에 나가서도 이러한 취지를 법정에서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9일은 그 사건에서 정해진 서면 마감일이었다. 그래서 답변서에서 한 상대방의 주장을 반박하느라 속이 타들어 갔던 것이다.

2. 금융노조 신한은행지부를 상대로 하는 조합원지위보전 가처분소송이었다. 은행 영업점의 부지점장으로 승진 인사발령을 받자 지부는 사용자에 해당한다며 자동탈퇴 처리해 조합원 지위를 박탈했던 것이고, 이에 지부에 조합원 지위를 인정해 줄 것을 수차례 촉구했으나 받아들이지 않아 소송을 제기하게 됐다. 신한은행에서 ‘Ma 직급’ 이상이 되면 지난 60년 동안 지부는 조합원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니, 특별히 차별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신청인은 부위원장 등으로 노조활동을 해와 이러한 지부의 처리에 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피신청인인 지부의 답변서에서도 이러한 내용을 말하며 가처분결정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어디 이 노조뿐이겠는가. 이 나라에서는 대부분 사업장의 노조는 일정 직급 이상이 되면 이렇게 처리해 왔다. 그러니 신청인이 소송하겠다며 찾아왔을 때에 나는 바로 사건을 맡겠다고 말했다. 노동자면 노조할 수 있어야지 노동자인데 노조할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냐며 의욕을 갖고서 사건을 하게 됐다. 사실 이런저런 사정을 따져 보고서 한다면, 선뜻 사건을 할 수 없을지 모른다. 노동자·노조를 대리하는 노동사건만을 맡아 하는 법률사무소로서는 노조를 상대로 한다는 것은 좋을 게 없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골치 아프게 셈은 하지 않았다. 가처분결정을 받게 되면 신한은행에서 더는 부지점장인 노동자가 자동탈퇴 없이 조합원으로서 활동할 수 있게 될 것만 생각했다. 사실 사건위임계약서를 작성할 때에는 신청인이 부위원장 등으로 노조활동 경력이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노조를 대리하는 한국노총 중앙법률원의 답변서를 읽어 보고서 비로소 알게 됐다. 이렇게 나름 노동자의 단결권 행사를 위해서 의미 있는 일로 여기고 달려들게 됐던 것인데, 지부의 답변은 그렇지 않았다.

3. “피신청인 노조도 바랄 것이다” 지난 2월24일 심문기일에서 판사에게 이런 말을 했다. 신청을 기각해 달라고 답변하고 있지만, 내심 지부는 신청인의 신청이 인정돼 가처분결정이 나오길 바랄 것이라고 이렇게 법정에서 말했다. 하지만 지부의 답변서를 자세히 읽어 보니, 이런 내 말이 맞는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많은 사업장에서 노조가 일정 직급 이상을 조합원에서 제외하는 것은 사용자와의 관계를 고려한 것이다. 사용자가 요구를 하고, 그래서 단체협약에서 조합원의 범위 내지 자격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다. 이 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사업장의 노조 조직인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가 체결한 단체협약에서도 조합원의 자격에 관해 “과장급 이상”을 제외하고 있다(6조). 그리고 이렇게 제외하고 있는 것을 제외하기란 쉽지 않다. 노조가 단체교섭에서 제외해 달라고 요구하게 되면, 그걸 사용자가 받아들이지 않고 완강히 버티는 게 대부분이다. 그래서 몇 년 전에 이런 단체협약 때문에 가처분소송을 한 적도 있다. 단체협약이 정한 조합원 범위에서 제외되게 된 노동자가 노조위원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했는데, 사용자는 단체협약에서 정한 조합원 자격을 문제 삼아 그가 대표로 한 노조와의 단체교섭 등에 응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용자를 상대로 단체교섭 등 조합활동을 보장하라는 가처분신청하게 됐는데, 당시 사측은 단체협약을 내세워 기각해 달라고 주장하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서 나는 대리인으로서 ‘이사 대우’라는 직급에 해당한다고 해도 노조법상 사용자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신청서와 보충이유서에 쓰고 심문기일에 법정에서 진술했는데, 우리의 신청이 인정돼 가처분결정을 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우리 사업장 노조의 실정을 알기에 나는 법정에서 지부도 내심으로는 바랄 것이라고 내 맘대로 말했던 것이다.

4. 노조는 노동자의 일이다. 노조를 설립하고 가입하고는 노동자가 할 일이다. 사용자가 이래라저래라 할 일이 아닌 것이다. 만약 이래라저래라 사용자가 한다면 그건 노조 조직·활동에 지배·개입하는 행위로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의 경우 많은 사업장에서 사용자의 이래라저래라를 단체협약에 규정하고 있다. 노조 규약에서는 해당 사업장의 노동자이기만 하면 노조법상 사용자를 제외하고는 조합원이 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그 때문에 수도 없이 나는 그 단체협약을 무시하고 노조에 가입시키면 된다고 교육, 칼럼 등 기회가 될 때마다 떠들어 왔다. 노조 규약에서 제외하고 있지 않은 걸 단체협약에서 제외하고 있다고 해서 제외할 수 없는 것이라고 떠들어 왔다. 그리고 그에 관한 사건을 대리해서 대법원 판결을 받기도 했다. 노조의 조합원이 될 수 없다는 사측 주장을 반박하고서 받아 냈던 것이다(하지만 당시 대리인으로서 나는 그 조합원에게는 그 단체협약상 권리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판결 결론은 불만이었다). 이렇게 노동자 중 일부를 제외하는 노조의 조합원 범위에 관해 유감으로 여겨 왔으니, 노조가 조합원 자격을 박탈해 버린 것에 매우 큰 문제의식을 갖고 내가 사건을 대리하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더구나 신한은행지부 운영규정은 신한은행 노동자는 노조법상 사용자를 제외하고는 조합원이 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부지점장 등 ‘Ma 직급’ 이상의 경우는 여기서 노조법상 사용자에 해당한다며 지부는 자동탈퇴 처리했던 것이나, 지부 운영규정에서 규정한 노조법상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었다. 노조법에서는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없는 자로 정하고 있는 사용자에 관해 규정하고 있다. 그 사용자란 먼저 “사업주”라고 해서 주식회사의 경우는 그 회사에 해당하고, 다음으로 그 회사의 “경영담당자”인데 대표이사가 해당한다. 여기에 더해 노조법은 “그 사업의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해 사용자를 위해 행동하는 자”를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것이 문제다. 이는 독자적으로 근로자에 관한 사항을 결정할 권한이 있는 자라고 봐야 하고 그것은 일부 사항에 일부 관여하는 것을 두고는 아니고 그야말로 사용자의 권한을 행사해서 그자가 노조 조합원으로 가입하는 것이 명백하게 자주적인 노조활동을 저해하는 자라고 봐야 한다.

5. 오늘 노동자의 단결권 행사는 사용자 자본에 의해서만 침해받는 것이 아니다. 단결의 자유를 규제하는 법, 그리고 이를 집행하는 권력의 명령과 처분에 의해서도 침해받는다. 이런 것들은 노동자가 마땅히 맞서 싸워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노조가 스스로 가입을 제한하는 것은 주체에 의한 것이라서 더 심각하다. 맞서 싸워야 한다고 여기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니 우리 노조는 스스로를 살펴야 한다. 당장 스스로 제한한 것부터 해소할 수 있도록 하고, 거기서 노조 규약이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음에도 제한되는 것으로 운영해 온 경우가 있다면 이제는 보다 단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해야 한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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