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2002년 3월16일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 경찰은 시설의 모든 출입구를 통제했다. 공무원 노조 출범을 준비하던 이들은 회관 주차장 내 버스 안에서 출범 선언을 했다. 최초의 공무원 노조인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공노총)이 탄생한 순간이다. 출범 18년 동안 공노총은 최대 규모의 공무원노조 총연합단체 위상을 공고히 했다. 지난해 연말 기준 5개 연맹, 118개노조, 17만 조합원 규모로 성장했다.

석현정(51·사진) 공노총 위원장은 올해 1월부터 3년 임기 위원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치러진 5대 위원장 선거는 예상보다 치열했다. 위원장-사무총장 후보조가 동반출마하는 선거인단 선거에서 석현정-고영관 후보조는 50.89%의 득표율로 당선했다. 경쟁한 최병욱-신동근 후보조보다 29표 앞섰다. 치열한 선거에는 으레 내부 갈등이 뒤따른다. 석 위원장은 “초기 어려움이 더 많은 자극과 열정을 불어넣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공노총 3년살이’를 위한 큰 그림을 제시했다. 정책과 투쟁력을 강화하고, 공무원연금 하후상박 개편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공무원의 정치기본권·노동기본권을 쟁취하기 위해 총선에 개입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다른 한 축인 민주노총 공무원노조와 일상적 연대를 강화한다. 그는 “싸우더라도 자주 만나는 부부 같은 사이가 되고자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대구 북구청 출신의 석 위원장은 당선 직전 시군구연맹 위원장을 지냈다. 인터뷰는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용산구 공노총 위원장실에서 했다.

“공노총 일치단결해 정책·투쟁 양 날개 갖추겠다”

- 공노총 위원장에 당선되면서 시군구연맹 위원장 3년 임기에 이어 또 집을 떠나 생활하게 됐다.
“남편과는 캠퍼스 커플이었다. 과 선배이기도 하다. 학생 시절부터 운동에 관심이 높았던 터라 노동운동을 인정하고 응원해 주는 편이다. 그래도 간혹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지난 3년에 이어 앞으로의 3년도 남편이 아이를 돌보지 않겠나(웃음).”

- 선거가 예상보다 치열했다. 갈등을 봉합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맞을 매는 먼저 맞는 게 낫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쉽게 일을 시작하기보다는 처음에 강하게 자극받아야 마무리도 잘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내부를 단합시켜야 한다는 무거운 소명감과 어려움이 저에게 더 많은 자극과 열정을 불어넣고 있다. 공노총을 일치단결시키고 싶다. 현 연맹 위원장들은 3년 동안 얼굴을 맞대며 사업을 했던 분들이다. 장점을 잘 알고 있다. 그분들은 제가 가진 단점을 잘 안다. 제 단점을 극복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면 강력한 연대의 힘을 발휘할 것이다. 단결을 위해 많이 얘기하는 수밖에 없다. 마찰과 불편함이 생기겠지만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신뢰가 쌓인다고 믿는다.”

- 정책·투쟁을 통해 승리하는 공노총을 만들겠다고 공약했는데.
“20년간 조합활동을 하면서 조합원부터 위원장까지 차근차근 올라왔다. 공무원 노조 운동의 토대가 취약했던 과거에는 우리 목소리를 알리는 투쟁을 가장 필요로 했다. 억압받았기 때문에 단결된 투쟁을 해야 했다. 그래서 간혹 정부와 국민은 우리의 투쟁을 억지를 쓰는 것이라며 손가락질하기도 했다. 이제는 정책적인 투쟁이 필요하다. 젊은 세대에 노조에 가입해 단결하자고 대놓고 말하면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노조가 당신의 삶, 조직 내 당신의 인사, 당신의 노동조건을 지켜 내고 후퇴하지 않는 이상으로 좋아지게 만드는 곳이라는 걸 보여 줘야 한다. 투쟁 계획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왜 투쟁을 해야 하는지 당위성을 설명하는 과정이 중요해졌다는 의미다. 이전에 이런 과정이 생략됐다. 앞으로는 정책을 강화해 보려고 한다.”

- 정부는 8월께 공무원연금을 개편할 것으로 보인다. 공무원 노사관계에서 중요한 변수다.
“공무원연금은 공무원을 임용할 때 정부가 약속한 노동조건이다. 역대 공무원연금 개편은 공무원 노조들이 반발하는 가운데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했다. 노동조건을 일방적으로 개악한 것이다. 연금은 공무원들이 정당히 받아야 할 권리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내 연금을 뺏기지 않고 지켜 내려고 싸웠다. 앞으로는 우리가 지금 받는 수준이 정당한 것인지, 지속할 수 있는 제도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연금은 후배들 돈으로 선배를 먹여 살리는 제도다. 내가 여태 선배를 먹여 살렸으니 앞으로는 후배들이 나의 연금을 책임져라? 이런 주장은 이제 설득력이 없다. 연금제가 지속가능하지 않다면 조금 넓은 시각을 가지고 연금투쟁을 해야 한다. 지속가능한 공무원연금을 만들기 위해 국민연금과 통합하는 방안까지 열어 두고 고민해야 한다. 공무원 노조들은 2015년 연금개악 당시 후배들의 연금손해를 사실상 눈감아 줬다. 앞으로는 그 반대가 돼야 한다. 공직사회를 이끌어 갈 젊은 공무원들의 노후를 선배들이 지켜 줘야 한다. 그렇게 되도록 투쟁하겠다.”

