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호 한국노총 대변인

“대중은 개·돼지”라는 발언으로 영화와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린 이강희 논설주간의 주옥같은 어록은 이뿐이 아니다.

“어차피 그들은 술자리나 인터넷에서 씹어 댈 안줏거리가 필요한 겁니다. 적당히 씹어 대다가 싫증이 나면 뱉어 버리겠죠. 우리나라 민족성이 원래 금방 끓고 금방 식지 않습니까. 적당한 시점에서 다른 안줏거리를 던져 주면 그뿐입니다. 어차피 그들이 원하는 건 진실이 아닙니다.”

이강희 논설주간은 영화 <내부자들>에 나오는 인물이다. 백윤식 배우가 연기한 이강희 논설주간의 영화 속 대사는 지금도 펄떡펄떡 살아 숨 쉰다. 영화가 나온 지 4년이 지났지만 가공의 인물들이 한 말들이 여전히 회자되는 것은 ‘현실보다 더 사실’ 같기 때문이다.

오래된 대사에 숨을 불어넣는 것은 ‘현실의 이강희’들이다.

최근 일부 언론이 특별(인가)연장근로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과 연결해 사설을 썼다.

“마스크 연장근로 반대, 노동계 이기심에 경악”(파이낸셜뉴스), “코로나사태로 생산차질, 연장근무 다 막을 셈인가”(헤럴드경제), “마스크업체 주 52시간 연장근로 막는 노조들”(조선일보), “양대 노총, 신종 코로나 위기에 연장근로 반대 유감이다”(서울신문), “이 판국에 특별연장근로 반대 소송 내겠다는 양대 노총”(매일경제), “탄력근로제 개편 철저히 외면하더니 신종 코로나로 인한 기업 고충도 무시”(국민일보), “마스크 생산 연장근로 막는 양대 노총, 정부가 빌미줬다”(중앙일보).

온 국민의 관심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모이는 이때, ‘술자리나 인터넷에서 씹어 댈 안줏거리’로 ‘노조’를 올려놨다.

사설의 내용은 대동(大同)할 뿐, 전혀 소이(小異)하지 않다. 양대 노총이 행정소송을 통해 마스크 방역업체 등의 특별연장근로를 막음으로써 국민 건강과 국가 경제를 위협한다는 내용이다.

양대 노총이 지난해 11월부터 특별연장근로를 반대해 왔고 행정소송을 준비했기 때문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무관하다는 사실은 이들 언론에는 중요치 않다. ‘대중이 원하는 건 진실이 아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진실을 가리고 싶어 하다 보니, 사설을 쓰는 데 기본적인 팩트도 체크하지 않는다. 정부는 299명 이하 사업장에 대해 노동시간단축을 하지 않아도 처벌하지 않는다며 처벌을 유예했다. 이들 업체는 사실상 한 주에 최대 68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 마스크나 방역 관련 사업장들은 대부분 여기에 해당된다. 그럼에도 모자란 현실의 이강희들은 사설에서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해야 “주 52시간에서 최대 12시간 더 일할 수 있다”든지 “12시간 초과해서 일할 수 있다”는 엉뚱한 소리를 해 댄다.

현실의 이강희들은 자신들의 지향점을 사설 속에 슬그머니 밀어 넣는다. 노동시간단축 제도가 잘못됐다는 얘기다. 중앙일보와 문화일보는 화살을 정부에 돌리며 “무리한 노동시간단축”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고 주장한다. 결국 떡 본 김에 제사 지내겠다는 보수언론을 베껴 쓰다가 몇몇 언론은 본의(?) 아니게 노동시간단축 무력화에 나선 셈이 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결은 다를 수 있지만 과로사 방치는 우리 사회의 불감증 바이러스 중 하나다.

안전보건공단 자료에 따르면 2018년 과로사로 구분되는 뇌심혈관계질환 사망자는 457명이었으며 그 가운데 300명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는 328명이었다.

우리나라는 과로사 대책이 미흡한 데다가 재해 인정률도 매우 낮다. 따라서 노동시간단축은 과로사 예방과 인간다운 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정책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이용해 역사를 거꾸로 돌리고자 하는 현실 이강희들의 음흉한 속내는 참으로 고약하다. 그런데 영화 속 이강희의 최후는 어떻게 됐더라?

한국노총 대변인 (labor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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