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초치기다. 사는 게 숨 가쁘다. 이 일을 마치면 저 일이다. 언제나 바쁜 일이 대기하고 있다. 칼럼 쓰는 월요일 오후에 인터뷰 약속이 잡혀 있었다. 사실 그 정도 시간은 낼 수 있을 거라고 예상하고서 약속했다. 당연히도 빗나갔다. 얼마 전 내가 쓴 칼럼을 읽었다며 기자가 요청하기에 별 생각 없이 수락했던 것인데 칼럼 작성을 막 시작한 오후 2시에 기자가 찾아왔다는 말을 듣고서야 내가 생각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노동의 사법화에 관해서라고 했다. 주제를 듣고 보니 생각나는 게 있었다. 최근 임금피크제 관련해서 노조가 해야 할 일에 관해서 이 칼럼, 매일노동뉴스 ‘김기덕의 노동과 법’란에 쓴 적이 있는데 기자는 내 칼럼을 읽었다고 말했다.

기자는 물었다. 그는 최근 어디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 “노동운동이 점점 법에 의존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냐”고 했다. 질문 목록을 한 장 가득 쓴 질문지를 건네주는데 갑자기 열이 좀 올라왔다. 받지도 않고 그냥 묻는 대로 대답을 하겠다며 나는 서둘렀다. 기자는 알지 못했다. 노동운동·노동자·노동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취재를 시작했던 것으로 보였다. “소송은 새로운 권리를 주지 않는다.” 나는 이렇게 시작했다. “노동자가 소송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건 자신의 권리를 확인받은 것이다. 근로계약·단체협약·취업규칙 등이 정한 것을 권리로 선언해 구제해 주는 것이지 새로운 권리를 주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말했는데도 그는 ‘노동자·노동운동이 법에 의존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냐”고 물었다. 그가 권리와 법, 소송에 관해서 잘 알지 못해서 다시 묻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빨리 마쳐야겠는데 알아듣지를 않으니 열은 더 올라왔다. 한마디로 정리해 마무리하고자 했지만, 내 대답은 자꾸만 열나게 길어졌던 날이었다.

2. 벌써 3주 전에 있었던 일이다. 노동문제를 다루는 월간지 기자가 했던 질문을 그가 보낸 이메일에서 찾아 다시 읽었다. 기자는 자신의 기획이 “왜 노동은 기울어진 운동장인 법에 의지하는가”라는 의문을 해소하는 데 있다고 밝힌 후 아래와 같이 자신의 의문을 길게 쓰고서 질문을 시작하고 있었다.

“법과 판례는 노동에 불리하게 작용할 때가 많”은데 “단적인 예로 파업으로 인한 업무방해죄 적용이나 공무원·교사의 노동권 제한이 있”고, “파업으로 인한 피해를 노동자와 노동조합에 민사상 손해배상”하도록 한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계 내부에서는 몇몇 ‘노동악법’을 규정하고 개정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와 반대로 “노동의 사법화 현상이 지적되고 있다”며, “노사문제 해결의 원칙은 ‘노사의 사적자치’임에도 불구하고 법원에서 ‘옳음과 그름’을 판가름 내려는 경향”이 있는데, “예컨대 통상임금 소송이나 불법파견 문제, 김기덕 대표님이 지적하신 임금피크제 문제 등이 있”다. 이렇게 “일견 두 현상은 모순적”이고, “기울어진 운동장인 법원에 노동문제의 해결을 요청하는 형국”이다. 여기서 쌍따옴표 안 인용은 질문지에 쓴 기자의 말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3. 20여년 전 민주노총 금속산업연맹 법률국장으로 일하기 시작할 때가 떠올랐다. “노동운동은 사용자 자본을 상대로 투쟁해야지 법으로 하면 안 된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노조간부·활동가들이 나 들으라고 했던 말이다. 소송 등 법적으로 자꾸 대응하게 되면 조합원들이 투쟁하지 않게 된다는 말이었다. 제법 심각하게 말했어도 나는 무심하게 흘려들었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하에서 구조조정 저지와 고용안정을 위한 투쟁이 수많은 사업장에서 벌어지고, 민주노총과 연맹 차원에서 총파업 내지 총력투쟁을 전개하고 있을 때였다. 불법파업투쟁으로 내몰려 이를 주도한 많은 노조간부들이 수배와 체포, 구속돼 형사처벌을 받는 상황에서 그들을 변호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변호사로서 내가 그들을 변호하기 때문에 투쟁이 약화된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 체포되고 구속된 그들을 변호한다고 해서 그들이 투쟁에 소극적으로 될 것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2000년, 그리고 2001년 대우자동차 해외매각 및 정리해고 저지투쟁으로 거의 매일 인천의 경찰서들을 들락거리며 체포된 조합원들을 접견하고 변호하면서도 나는 단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노동자투쟁을 불법으로 내모는 법을 비판하고, 파업 등 노동자투쟁은 불법으로 규정돼서는 안 되며, 무엇보다도 파업투쟁 자체를 업무방해죄 등 범죄로 처벌하는 법집행이 부당하다고 최후변론을 할 때면, 그런 법과 법집행을 넘어서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 결의를 다졌다. 결코 나는 그런 변호로 피의자 조합원들과 피고인 노조간부들이 투쟁할 의지를 꺾었을 거라고 믿지 않는다.

