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영연 공인노무사(민주노총 법률원)

2019년 12월31일. 동료들과 종무식 겸 식사를 하고 퇴근을 하려는데 다급한 전화가 걸려 왔다.

요지는 “수년째 저성과자로 분류돼 교육명령·전보발령 등 자주 인사처분을 받았다. 당장 내년 1월2일부터 외부장소로 출근해서 교육을 받으라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날 저녁 장시간 통화를 하고 2020년 1월이 되자마자 사무실로 내담자 대면상담을 하게 됐다. 상담을 요청한 분은 남성이었는데, 부인이 함께 동행했다.

내담자의 부인은 핏기 없는 얼굴에 불안한 눈동자가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부인은 ‘남편이 당하는 직장내 괴롭힘’으로 인해 오랜 기간 중증의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부부가 정신질환을 겪으며 가정이 파탄지경에 이르렀다.

사실 내담자와 동행한 이는 부인만이 아니었다. 내담자의 부인은 본인이 키우는 반려견을 옆에 두고 상담을 진행하기를 요청했다. 반려견이 없으면 정신적으로 너무 불안하고 힘들어 해서 의사가 정신과 치료목적으로 권해 줘서 데리고 다닌다고 했다. 사실 개가 너무 커서 속으로는 조금 놀랐지만 내담자 가정의 정신적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었다.

내담자의 부인은 “2019년 12월31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무작정 전화를 했는데 전화를 받아주셔서 너무나 감사했다. 사실 그날 모든 걸 포기하려고 했다”고 말해 나는 가슴을 쓸어내릴 수밖에 없었다.

내담자의 회사는 노동자 퇴출을 목적으로 ‘저성과자 성과향상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런 가학적 인사노무관리는 직장내 괴롭힘의 한 유형으로 꼽을 수 있다.

노동조합이 없는 상황에서 노동자 개인이 직장의 가학적 노무관리에 맞서기는 어려웠다. 처음에는 먹고살아야 하니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저성과자 프로그램에 순응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찍힌’ 내담자는 매년 근무평가에서 최하등급을 면하기 어려웠다.

회사는 내담자에게 회사 외부의 ‘스터디카페’를 교육장소로 지정하고 내담자 혼자 스터디카페에 가서 개인 노트북으로 회사가 준 과제를 해서 제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직장내 괴롭힘이 협박·모욕·폭언·명예훼손·따돌림 등의 유형으로 나타날 경우 쉽게 위법성을 인정할 수 있지만, 전보나 교육이수명령 같은 직장내 괴롭힘은 사용자의 인사권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짐으로써 위법성을 판단하기에 어려움이 따른다.

개정 근로기준법은 직장내 괴롭힘을 법적으로 규율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으나 아직까지는 이 법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다. 가해자 처벌 규정이 없고, 사용자가 괴롭힘의 주체라면 더더욱 직장내 괴롭힘 피해자가 보호받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담자는 더 이상 순응하지 않기로 했다. 버티기만 해서는 더 나은 상황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고용노동부에 직장내 괴롭힘 진정을 접수하기로 했다. 노동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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