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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의 근거-정규직 전환의 ‘모범’ 모델이라는 노사합의서를 읽으며
▲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재판을 다녀왔더니 사무국장이 노사합의서 하나를 보여 주며 물었다. 벌써 2년 전에 작성한 합의서였다. 2016년 5월28일 구의역 김군 사망사고를 계기로 서울지하철의 승강장 스크린도어 등에서 일하던 비정규직, 즉 외주업체 노동자들에 대해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직접고용 방침을 밝혔고 이에 따라 서울교통공사 소속으로 고용됐다. 하지만 직영 전환 과정에서 선별채용 절차를 통해(일부를 탈락시킴으로써 논란이 되기도 했다) 직접고용된 노동자들은 문재인 정부 아래서 정규직 전환을 추진해 온 많은 공공기관들처럼 기존 정규직과는 다른 처우가 적용되는 이른바 무기계약직 ‘신분’이었다. 2017년 12월31일 서울지하철의 노사합의서는 그 무기계약직의 일반직 전환에 관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그 노사합의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가 쏟아졌는데, 한 일간신문에서는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이 “(이번 합의 내용이) 이미 무기계약직으로 1차 전환된 노동자를 다시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어서, 한 단계 나아간 모델로 정부에 큰 압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2017년 5월 촛불대선을 통해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인천국제공항에 달려가 공공기관에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겠다고 밝혔고, 그 뒤 공공기관마다 이를 추진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공공기관의 기존 정규직과는 별개의 처우를 하는, 즉 임금 등 근로조건에 관해 차별하는 이른바 무기계약직 전환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서울지하철에서는 사측 서울교통공사와 노동조합 사이에 그 무기계약직의 일반직 전환에 관해서 노사합의했던 것이니, 공공기관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서 모범사례로 불릴 만했다. 그러나 바로 그 노사합의서가 문제였다.

2. 무기계약직을 일반직으로 전환하는 노사합의서가 문제였다. 그에 따라 무기계약직에서 일반직으로 전환된 노동자들이 그 노사합의에 불만을 말했다. 도대체 어째서 불만인 것인지 나는 노사합의서를 읽었다. 사용자 서울교통공사와 체결한 그 노사합의서에는 정규직 노동조합으로 서울지하철노조(1~4호선)와 5678서울도시철도노조(5~8호선), 서울메트로노조 등 세 노조가 참여해 서명날인했다. 합의서에는 주된 내용으로 공사는 무기계약직(업무직)의 근무기간이 3년 이상인 노동자는 공사 7급 정규직으로 임용하고 3년 미만일 땐 7급보라는 직급으로 임용한 뒤 3년 이후 7급으로 임용하기로 했으며, 기존 정규직과 동일하거나 비슷한 일을 한 무기계약직은 정규직과 같은 직종으로, 다른 업무를 맡던 무기계약직을 위해서는 새로운 직종을 마련하기로 했다. 여기서 근무경력 3년 이상을 7급 정규직 임용기준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 불만을 가질 만도 했다. 정규직으로 전환함에 있어 일정 기간의 근무경력을 요구한다면 그 자체로 비정규 노동자는 정규직 전환 이후에 기존 정규직과 차별적인 처우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근속에 따른 임금 수준의 차이는 퇴직할 때까지 계속되게 된다. 만약 그 차이를 무기계약직과 정규직의 임금 차이만큼 정하게 되면, 별도 취급의 직군은 아니지만 실질적으론 별도 취급을 받게 된다. 그런데 노사합의서를 읽다가 서울교통공사에서 경력사원 채용시 다른 사업장 근무경력 인정기준에 관한 규정까지 살펴보게 됐다. 많은 사업장들에서 경력사원 채용시 통상적으로 인정해 주는 정도의 기준이었다. 서울지하철에서 외주업체 소속이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서는 이를 인정해 주지 않았다. 노사합의서를 통해 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노사 간 합의했다. 이를 위해 무기계약직의 일반직 전환을 추진하면서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이 서울교통공사를 퇴직하고 신규입사하는 방식까지 취했다. 여기까지 서울지하철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관한 노사합의서를 읽었을 때, 나는 퇴직 및 신규채용 절차를 이용해 사용자가 노동법적 책임을 회피했던 사례들을 떠올렸다. 회사의 분할 및 합병, 영업 양도 등 기업변동시 고용승계에 따른 사용자로서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서 로펌의 자문을 받아서 이 나라 사업장들에서 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그로 인해 해고되고 임금이 삭감돼 나를 찾아와 상담하고 소송했던 노동자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그리고 현대차에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겠다며 신규채용 방식을 취하고 비정규직 근무경력 중 일부만 인정한 노사합의서까지도 새삼스럽게.

