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길숙 공공운수노조 조직쟁의실장(문중원 시민대책위 상황실장)

지난해 11월29일 부산경남경마공원 문중원 경마기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05년 개장 이후 일곱 번째 죽음이다. 말관리사 282명, 경마기수 35명 등 320여명이 일하는 한 사업장에서 이렇게 많은 이들이 죽었다. 한국마사회에 심각한 구조적 문제가 있음이 그간 죽어 간 노동자들의 유서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고통도 없고 편히 숨 쉴 곳엘 가기 위해…”(이명화 기수, 2005년 사망당시 26세), “경마장 기수들이 최고 힘들고 불쌍해. 도대체 부산에서 몇 번의 자살 시도냐”(박진희 기수, 2010년 사망당시 28세), “입사 이래 5번의 골절, 한 번의 뇌진탕, 수많은 상처들 (중략) 이제는 그런 쳇바퀴에서 벗어나려 합니다”(박용석 말관리사, 2011년 사망당시 35세), “X 같은 마사회”(박경근 말관리사, 2017년 사망당시 38세).

그러나 마사회는 “왜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만 이렇게 사람이 죽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마사회는 “자신들이 사용자가 아니라 경마 시행체일 뿐”이라고 주장하며 기수와 말관리사·마주·생산자들에게 아무런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마사회는 실제 불합리하고 부당한 구조를 이용해 구성원들에게 막강한 권한을 행사해 왔다. 마사회와 경마 관계자라는 생산자·마주·조교사·기수·말관리사들과의 관계는 상하 위계구조다. 마사회는 위계구조의 맨 꼭대기에서 등록권과 면허권을 독점해 먹이사슬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고 있다.

1993년 개인마주제가 도입된 이후 소위 ‘소사장’ ‘하청사장’ 역할을 하는 게 조교사다. 조교사 면허 발부와 갱신이 마사회 권한이라 통제력이 강력하다. 막강한 결정 권한이 있는 마사회에 밉보이기라도 하면 말을 키우고 훈련시키는 마사(마방) 대부를 받지 못할 것이기에 조교사는 마사회의 마름, 소사장 역할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조교사와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말관리사나 기승계약을 하는 경마기수는 조교사에 의해 철저히 통제된다. 한국마사회법에 따르면 기수는 매 경기마다 최선을 다해 전력질주해야 한다. 그러나 종종 조교사를 통해 작전지시라는 명분으로 부정한 지시가 있다. 이를 거부하면 먹이사슬 최말단의 말관리사와 기수는 생존을 위협당한다. 더구나 기수는 개인사업주 신분으로 노동자성을 빼앗긴 특수고용 노동자다. 마사회에 잘못 찍히면 최저임금 수준에도 못 미치는 금액으로 한 달을 살아야 한다. 이것이 마사회의 다단계 하청구조이자 갑질구조다.

문중원 열사가 마사회에 항거하며 자결한 지 2월20일 현재 84일째다. 유가족은 문중원 열사가 유서에 남긴 직접적인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권리만 있고 책임은 없는 마사회의 71년 뿌리 깊은 무소불위 권력에 맞서 고인을 모시고 서울로 올라와 광화문광장 한복판에서 고인과 함께 싸우고 있다. 그동안 언론을 통해 밝혀진 불법 배팅룸 운영, 해외원정 도박단 유치 등 마사회의 불법·부패 행위자들은 정직·감봉 등 솜방망이 처벌만 받았다. 마사회는 스스로 경마 시행체일 뿐이라면서도 경마 관계자들에게는 자격정지와 자격박탈, 등록취소 등 권력을 휘둘렀다.

문재인 정부 들어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만 네 번째 죽음이다. 석 달이 다되도록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을 외치고 있는 유가족에게 싸늘한 문재인 정부는 잔인하다. 7명이나 죽어도 자기성찰과 반성이 없는 마사회가 스스로 제도개선안을 발표하고, 구조적 문제를 셀프 조사하겠다고 한다. 고인이 돌아가신 날 경마경기를 하지 못했다며, 20여일도 안돼 보전경기를 하겠다고 나섰던 마사회는 자정능력이 없음이 확실하다. 적폐권력 마사회가 공공기관으로 정부 위에 군림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적폐정부 시절이야 박근혜-최순실에게 말을 갖다 바치는 등 약점 잡힌 정부라 마사회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고 치자. 그것을 혁신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태도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현 마사회장을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임명했다. 정부가 공공기관을 관리하고 감독해야 하는데, 오히려 정부가 관리받고 세금을 챙긴다는 오명을 벗기 위해서라도 문재인 정부는 즉각 조치를 취해야 한다.

정부 위에 군림하는 마사회의 적폐권력을 해체해야 한다. 한국마사회 문중원 경마기수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을 위한 시민대책위는 19일 마사회의 불법·부정행위 국민감사를 청구했다. 매출 증대에만 혈안이 된 마사회가 공공기관으로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온 나라를 투전판·도박판으로 만들고 있고 사람을 무려 7명이나 죽이고 있는 현실을 국가기관이 제대로 관리·감독하라는 취지다. 부정부패 행위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로 설립 취지에 맞는 공공기관으로 탈바꿈하는 데 역할을 하라는 뜻이다. 문중원 열사 죽음의 책임자는 명백하게 마사회다. 책임자 처벌은 흐지부지 넘어갈 수 없다. 22일 정부서울청사 옆, 고인의 운구차가 자리한 시민분향소로 ‘일하다 죽지 않게, 차별받지 않게!’를 외치는 사람들이 모인다. 죽음을 멈추는 희망버스다. 3월7일이면, 문중원 열사가 고인이 된 지 100일이 되는데, 정말 그날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문중원 시민대책위는 온 힘을 다해 문재인 정부에 책임 있는 역할을 촉구하는 실천행동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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