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 남구 영남대의료원 본관 74미터 높이 옥상에서 고공농성을 벌이던 박문진(가운데)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이 노사 합의에 따라 12일 오후 농성을 풀고 내려왔다. 농성 227일 만이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꽃다발을 전해주자 웃고 있다. 정기훈 기자
“대충 내려오시지.” 박문진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이 철제사다리를 타고 내려오다 멈추고 카메라를 든 취재진들을 향해 연신 손을 흔들자 이길우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장이 우스갯소리를 던졌다. 주위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발이 안 떨어져.” 박문진 지도위원도 농담으로 맞받아쳤다. 그는 빨간 파카를 입고, 머리엔 노란리본 배지를 단 모자를 쓰고 있었다.

“미련 두지마. 박문진, 내려와라.” 나순자 노조 위원장도 너스레를 떨며 박문진 지도위원을 환영했다.

“박문진! 박문진! 박문진!” 그를 맞이하는 노조 조합원들은 구호 삼아 “박문진”을 외쳤다.

12일 오후 대구 남구 영남대의료원. 옥상위 옥탑에서 7개월 넘는 고공농성을 마치고 내려온 박문진 지도위원은 그를 맞으러 옥상으로 올라온 동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제가 이렇게 무탈하게 내려올 수 있도록 땅에서 많은 연대와 응원을 해 주신 동지들께 감사드립니다. 이젠 더 이상 우리 노동자들이 노조할 권리를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사회는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해 7월1일 박문진 지도위원과 함께 고공농성을 시작한 뒤 건강악화로 107일 만에 농성을 중단한 송영숙 영남대의료원지부 부지부장도 “긴 시간 동안 꿈을 꾼 것 같고, 오늘 드디어 그 꿈을 이루게 됐다”며 주위 사람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나순자 위원장과 이길우 본부장은 “건강하게 내려와 줘 고맙다”며 두 사람의 목에 각각 꽃목걸이를 걸어 줬다.

“영남대의료원 노사관계 발전 첫걸음 떼는 계기되길”

70미터 높이 영남대의료원 옥상에서 농성을 한 박문진 지도위원이 227일 만에 땅을 밟았다. 영남대의료원 노사는 지난 11일 밤 11시30분께 경북지방노동위원회에서 해고자 채용을 비롯한 현안에 합의했다. 박문진 지도위원과 송영숙 부지부장이 2007년 해고된 지 13년 만이다.

이번 합의로 박문진 지도위원이 지상에 내려오자 노조와 시민·사회단체는 해단식과 환영행사를 열었다. 나순자 위원장은 “대구지역과 보건의료노조가 함께 노동운동의 새 역사를 일궈 냈다”며 “이제 영남대의료원은 (이번 합의를) 노조탄압이라는 아픈 과거를 씻어 내고 노사관계가 발전할 수 있는 첫걸음을 떼는 계기로 삼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진경 영남대의료원지부장은 “227일 동안 맑은 날보다 어두운 날이 많았지만 내색하면 약해 보일까 봐 이를 악물고 버텼다”며 “사랑과 연대를 보내 준 동료들에게 너무 감사하다. 조직을 다시 세우겠다”고 말했다.

박문진 지도위원에게 빨간 파카를 선물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제가 (2011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크레인에 309일 있었던 것보다 박문진의 227일이 더 힘들었다”며 “제 친구가 제 발로 내려오게 해 주셔서 너무 고맙다”고 인사했다.

해고자 2명 채용, 박문진 지도위원은 채용 뒤 사직

노사가 서명한 조정서에 따르면 영남대의료원은 박 지도위원과 송 부지부장을 채용하기로 했다. 송영숙 부지부장은 올해 5월1일자로 무기계약직으로 채용하고, 근무 1년 뒤 노사가 협의해 정규직 채용절차를 진행한다. 박문진 지도위원은 다음달 1일자로 채용한 뒤 채용 당일 사직하되 의료원이 위로금을 지급한다.

노사는 노조 가입과 탈퇴의 자유를 보장하기로 했다. 노사관계 발전을 위해 노사가 상호 노력한다는 문구도 담았다. 노조 관계자는 “지난해 10월 사적조정위원이 제시한 조정안에는 ‘2006년부터 이뤄진 조합원 탈퇴자에 대해 노조가 탈퇴 가부 의사를 확인해 사측에 통보한다’는 내용이 담겼는데 이번에 합의한 조정서에는 그 내용이 없다”며 “앞으로 직원들을 노조에 가입시키는 것은 노조 몫”이라고 전했다. 2006년 지부 조합원은 950명이었는데, 이듬해부터 1년6개월 만에 850여명이 지부를 탈퇴했다.

노사는 본 현안과 관련해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고, 과거에 제기된 법률분쟁도 취하하기로 했다. 노조는 해고자 문제와 관련해 향후 어떤 추가적인 요구를 않는다는 데 동의했다. 김선우 영남대의료원 범시민대책위원회 공동상황실장은 “부족한 합의지만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이 정도라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영남대의료원은 2006년 지부가 3일간 부분파업을 하자 이듬해 지부 간부 10명을 해고했다. 2010년 대법원은 7명을 부당해고로 인정했다. 박문진 지도위원과 송영숙 부지부장은 이날까지 복직투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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