3. 최근 대법원은 2년을 초과해서 사용한 기간제 근로자가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에 의해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로” 간주됨에 따라(4조2항) 그 근로자의 임금 등 근로조건이 문제가 된 사안에서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정규직에 적용되는 취업규칙상의 근로조건이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대법원 2019. 12. 24. 선고 2015다254873 판결). 비록 기간제법에서는 명시적으로 비정규직에서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전환된 이후 근로조건에 관해서는 규정하고 있지 않지만 기간제법의 목적, 관련 규정 체계와 취지, 제정 경위 등을 종합할 때 해당 사업 또는 사업장 내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정규직 근로자가 있을 경우 “달리 정함이 없는 한” 그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취업규칙 등이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물론 서울지하철에서 외주업체 소속이던 비정규직 노동자를 서울교통공사 소속으로 전환한 것은 이러한 기간제법에 따른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이런 판례 법리를 내세워 서울지하철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방식이 위법·부당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한 취지만큼은 나는 결코 다른 것이라고 말할 순 없다고 보고 있다. 그러니 적어도 그 법리의 근본 취지만큼은 새겨서 공공기관 등에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때 임금 등 근로조건에서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공약했던 문재인 정부니 말이다.

4. 노사합의서에 관해 읽다가 체결 직전 상황에 관한 보도를 읽게 됐다. 당시 사측은 ‘근무기간 3년 경과자의 순차적 정규직 전환’ 방침을 고수하고, 이에 대해 3노조인 서울메트로노조는 이러한 사측 입장에 동의했으나 서울지하철노조와 서울도시철도노조의 경우 기존 약속대로 ‘내년 1월1일 전원 정규직 전환’ 입장으로 맞서고 있다고 한 언론은 보도했다. 그 뒤 노사합의서에서는 근무기간 3년 경과자를 7급 정규직에 임명하고 그 미만은 7급보로 임명하고서 3년 경과 후 7급에 임명하도록 한 것이니 사측의 방침대로 합의하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서울지하철에서 정규직 전환에 대한 기존 정규직의 불만으로 노노갈등이 심각하다고 보도하고 있었다. 그 한 사례로 정규직으로 구성된 ‘공정사회를 염원하는 서울교통공사 청년모임’은 “무분별한 무기계약직의 정규직화는 반칙과 특권의 연장에 불과하다”며 “기회는 평등하게 절차는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 합리적 일반직화가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기자회견을 했다고 보도했다. 아마도 공사 정규직으로 채용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쉽게 외주업체 소속 노동자로 일하다가 자신들과 같은 정규직으로 전환된다는 데 대한 불만이 이렇게 기자회견으로 표출된 것이라고 보인다. 사실 이런 불만은 일반 사업장에도 있다. 비록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대의’ 앞에 드러내 놓고 말하지 못해도 분명히 있다. 아무리 노동자는 하나라고 외치며 노조를 하고, 노동운동을 하지만 분명히 하나가 아니라고 여기고 있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누구나 분명히 그렇다고 알고 있다. 그러니 노조·노동운동은 노동자가 하나이기에 하는 운동이 아니라, 하나가 되기 위해 하는 운동이라고 말해야 할지 모른다. 노동자의 현재 상태를 있는 대로 들여다보는 걸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운동이 있는 대로 들여다보지 못하는 걸 두려워할 일이다. 노동자의 문제를 알고서 그걸 극복해 나가는 일이 노동운동의 일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서울지하철에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서 그 비정규직 근무기간을 경력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사측이 제시한 대로 서울지하철에서 일정 기간 근무를 정규직 전환의 조건으로 노사합의에 이른 것도 이런 문제를 드러내 놓고 극복하고자 하지 못해서일 것이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아니라 그들은 비정규직이었고 우리는 정규직으로 채용된 것이기 때문에 차별은 인정돼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지만, 노사합의서는 그렇게 읽힌다. 그러니 비정규직이었던 노동자가 자신을 차별하는 내용이 담긴 노사합의서를 읽고서 그걸 체결한 노조들에 그 차별의 근거를 묻는 것도 당연하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김기덕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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