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산업재해 사고로 원청 노동자보다 하청노동자가 더 많이 숨지는 11개 기업 사업장 명단이 처음 공개됐다. 이들 기업에서 2018년 산재사고로 17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그중 16명이 하청노동자였다.

고용노동부가 20일 원청과 하청을 합친 사고사망만인율이 원청보다 높은 11개 사업장을 발표했다. 사고사망만인율은 노동자 1만명당 산재사고 사망자수다. 원·하청 통합 사고사망만인율(2018년 기준)이 높은 순서대로 보면 △고려아연 온산제련소(7.746명) △삼성디스플레이 천안사업장(3.501명) △에쓰오일(2.454명) △르노삼성자동차(2.210명) △포스코 포항제철소(1.929명) △삼성전자 기흥공장(1.091명) △한국철도공사(0.674명) △현대제철(0.555명) △포스코 광양제철소(0.547명) △대우조선해양(0.352명) △엘지디스플레이(0.341명)다.

포스코 포항제철소 하청노동자만 4명 사망

정부는 2018년부터 원·하청 산재 통합관리제를 적용했다. 원·하청 노동자가 함께 일하는 곳에서 산재통계를 합산해 원청의 산재예방 책임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제조업·철도운송업·도시철도운송업에서 1천명 이상 사업장에 적용하고 있다. 이번 공표 명단은 지난해 128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2018년 산재사망 현황에 대한 사실확인, 이의제기 절차를 거쳐 선정했다.

이들 사업장의 사고사망자는 17명인데 16명이 하청노동자다. 원청 노동자와 하청노동자가 각각 한 명씩 숨진 철도공사를 제외한 나머지 사업장에서는 원청 노동자는 한 명도 숨지지 않고 하청노동자만 사망했다.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는 하청노동자 4명이 숨졌다. 고려아연 온산제련소와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는 각각 2명의 하청노동자가 사망했다. 11개 사업장의 원·하청 합계 사고사망만인율은 0.961명이었다. 하청은 1.893명, 원청은 0.108명이다.

박영만 노동부 산재예방보상정책국장은 “명단이 공개된 사업장은 점검이나 안전감독시 특별관리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유성규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참터)는 “건설현장의 경우 원청이 하청노동자까지 산재보험에 가입한다는 이유로 통계에서 제외했다지만, 원·하청 산재 통합관리제의 취지를 생각하면 산재사망사고의 절반을 차지하는 건설업체를 뺀 것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원·하청 산재 통합관리 발전소까지 확대 예정

원·하청 산재 통합관리제도는 내년에 500명 이상 사업장까지 확대된다. 2022년에는 적용업종을 발전소 같은 전기업까지 확대한다. 2018년 12월 태안 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 김용균씨가 숨진 영향이다.

대상이 늘어나면 하청노동자 사고사망자 통계도 증가할 전망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이번에 발표한 사업장의 사고사망자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는데 내년에 500명 이상 사업장까지 확대하면 하청업체에 대한 원청업체의 안전보건 관리현황이 좀 더 자세히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명단이 공개된 사업장의 경우 원청 사업장에서 하청노동자가 일하고, 원청의 잘못으로 하청노동자가 사망한 곳이다.

올해 1월16일부터 시행된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원청의 안전보건 책임장소가 원청 사업장 전체, 원청 사업장이 아니더라도 원청이 제공·지정하고 지배·관리하는 곳까지 확대됐다. 따라서 2020년 기준부터는 원청 사업장 밖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원·하청 합산통계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하청노동자 산재당하면 원청 보험료 할증”

정부는 개별실적요율제를 손본다. 개별실적요율제는 개별 사업장의 산재발생 실적에 따라 산재보험료를 할인하거나 할증하는 제도다. 하청노동자가 사망해도 원청은 산재보험료 할인혜택을 받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날 명단이 공개된 사업장 11곳이 지난해 할인받은 산재보험료만 250억원이나 된다. 2018년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한국전력공사·한국수력원자력·발전 5사에서 2013~2017년 발생한 산재노동자 95.7%가 협력업체 소속인데도 원청이 감면받은 산재보험료가 497억원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노동부는 원청이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해 하청노동자가 산재를 당할 경우 원청의 산재보험료를 할증하도록 제도를 개선할 예정이다.

이윤근 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은 “산재사고 사업장 명단공표나 산재보험료 할증 같은 제재를 강화하는 것은 필요하다”며 “다만 산재은폐가 오히려 심해지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도록 산재예방을 잘하는 사업장에 대한 당근책도 병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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