“공무원연금 희생 감내하고 하후상박 개편”

- 하후상박 개편을 추진하면 선배 공무원들이 박탈감을 토로하지 않을까.
“일반 노조였으면 조합원 이익만 바라보고 갈 수 있다. 밖에서 손가락질하더라도 견딜 수 있다. 그런데 공무원 노조는 조합원 이익과 공공의 가치를 고려해야 한다. 조합원 이익과 공공의 가치가 부합하지 않는 경우도 생긴다. 그럴 때 무엇을 우선해야 할까. 지금 같은 수준의 공무원연금을 받지 못한다고 한다면, 외부 압박에 의해 개악을 당하지 말고 우리 스스로 노력해 공적 가치를 추구해 나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 공무원연금처럼 사회에서 민감한 주제에 대응하려면 많은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은데.
“그 역할을 잘하라고 조합원들이 세워 준 위원장 자리 아닌가. 동지들과 조합원들의 투쟁력을 믿는다. 중앙에서 정책적인 면을 면밀히 준비하려고 한다. 집행부가 준비된 모습을 보여 주면 현장 투쟁력도 올라간다. 현장 노조 간부들을 만나면 ‘걱정하지 마라 투쟁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한다. 굉장히 든든하다.”

- 민주노총 공무원노조와 어떻게 연대할지도 관심사다.
“공무원 제 단체들이 대통합을 이루면 좋겠다. 제 임기 내에는 턱도 없겠지만 그 첫걸음을 떼는 위원장이 되고 싶다. 지금은 (공무원노조와) 정책적 연대를 하고 있지만 가까운 미래에는 조직을 같이하고 싶다. 그 역할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간혹 만나며 ‘잘 지내셨나요’라고 형식적 인사를 하는 관계가 아니라 싸우더라도 자주 만나는 사이가 되고자 한다. 부부 사이가 그렇지 않나. 자주 부딪치면 서로를 조금씩 닮아 가지 않겠나. 갈등이 생기더라도 지금보다 좀 더 가까이 연대하고 싶다.”
 

▲ 정기훈 기자

“각 당 공무원 노동기본권 입장, 총선 투표기준 삼을 것”

- 4·15 총선은 어떻게 대비하고 있나.
“정치기본권·노동기본권·공적연금 등을 주제로 정책질의서를 각 당에 발송할 계획이다. 그들의 생각을 받아서 조합원들에게 알릴 것이다. 단위 사업장 문제도 마찬가지로 대응한다. 각 지역에 출마하는 국회의원 후보들에게 질의할 예정이다. 각 당을 불러 정책토론회를 하려고 했는데 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해석하는 바람에 중단했다. 공무원이 특정 후보와 정당을 지지하지는 못하지만 노조 차원의 토론회까지 가로막는 것은 심하다고 본다. 공무원의 정치자유를 억압하는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공무원노조법)을 비롯한 관계법을 반드시 폐지해야 한다는 생각이 굳어졌다. 공무원 입에 재갈을 씌우는 것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았다.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총선에 개입하겠다. 조합원들에게 투표에 활용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할 생각이다. 노조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다. 우리는 공무원이기도 하지만 국민의 한 사람이다.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국민이 당연히 행사해야 할 정치기본권을 박탈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정치기본권 박탈은 공무원이 제 역할을 못하도록 옥죄는 도구다. 공무원은 공공의 가치를 지키고, 정부가 때때로 잘못된 정책을 펴면 반대 목소리도 낼 수 있어야 한다. 이 행동을 정부와 국회가 금지시켜 놨다. 공무원을 국민의 공복이 아닌 정부·권력의 공복으로 만들려는 것에 다름 아니다.”

- 노사관계 파트너인 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공노총은 수레의 한 바퀴를 열심히 굴릴 각오와 준비가 돼 있다. 또 다른 바퀴인 정부에 얼마나 준비돼 있는지 묻고 싶다. 행정안전부와 정책협의체를 구성하고 인사혁신처와 노동조건과 관련한 교섭을 하고 있다. 정부는 적극적으로 대화와 교섭에 임해 달라. 형식적인 절차로 공노총 등 공무원 노조들과 관계를 맺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이미 그런 우려가 있다. 정책과 노동조건을 정부가 사전에 결정해 두고 노조에는 서명만 하라고 강요하는 모습이 재현될 조짐을 보인다. 노사관계가 어떻게 나아갈지는 전적으로 정부에 달려 있다. 대립적 관계가 되지 않도록 서로 노력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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