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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식을 위한 변명
▲ 이은호 한국노총 대변인

나(회식)는 억울하다.

요즘 내 이름을 검색하다 보면 연관 검색어로 ‘홍남기 회식’ ‘이재용 회식’ ‘코로나 회식’이 나온다. 깜짝 놀랐다. 바이러스가 창궐해 어수선한 시국에 왜 내 이름이 이런 거물급들과 연관돼 나올까 의아했다.

코로나19 대응 간담회에서 재벌 부회장이 “(내수진작을 위해) 저녁 회식시간을 주 52시간에서 빼 달라”고 했다고 한다.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자율적 회식은 근무시간에 포함이 안 된다”며 “홍보물을 제작해 널리 알리겠다”고 대답했다.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된다면야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스스로의 주제를 잘 아는 나로서는 당황스럽다. ‘정말 회식을 많이 하면 도움이 될까?’ ‘그런데 왜 나와 노동시간을 연관시킬까?’ 하는 의문도 든다.

하긴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지난 정부에서는 ‘청년 일자리’와 관련해 내 이름이 거론되기도 했다. 청년들의 제대로 된 일자리가 없는 이유는 긴 노동시간 때문이며 ‘과도한 회식’같이 근무시간을 늘리는 요인을 줄여야 한다고 했다. 덧붙여 당시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방치하면 젊은이들의 가슴에 사람이 없어진다”고 했다고 하니, 도대체 내 어깨에 얼마나 큰 짐을 지우려 하는가.

굳이 이렇게 대접해 주시니 한마디 하자면, 사실 내수경기를 진작시키고 자영업자를 돕기 위해서는 나 말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중소 상인·자영업자들이 어려운 이유는 재벌 대기업 유통업체들이 끊임없이 골목상권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프랜차이즈 가맹거래와 유통대리점 거래, 대기업 유통업체에 납품하거나 입점한 상인들에 대한 불공정한 수수료 거래 등도 문제다. 최근에는 독점적인 온라인 배달앱 시장의 불공정한 판촉비나 배달수수료 인상을 걱정하는 자영업자들이 늘고 있는 상황이다.

솔직히 회식 많이 한다고 얼마나 많은 중소 상공인과 자영업자들에게 혜택을 드릴 수 있을지는 당사자인 나조차 알 수 없다.

오히려 대기업 복합쇼핑몰 같은 유통업체들의 골목시장 진출 제한과 불공정한 가맹·대리점 거래 규제, 입점·납품 수수료 수탈 등을 바로잡아야 중소 상인·자영업자의 공정한 소득이 실현되지 않을까.

말 나온 김에 개인적인 이야기도 해야겠다. 이왕이면 내 명예도 찾아주는 노력을 해 주셨으면 한다.

사전적인 의미로 내 이름은 ‘여러 사람이 모여 함께 음식을 먹는 모임’을 말한다.

‘함께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태생적으로 즐거움을 가지고 이 세상에 나왔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회식자리가 어찌 다 즐거울 수 있겠는가. 대부분이 업무의 연장 아니던가.

7년 전 어느 드라마에서 나는 “불필요한 친목과 아부로 몸 버리고, 간 버리는 자살 테러와 같은 음주행위<직장의 신>”로 정의됐다. 이렇게 말한 비정규직 직원은 회식에 참석해 현란한 고기 굽기(20만원)와 신들린 노래방 탬버린 치기(40만원)를 선보인 후 시간외수당을 청구하고 받아 냈다. 벌어진 상황은 현실과 같았지만 결론은 현실에 없는 드라마로 마무리됐다.

노동시간단축은 나 또한 바라는 바다.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수록 사람들이 모여서 즐겁게 나를 찾는 시간이 많아지지 않겠나. 쩨쩨하게 나를 들먹이며 일하는 시간에 포함되니, 안 되니 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럼에도 확실히 하고 싶다면 노동조합과 단체협약을 통해 결정해도 된다. 청와대에서 회식시간 포함 여부를 언급한 부회장님의 회사에도 노조가 만들어졌으니 소통해 보기를 바란다.

다시 한 번 밝히지만, 나는 즐거움 그 자체다. 더 이상 내게 무거운 짐을 지우거나 억울하게 만들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한국노총 대변인 (labornews@hanmail.net)

이은호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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