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익찬 변호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

대상판결 : 서울고등법원 2020. 1. 17. 선고 2019누38900 판결


1. 사건 개요

망인은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서울소재 대형병원(이하 ‘거래처 병원’)을 담당하는 팀에서 팀장 바로 밑의 차장으로 근무했다. 망인은 2016년 2월18일 동료직원 1명, 거래처 병원 간호사 2명과 함께 1~3차에 걸쳐 접대성 회식을 한 후 대리기사를 기다리던 중 노래방 입구 계단에서 굴러 크게 다쳤고 입원치료를 받다가 사망했다. 망인의 배우자는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를 청구했으나 부지급됐고(이하 ‘이 사건 처분’), 1심 법원은 원고 청구를 기각했다.

2. 대상판결 요지

공단과 1심 판결은 △망인이 회식 전에 상급자 지시를 받거나 보고하지 않은 점 △망인과 동석한 제약회사 동료가 거래처 병원 담당 직원이 아닌 점 △망인이 과음한 것에 사실상 강요 또는 피할 수 없는 업무적 요인이 없었다고 본 점 △회식비용을 법인카드로 처리하지 않고 출처가 불분명한 상품권과 개인카드로 결제한 점 △망인이 1차 회식 때 사용한 상품권은 전날 구입한 것도 아니고, 또한 그 이전에 법인카드로 구입한 것인지 확인되지 아니하는 점 △망인의 동료가 2·3차 비용을 개인적으로 결제하고 이후에 회사가 비용처리를 해 주지 않은 점을 들어 사업주의 지배나 관리를 받는 행사라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그러나 서울고등법원은 망인의 주업무는 거래처 병원 의사들이 제약회사 제품을 처방하도록 하는 것으로, 상사가 진료예약을 부탁하거나 각과 의사의 진료 및 휴진 일정과 경조사 일정, 투약정보 등을 알기 위해서 간호사와의 유대관계가 업무상 필요하다고 전제했다.

그리고 △선 조치 후 보고가 관행화됐으므로 망인이 생존했더라면 소규모 모임인 이 사건 회식이 사후보고됐을 것인 점 △이 사건 회식의 성격상 회사의 비용부담이 요구되는 유익적인 영업활동이므로 거래처 병원 담당이 아닌 동료가 참석했어도 회식의 성격이 변질됐다고 볼 수 없는 점 △거래처 병원 간호사도 업무적 성격의 회식임을 인정한 점 △망인이 마지막까지 남아 다른 사람의 귀가를 챙긴 점을 고려하면 과음에 업무적 요인이 있는 점 △상품권의 경우 회식 전날이 아니라 미리 구매해 놓았던 경우가 많았던 점 △망인의 동료가 결제한 2·3차 비용은 소액이고 영업사원에게 업무추진비가 지급된 점 △망인이 회식 후 정상적인 경로를 일탈하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이 사건 회식 이후 사망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으므로 이 사건 처분이 취소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3. 판결 의의

가. 최근 판결례를 보면 업무시간 외에 여럿이 밥과 술을 먹는 자리를 모두 ‘회식’으로 칭하고,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30조에서 정하는 ‘행사 중의 사고’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한다. 그러면서 행사나 모임의 주최자, 목적, 내용, 참가인원과 강제성 여부, 운영방법, 비용부담 등 여러 가지 징표들을 종합해 사회통념상 노무관리 또는 사업운영상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인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법리를 설시한다(대법원 1997. 8. 29. 선고 97누7271 판결, 대법원 2007. 11. 15. 선고 2007두6717 판결 등 참조). 위와 같은 징표들은 회사 내부인들끼리 갖는 내부단합형 회식의 경우에는 사용자의 필요에 의한 행사인지, 아니면 노동자 간의 사적인 모임인지를 구분함에 있어서의 유용한 평가기준이 될 수 있다.

나. 그러나 회사 내부인들끼리 갖는 내부단합형 회식과는 달리 외부인과 갖는 접대성 회식에 있어서는 각 징표들 중에서 일부가 충족되지 않더라도 업무관련성이 깨지지 않는다고 평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회식비용을 회사가 아닌 노동자 개인이 부담하거나 혹은 거래처 상대방과 함께 부담할 수 있고, 주최자 여부나 사전보고 여부가 중요하지 않을 수 있으며(선 조치 후 보고), 반드시 유관부서 관련자만 참여하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상당수 회사에서는 영업 노동자가 회사에서 지원되는 비용 이외의 자부담으로 선물을 구매하거나, 식사자리를 마련해서 영업실적을 쌓는 것이 현실이다.

다. 즉 업무와 상당인과관계가 있는지를 판단하는 핵심은 회식의 목적과 내용이다. 문제는 이것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법원은 눈에 보이는 여러 징표들(주최자·비용부담·사전보고·강제 여부 등)을 근거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목적·내용)을 판별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몇몇 징표들이 어긋난다고 해서 역으로 목적과 내용을 부정할 수는 없다.

라. 소설 <어린왕자>에 나오는 말마따나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산재보험 제도가 업무와 재해의 상당인과관계를 따져서 보상을 하는 것임을 생각해 본다면 가장 먼저 왜 회식을 했는지, 즉 회식의 목적과 내용이 무엇인지를 검토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개별적인 징표들이 충족되는지, 일부 징표들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그것이 회식의 목적을 해칠 만한 사정인지에 관한 평가를 부수적으로 해야 한다. 예컨대 1차 회식자리는 업무적인 목적이 강하지만, 2차 회식에 업무와 무관한 사람이 참석하면서 비용도 별도로 지불하는 등 회식의 성격이 완전히 변질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경우를 구별해 내기 위해서 대법원이 제시한 개별적인 징표를 근거로 판단해 보라는 것이다.

마. 대법원은 이미 접대성 회식의 경우에는 사전보고가 됐는지 여부를 크게 고려하지 않았는데, 특히 망인과 같이 팀 내에서 스스로 접대성 회식을 개최할 수 있는 경우라면 더욱 사전보고 여부를 따질 필요가 없다고 봤다. 또한 회식비용을 개인이 일부 부담했거나 심지어 거래처 상대방이 전액 부담한 경우에도 회식의 성격과 내용상 업무수행성이 인정된다고 본 판결도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대법원은 해당 거래처와 무관한 동료 노동자가 참석한 경우에도 업무수행성이 부정된다고 보지 않았다. 심지어 영업사원의 접대성 회식에 관해 ‘행사 중 사고’가 아니라 ‘업무 수행 중’이었다고 명시한 대법원 판결도 있다(대법원 1998. 1. 20. 선고 97다39087 판결).

바. 이 판결은 산재보험법과 대법원의 기존 판례 취지를 정석으로 해석했다. 먼저 이 사건 회식이 업무상 필요한 것이었는지를 먼저 평가하고, 다음으로 부수적인 징표들이 충족됐는지, 충족되지 않은 사정이 있다면 회식의 목적과 내용을 변질시킬 수 있는지를 평가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 사건 회식을 업무수행 그 자체로 보지 않고 사업주가 주관한 행사 중 사고로 봤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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