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사회 고 문중원 기수 죽음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시민대책위 주최로 5일 오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마사회 구조와 실태 조사 보고회’ 자리에서 고 문중원씨의 아내 오은주씨를 비롯한 유가족들이 발표를 듣고 있다. 정기훈 기자
렛츠런파크 부산경남(부산경남경마공원) 고 문중원 기수는 부정경마와 한국마사회의 부정채용 의혹을 제기하고 지난해 11월29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가족은 고인의 시신을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 세워 둔 운구차에 안치한 채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노총 문중원열사대책위원회는 한국마사회와 사태해결을 위한 집중교섭을 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교섭은 지난달 30일 끝내 결렬됐다.

집중교섭에 참여했던 대책위 관계자는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7명의 노동자가 숨진 것에 대한 일말의 반성이나 문중원 기수 유가족에 대한 조그마한 배려는 찾아볼 수 없었고 책임회피에 급급해하는 마사회의 모습을 봤다”며 “장례를 치르고자 절실한 마음으로 교섭에 임했지만 도저히 합의를 끌어낼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노동·종교·시민·사회단체의 광범위한 비판에 직면해도 마사회가 고집을 꺾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사회 수익창출에만 힘 쏟고 비리에 둔감”

마사회 고 문중원 기수 죽음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는 5일 오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마사회 구조와 실태 조사 보고회’를 개최했다. 건강한노동세상·공익인권법재단 공감·민변 노동위원회·생명안전시민넷·서교인문사회연구실·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등이 진상조사팀을 꾸려 문중원 기수 죽음을 초래한 배경을 진단했다. 이들은 “외부에서 견제받지 않는 마사회, 비리에 무감각하고 제 식구 감싸기 조직문화가 몸에 밴 마사회가 문중원 기수 죽음을 불러왔다”는 결론을 내렸다.

시민대책위 진상조사팀은 보고서에서 “(마사회가) 사행성 사업인 경마를 독점적으로 시행하면서 조직이 부정과 비리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았다”며 “수익을 창출하는 데에만 힘을 기울여 부작용이 극대화했고 비리에 둔감해졌다”고 평가했다.

마사회 비리가 외부에 가장 크게 노출된 사건은 박근혜 정부 시절 삼성 출신 현명관 마사회장이 국정농단에 연루된 일이다.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의 승마를 지원하면서 특혜를 줬다. 하지만 이 일로 처벌받은 마사회 직원은 없다. 한국마사회법에 따르면 마사회 직원들은 마권을 살 수 없다. 국무총리실은 지난해 마사회 설립 이후 최초로 직원들의 불법베팅을 감사했다. 전체 직원 6천여명 중 1천여명이 불법에 가담한 정황이 드러났다. 일부 직원이 해외에 머물면서 허위로 출근등록을 하고 급여를 받은 정황도 감사에서 확인했다.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는 “적폐는 청산되지 않았고 그들이 중심이 된 마사회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잘못된 구조를 바꾸지 못하고 있다”며 “문중원 기수가 내부 비리를 폭로하고 죽음을 택했는데도 마사회는 반성하지 않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요구에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견제 못해 … 마사회 권한 분산해야”

마사회는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그럼에도 마사회는 정부 견제를 받지 않고 사실상 독자적인 지위와 기득권을 행사한다. 천지선 변호사(민변 노동위원회)는 “마사회법에 따라 농식품부 장관이 마사회를 관리·감독하지만 그 역할은 마사회가 국가 재정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에 집중돼 있다”며 “마사회는 불법 경마장을 설치해도, 거짓보고를 해도 고작 100만원 이하 과태료만 내면 된다”고 비판했다. 그는 “조교사와 기수에 대한 면허 발급·마사대부(마방임대) 심사는 독립적인 기구를 두고 공정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마사회 권한을 분산시켜야 한다”며 “기수와 마필관리사 등 경마 관계자의 목소리를 경영에 반영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마사회 개혁을 위해 범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은 “마사회는 도박을 통한 수익을 추구하기 위해 독점적인 권한을 부여받으면서 개혁에 둔감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며 “독점적·폐쇄적·반공공적인 권력을 해체하기 위해 사회적 압박과 범정부적 개입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고용노동부 산업재해 발생현황에 따르면 2018년 기준 마사회 기수의 산업재해율은 72.7%다. 전지인 건강한노동세상 사무국장은 “기수는 말의 상태와 경마장 상태, 악천후를 이유로 기승을 거부하거나 선택할 권한이 없어 산재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며 “기승을 거부할 권리, 기승하지 못하더라도 적정생계비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