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한국 대학가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처가 시급한 문제라면, 영국 대학가에서는 교원 파업 대처가 시급한 문제가 되고 있다. 영화 <기생충>의 영어 자막으로 더욱 유명해진 옥스퍼드대는 파업 공지 홈페이지를 만들고 “동료들의 파업권은 인정하지만, 학생들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며 “특히 학생 누구도 시험과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모든 합당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옥스퍼드대는 영국 대학노조(University and College Union)가 교원의 임금과 퇴직연금 교섭에 항의해 옥스퍼드대지부가 찬반투표를 통해 파업을 결정했다고 전했다. 대학은 지난해 11월25일에서 12월4일까지 여드레 동안 파업을 했으며, 노조(UCU)가 2020년 7월27일까지 “파업 전 행동(action short of strike)”을 계속하기로 했다면서 실질적인 파업은 2월 20~21일, 2월 24~26일, 3월 2~5일, 3월 9~13일에 걸쳐 단계별로 강도를 높여 진행된다고 밝혔다. “파업 전 행동”이란 한국식 표현으론 준법투쟁으로, 규정에 명시된 일 말고는 일체의 과외 업무에 협조하지 않는 것이다.

영국 대학 교원 절반이 비정규직

노조 케임브리지대지부 홈페이지는 교수 강사 연구원 대학원생이 조합원을 이루며, 케임브리지대뿐만 아니라 산하기관 종사자를 비롯해 비정규 교원도 조합원이 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영국 고등교육통계원(HESA)에 따르면, 2018년·2019년 대학에서 강의하는 교원 21만7천65명 중 34%가 단기계약자이며, 13%는 시급제를 적용받는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4천240명이 ‘0시간 계약’, 즉 특정한 강의시간을 계약하지 못하고 대학이 부르면 달려가야 하는 ‘호출 강사’라는 점이다.

노조는 2006년 6월 대학교원협회(AUT)와 전국고등교육교원협회(NATFHE)가 통합해 만들어진 영국 최대의 고등교육기관 종사자 조직으로 조합원수는 10만명에 이른다. 노조 조합원들의 임금과 근무조건을 결정하는 단체교섭은 잉글랜드·스코틀랜드·웨일스·북아일랜드로 나눠 진행하는 지역 교섭과 모든 지역을 포괄하는 전국 교섭으로 구분된다. 고등교육기관(고등학교 졸업 후 이뤄지는 교육을 담당하는 기관) 종사자의 임금과 근로조건은 지역 교섭에서 결정되는 반면, 대학교육기관 종사자의 조건은 전국 교섭에서 결정된다. 이에 따라 교수와 강사가 주축을 이루는 대학교육 종사자를 위한 단체교섭은 대학사용자협회(UCEA)를 상대로 ‘대학교육 종사자 공동교섭위원회’라는 틀에서 전국적으로 이뤄진다.

지난해 3월19일 노조는 2019~2020년 단체교섭 요구안을 발표했다. 요구안은 △소매물가지수에 3%포인트를 더한 임금인상 △조합원에게 직접 지불되는 최저임금 시간당 10파운드(1만5천원)로 상향 △대학 근무자 주당 35시간 근로 △성별 임금격차 및 인종별 임금격차 축소 △‘0시간 계약’과 시간급·외주 등 비정규직 철폐 방안 마련 △스트레스 관리 기준의 적용과 실행이 주된 내용이다.

2009년 이래 대학 교원 임금 17% 줄어

노사 간에 교섭이 제대로 진척되지 않던 가운데 소매물가지수를 고려하면 2009년 이래 대학 교원들의 임금이 17% 줄었다는 내용의 대학사용자협회 자료가 공개됐고, 이에 반발한 대학 산하 147개 대학교와 69개 기관 조합원들이 지난해 10월 파업 찬반투표에 들어갔다.

임금과 더불어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는 문제는 퇴직연금이다. 대학 교원들은 민간 기금인 대학퇴직연금(USS)에 가입돼 있는데, 교원의 연금보험료를 현행 8%에서 9.6%(2021년 10월까지 11%)로 올리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노조는 대학측이 교원 인상분 전부를 지급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대학사용자협회는 연금 납부금의 사용자 분담액도 18%에서 21.1%로 올라가는 만큼 교원들도 자기 분담금 인상을 감수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집해 왔다. 이에 맞서 노조는 산하 조합원 5만명이 3월까지 이어지는 연속 파업에 참가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영국 국영방송 BBC는 임금과 연금을 이유로 파업에 들어가는 대학은 케임브리지대와 옥스퍼드대를 비롯해 47개, 임금과 근무조건을 이유로 파업에 들어가는 대학은 켄트대 등 22개, 연금만을 이유로 파업에 들어가는 대학 및 기관은 5개라고 밝히고 있다.

저항하는 영국 대학, 무릎 꿇은 한국 대학

영국의 대학 교수와 강사들의 파업 열기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을 향한 그들의 열망과 의지를 한국의 대학 교수와 강사들은 갖고 있냐는 물음이다. 대한민국 전역에 있는 대학들에 근무하는 정규직 교수와 비정규직 강사들은 하나의 조직으로 단결하려는 의지가 있는가. 또 단체로 모여 대학 사용자들과 임금·근로조건을 교섭하려는 열망이 있는가. 대학 권력에 맞서 자신의 임금과 근무조건도 대등하게 결정하지 못하는 교수에게 배우는 학생이 장차 사회에 나가 부당한 대우와 차별에 당당히 맞설 수 있을까.

한국 사회에서 제구실을 하지 못하는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은 자본과 국가에 무릎 꿇은 우리 대학가의 비참한 현실과도 연결돼 있는 것은 아닐까. 대한민국에 ‘기회의 평등 YES, 결과의 평등 NO’라는 신자유주의의 능력주의 이데올로기가 횡행하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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