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 21일 대통령 선거유세 과정에서 느닷없이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에 시비를 걸었다. 그는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이 얼마나 엉망이었는지 봤어요? 수상작은 한국에서 온 영화입니다. 미국은 한국과 무역 관련해서 문제가 많은데 그들에게 올해 작품상을 줬습니다”라고 맹비난했다.

이 하루 전 한국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기생충> 제작진·출연진 20여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아카데미상 수상을 축하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파격적으로 이들과 오찬을 함께했는데, 대통령 부인이 직접 <기생충>에 나오는 짜파구리를 만들어 대접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 영화 100년 역사에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된 것도, 새로운 아카데미 역사를 쓴 것도 아주 자랑스럽다”고 이들을 격찬했다.

이 두 장면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 지배 담론은 한국영화가 높은 벽을 뚫고 할리우드에 ‘진출’했다고 높이 평가한다. 백인이나 미국인들만이 차지하던 할리우드 영화제에서 황인종에다 작은 나라 한국의 영화가 작품상·감독상을 받았으니 그렇게 평할 만하다. 그러나 이 ‘진출’에는 할리우드가 ‘기생충’을 불러들인 측면이 있다. 문화·예술적 요소만이 아니라 할리우드의 정치적 이해관계도 개입돼 있다. 그들은 현시점에 왜 한국영화 <기생충>에 아카데미상을 줬을까? 이와 관련 중국 ‘환구시보’는 얼마 전 야오야오 중국 외교학원 연성권력연구센터 주임의 ‘기생충: 아카데미에서 미국 좌우의 대결’이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문화적으로 ‘서부연안좌파’는 확실히 모종의 진보성을 보이고 있다. 그렇지만 그들의 다문화주의의 배후에는 초국적 자본의 이동을 지지하는 정치경제적 동인이 숨겨져 있다. 또한 트럼프의 국수주의 배후에는 미국 산업 중흥을 급속하게 이루고자 하는 미국 내 공업자본을 대표하는 게 밑바닥에 깔려 있다.”(강정구 전 동국대 교수 번역)

한국영화 <기생충>에 아카데미상을 수여한 할리우드는 어떤 곳인가? 할리우드는 과연 진보적 또는 좌파적 동네라고 평가할 수 있는가? 우리나라 자유주의자들이 진정한 의미에서 진보적이지 않고, 한국의 강남좌파가 진정한 의미에서 좌파적이지 않듯이 할리우드에 ‘진보성’ 또는 ‘좌파’라는 명칭을 부여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할리우드는 빨갱이를 사냥한 흑역사를 지니고 있다. 매카시 선풍이 몰아치기 이전인 1947년부터 빨갱이 사냥이 벌어진 곳이 할리우드다. 이와 관련 미국 대통령으로까지 출세한 로널드 레이건의 악행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1947년 냉전이 시작되자 전미배우협회 회장으로서 영화계 공산주의자들을 추방하는 데 앞장섰다. 사람들은 이런 그에게 ‘할리우드의 매카시’라는 별명을 붙였다. 그때 찰리 채플린도 축출됐다. 이렇게 추방된 사람들은 대부분 할리우드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이런 추악한 과정으로 진짜 진보·좌파가 사라진 결과 이뤄진 자유주의 분파의 득세. 이게 할리우드의 진보성이고 좌파성이다.

할리우드의 정치적 성향은 진보나 좌파이기보다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iveness)’이다. 여성·유색인종·약소민족 같은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해 실질적으로는 부정적으로 대하면서 겉으로는 존중하는 듯이 말하는 것을 뜻한다. 기존 자본주의·제국주의 체제를 옹호하면서 진보·좌파처럼 가장하는 것이다. 미국 민주당이 딱 그런 식이다.

또 하나, 할리우드는 상업적이다. 작품성보다 상업성이 먼저다. 영화에 대해 민중은 문화예술성을 기대한다. 그러나 영화자본은 상업성을 우선한다. 그런데 할리우드는 이 두 측면 가운데 상업성을 최우선으로 한다. 할리우드의 거장 스필버그 감독은 “감동은 물론 흥미와 교훈이 잘 어우러져야 하지만, 쾌락이나 흥미가 극점까지 가게 되면 그것이 감동이 될 수도 있는 거야! 유럽영화가 아무리 심각하고 좋은 메시지를 전달하려면 뭘 해? 대중이 보고 즐거워야 하지 않는가?”라고 했다. <기생충>은 이런 할리우드 기준에 딱 부합하는 작품이다.

<기생충>은 기술적이고 상업적인 측면에서 보면 영상이나 연기가 세련되고 관중을 몰입하게 하는 재미도 있기 때문에 좋은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작품성 측면에서는 나쁜 점이 두드러진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제목이 문제다. 제목이 기생충인데, 누가 기생충인가? 이 영화의 주인공은 아무래도 기우네 가족이고 따라서 그들이 기생충이다. 그런데 기우네 가족은 한국 피지배 민중의 일반적 모습과 거리가 멀다. 한국의 피지배민중은 대부분 임금노동자이며, 남의 피를 빨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세계 최고로 열심히 일하지만 착취·수탈로 심하게 피를 빨리며 산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자본가계급은 가사노동자에게 갑질을 하지만 상품을 생산하는 노동자를 착취하지는 않는다. 또 자본가계급은 순진한 반면 노동자는 사기를 치고 부자를 시기하고 분노로 살인을 하는 등 사악하다. 켄 로치 감독의 최근 작품 <미안해요, 리키>라는 영화의 영국 노동계급 묘사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이 영화에는 또 민중의 생활양식이 아주 부정적으로 왜곡돼 있다. 영화에서 기우네 가족은 부모와 자식이 함께하는 자리에서 욕설을 밥 먹듯이 한다. 술 취한 딸이 부모에게 “XX”이라고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전혀 노동계급적이지도 한국적이지도 않다. 엄중한 주제인 한국의 계급적 분열과 갈등을 다루면서 이렇게 사실을 왜곡하는 데는 정치적 의도가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재벌과 결탁한 강남좌파를 정당화하고 이들의 후원자인 미 제국주의를 미화하는 정치적 목적을 지니고 있다. 영화 중간에 느닷없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미사일 발사 지령을 내리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김정은 위원장을 희화화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이다. 특히 “혁명은 멀어졌다. 우리는 예술에 미쳐 있다”는 봉준호의 말이 곧 정치적이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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