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예슬 기자

삼성반도체 직업병 피해자 황유미씨 기일을 하루 앞둔 5일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회원들이 헌법재판소 앞에 섰다. 고인은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2005년 백혈병을 진단받고 2007년 3월6일 2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고인의 아버지 황상기씨는 반올림과 함께 딸의 죽음을 산업재해로 인정받기 위해 싸웠다. 법원이 2014년 고인의 죽음이 직업병 때문이라고 인정했다. 그제야 삼성전자는 반도체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를 구성하고, 2018년 1년 이상 근속 산재노동자 보상방안에 합의했다.

그런데 노동·시민·사회단체는 13년간 노력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놓였다고 우려하고 있다. 국가핵심기술에 관한 정보 비공개 원칙을 담은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이 지난달 21일 시행되면서다.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가 업무상재해를 입증하는 자료에 접근할 길이 막힌다는 이유다.

반올림 제보 피해자 683명 중 산재인정 64명뿐

산업기술보호법 대책위원회가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반도체·전자산업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 및 산업기술보호법 헌법소원 청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책위는 반올림·민주노총·참여연대·민변 등 12개 노동·시민·사회단체로 구성돼 있다. 조승규 반올림 상임활동가는 “반도체 직업병을 인정하는 대법원 판례도 나오고 직업병 인정도 많아지는 등 지난 10년간 반도체 직업병을 대하는 우리 사회 인식은 많이 달라졌다”면서도 “여전히 4년 넘게 산재인정을 받지 못한 분들과 결과를 기다리다 돌아가신 분들이 계신다”고 말했다.

반올림에 따르면 현재까지 반올림에 제보된 직업병 피해자는 683명이다. 반올림은 149명의 산재를 신청했는데 그중 64명이 인정받고 48건은 심의 중이다. 그사이 제보자 중 197명이 목숨을 잃었다. 안전보건공단은 지난해 5월 삼성전자·SK하이닉스·앰코테크놀로지코리아·페어차일드코리아반도체·KEC·DB하이텍의 전·현직 노동자를 조사한 결과 반도체 노동자의 경우 백혈병과 혈액암의 일종인 비호지킨림프종 발병 위험이 높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반도체산업 직업병 논란의 한가운데 서 있던 삼성도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다. 2018년 삼성전자는 반올림과 조정위원회 중재안에 합의하고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에게 사과했다.

이상수 반올림 상임활동가는 “삼성이 사과했고, 중재안 협약에 따라 꽤 많은 분이 지원보상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직업병 예방과 관련해 협약했던 옴부즈맨위원회가 잘 진행되고 있는지 지켜보고 있다”고 전했다. 옴부즈맨위는 2018년 1월 삼성전자·가족대책위원회·반올림이 조정위원회에서 최종 합의하면서 설립된 기구다.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을 종합진단하고 권고·이행·점검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 강예슬 기자

“삼성, 작업환경보고서 비공개 입장 여전해”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 산재인정 문제에는 넘어서야 할 산이 많다. 삼성전자는 “고용노동부의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가 영업비밀을 담고 있다”며 보고서 공개를 거부했는데, 이 같은 삼성 주장이 그대로 담긴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이 지난달 시행됐기 때문이다. 이 개정안은 국가기관·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 등은 국가핵심기술에 관한 정보를 공개하지 못한다. 또 소송 등 적법하게 취득했어도 산업기술이 포함된 정보는 취득 목적 외 사용·공개가 금지된다. 이를 어길 경우 처벌을 받는다.

지난달 20일 서울행정법원이 삼성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 정보공개 청구소송에 대해 “산업통상자원부가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했으니 비공개 정보”라는 취지로 비공개 판결을 내리면서 대책위의 우려가 현실이 되는 모양새다. 반올림은 “이번 판결은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이 고려된 결과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며 “이제 기업들은 숨기고 싶은 것이 있다면 국가핵심기술 지정을 요청하기만 하면 된다”고 꼬집었다.

대책위는 이날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이 국민의 알권리, 생명·건강권, 표현의 자유, 학문의 자유 등을 침해해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직업병 피해자와 유가족 3명을 포함해 13명이 청구인으로 참여했다. 임자운 변호사(법률사무소 지담)는 “산업기술보호법상 ‘국가핵심기술’ 지정 방식은 매우 추상적·전문적이며 광범위한데 그 관련성에 대한 판단 기준조차 제시되지 않았다”며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려면 최소한 지켜야 할 명확성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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