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보영 청년유니온 정책팀장

청년유니온은 연초마다 연말정산을 위해 기부금 영수증 발행을 요청하는 전화를 많이 받습니다. 보통 당일 발급이 가능한지 묻는 전화가 대부분이지만 어느 날 걸려온 전화 한 통에서 조합원은 조심스럽게 저희가 들어드릴 수 없는 요청을 하셨습니다.

“기부금 영수증에 내역을 삭제할 수 있나요? 가입돼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지 않게요.”

마음이 아팠습니다. 강력한 노동조합이 있고 노사관계가 안정적인 곳이라면 이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청년유니온 조합원은 사업장 내에 노동조합이 없는 곳에서 일하고 계신 분이 대다수입니다. 전화를 주셨던 분은 아마도 회사측에서 본인이 청년유니온이라는 노동조합에 가입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까, 행여나 이 이유로 불이익이라도 당할까 걱정이 됐나 봅니다.

그분은 혹시 기사를 보셨던 걸까요? 지난해 말 즈음 한겨레에서는 삼성그룹의 미래전략실에서 임직원들의 연말정산 정보를 뒤져 ‘불온’한 사회단체에 후원한 이들을 색출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삼성 노조와해 컨트롤타워였던 미래전략실이 감시했던 건 노조원만이 아니었던 겁니다. 내가 일하는 회사가 내가 어느 단체를 가입하고 후원하고 있는지 마음대로 꺼내 볼 수 있고 그것을 나를 평가하고 낙인찍기 위해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적이고 두려운 마음마저 들었습니다. 그럴 수 있다는 사실에 위축됐을, 그래서 세액공제를 포기한 조합원이 있지는 않을지 걱정이 됐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우리 사회의 어두운 곳곳을 드러내고 있는 와중에 기사 하나를 더 접했습니다. 기업들이 연말정산 서류를 뒤져 신천지 가입자를 ‘아웃팅’시키고 있다는 서울경제의 보도였습니다. 서류상 신천지 신도로 확인되면 심하게는 자가격리 및 재택근무, 별도 식사 등을 요구한다고 합니다. 기사에서는 조심스럽게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 위반 가능성 제시하고 있지만 사실 수집 그 자체가 불법입니다. 개인정보 보호법 23조(민감정보의 처리 제한)에서는 “사상·신념, 노동조합·정당의 가입·탈퇴, 정치적 견해, 건강, 성생활 등에 관한 정보, 그 밖에 정보주체의 사생활을 현저히 침해할 우려가 있는 개인정보를 처리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당사자의 동의 없이 수집도, 수집해 활용하는 것도 불법입니다.

더욱 속상했던 것은 기사에 달린 댓글이 하나같이 신천지 ‘인’을 회사든 학교든 우리 사회 어느 곳에서라도 몰아내라고 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 말이 꼭 ‘노조하는 놈들은 다 몰아내라’ 하고 들리는 듯했습니다. 사회에 해가 되기에 다 몰아내도 된다는 속단은 (억울하게도) 노동조합 가입자에게도 똑같이 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노동조합에 가입했다고, 진보적인 단체를 후원한다고, 마찬가지로 어떤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그것이 그를 차별하는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신천지의 폐쇄성으로 인한 지역사회 감염 확산, 이후 방역을 위한 조치에 대한 비협조적 태도에 책임을 물을 수 있겠지만 딱 거기까지입니다.

우리는 국경을 막고 중국인을 몰아내자고 말하는 대신, 새로운 변종 바이러스를 양산해 내는 대규모 공장식 축산시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신천지를 다 색출해 내자고 하는 대신, 이토록 많은 사람을 사교(邪敎)에 목매게 하는 사회시스템에 의문을 가져볼 수 있습니다. 개개인의 감염자에게 분노를 쏟아 내는 대신, 사적 거리 유지와 공중보건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덮어놓고 두려워하는 대신, 공공의료 확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미지의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은 혐오로 극복할 수 없습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분노해야 할 방향을 제대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당신의 연말정산도, 몸도, 그리고 마음도 안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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