4. 기자는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구분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노동자가 자주적으로 투쟁해야 하는 문제와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를 구제받아야 하는 문제를 하나로 뒤섞고서 ‘노동의 사법화’란 말로 규정짓고 말았다. 노동자가 단결해서 교섭하고 파업 등 투쟁할 수 있도록 단결권·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 등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인데, 이는 노동자의 자유라고 할 수 있다. 권력과 자본이 민형사상 규제로 간섭하지 않고 노동자를 내버려 두라는 ‘자유’의 문제인 것이다. 바로 이 노동자의 자유가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는 엉망이다. 교원과 공무원, 심지어 일반 노동자조차도 기업노조라는 이유로 노동자는 해고자와 함께 노조를 조직해 단결할 자유를 박탈당하고 있다. 법은 노동자의 자유를 부정하고, 법원은 노동자의 자유를 처벌해 왔다. 단순히 노무제공을 거부하는 파업조차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그 주체, 목적, 시기와 절차, 수단과 방법 등으로 규제해서 불법과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심지어 아직도 사용자의 예측 여부와 손해 규모 등을 따져 파업을 업무방해죄를 구성한다고 법원은 판결하고 있다. 이렇게 이 나라에서 노동자의 자유가 불법과 범죄로 내몰리게 되면서, 노동자의 자유 행사가 사용자에게 손해배상할 일이 되고 말았다. 이 나라에서 노동자의 자유를 부정하는 법은 이제 부정돼야 한다. 대표적인 노동악법은 바로 이렇게 노동자의 자유를 부정하는 법이라 할 수 있다. 노동자의 자유, 즉 노동자가 단결해서 교섭과 행동할 자유인 노동기본권을 부정하는 노조법 등 노동악법은 전면적으로 개폐돼야 마땅하다.

그런데 기자는 불법파견·통상임금·임금피크제 등의 소송 문제를 여기에 연결 지어 ‘노동의 사법화’라 말했다. 파견법을 위반해서 사내하청 노동자를 사용하는 원청 사용자를 상대로 사내하청 노동자가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하고, 노사합의로 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해 놓아 노동자가 상여금 등도 법상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며 사용자를 상대로 추가 법정수당 청구소송을 하며, 노조가 동의해 줬다고 임금피크제에 따라 임금을 삭감하자 노동자가 사용자를 상대로 근로계약상 임금 지급의 청구소송을 하는 것을 두고서 기자는 ‘노동의 사법화’ 운운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이렇게 소송하는 걸 두고서 기자는 “노사문제 해결의 원칙은 ‘노사의 사적자치’임에도 불구하고 법원에서 ‘옳음과 그름’을 판가름 내려는 경향”이라 진단하며 나름 문제의식을 가지고 기획취재하는 것이겠다. 그런데 뭐가 ‘노사의 사적자치’라는 것일까. 기자는 노사문제 해결은 노사 간 자치적으로 해결해야지 법원에서 해결하는 것은 문제라고 보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틀렸다. 노동자의 권리 문제를 노동자의 자유 문제로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사용자를 상대로 단결해서 교섭과 투쟁으로 쟁취한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침해를 법적으로 구제받겠다는 문제를, 사용자를 상대로 교섭하고 투쟁할 문제로 착각하고 있다. 물론 사용자가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에도 노조가 파업투쟁을 통해 사용자를 압박해 조합원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할 수도 있겠다. 그것까지도 그래야만 한다고 주장한다면 뭐 더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노조가 할 일은 무엇보다도 노동자에게 새로운 권리를 쟁취해 주는 것이다. 이미 노동자의 권리로 된 걸 두고서 노조가 노사자치 해결 문제 운운하며 사용자와 협상에 나선다면 어찌 될까. 엉망진창이 되고 만다. 임단협에서처럼 노동자 요구안을 두고서 절충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임단투에서와는 달리 더 나은 권리를 달라는 요구안이 아니라 기존 권리를 두고서 노조가 절충하는 일이 벌어진다. 이미 통상임금·임금피크제 등 이 나라에서 많은 노동자의 권리가 이런 식으로 절충되고 말았다. 그렇게 노동자의 권리가 삭감되고 반납되며 포기되는 일이 수도 없이 벌어져 왔다. 이미 확보된 노동자의 권리를 두고서 사용자와의 절충은 노동자에게서 권리를 빼앗는 짓이다. 노동자의 권리 쟁취가 아닌 노동자의 권리 박탈은 노조가 할 일이 아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인 법원”일지라도, 거기서 노동자가 사용자의 침해로부터 자신의 권리를 구제받기 위해 행동하는 걸 ‘노동의 사법화’라 비난할 순 없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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