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재훈 여행작가

많은 여행객들이 포카라를 찾는 이유는 포카라 그 자체보다는 히말라야-안나푸르나 트레킹을 준비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포카라에 와 보면 새삼 느끼게 되는 거지만 정말로 많은 이들이 산을 찾는다. 3~4일짜리 짧은 코스도 있지만 2주가 넘는 풀코스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더 놀라운 것은 그들 중 한국인들의 비중이 생각보다 훨씬 높다는 점이다. 지구 최고 등산의 민족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포카라는 트레킹이 아니더라도 가 볼 만한 동네다.

포카라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자주 하게 되는 일은 아침저녁으로 슬렁슬렁 호수를 거니는 일이다. 안개가 걷히기 전 아침에 걸어도 좋고, 석양이 지는 어스름에 걸어도 좋다. 동네 아주머니가 숯불에 굽고 있는 옥수수를 넘보는 소님의 어리숙한 좀도둑질은 정겹고, ‘개’편한 세상을 즐기며 멍 때리고 있는 동네 개님들의 표정은 더없이 부럽다.

낮 시간에는 숙소에서 늘어지거나, 카페에서 ‘죽 때리기’가 묘수다. 호수가 보이는 강변에 자리를 잡아도 좋고, 한 블록 안으로 들어와 나름 북적이는 큰길 2층 카페에 자리를 잡아도 나쁘지 않다. 시끄러운 게 싫다면 옆길로 타고 들어가 눈에 들어오는 카페에 느긋하게 자리를 펼 수도 있다. 따뜻한 차나 커피도 좋지만 여행에는 왠지 낮술이 어울려 보인다. 포카라에서는 누가 뭐래도 ‘구르카 맥주’를 마셔 주는 게 인지상정이다. 18세기 카트만두의 고대 왕국들까지 집어삼키고, 지금의 네팔 왕국을 일으켜 세운 산악민족인 구르카족은 지구 최강의 용병으로도 이름이 높다. 위세가 하늘을 찌르던 건륭제 시절의 청나라 군대도, 인도를 집어삼키고 히말라야를 넘보던 대영제국 시절의 영국군도 구르카 병사들 앞에서는 제 목숨 지키는 일부터 걱정해야 했다. 지금도 이곳 포카라에서는 해마다 200명 정도의 구르카 용병을 뽑아 영국으로 보낸다고 한다. 제국을 위협하던 용사들이 제국에 팔려 가는 모습이 씁쓸하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험난한 히말라야의 산과 계곡을 호령하던 그들의 오라(aura)가 느껴지기도 한다.

낮술 한잔에 몸이 좀 풀렸다면, 이제 또다시 슬렁슬렁 거리로 나올 차례다. 호수가 아닌 동네 골목길을 걸어 다니는 것도 운치 있다. 그렇게 복잡할 것 없는 골목이라 돌아보는 데 시간도 많이 안 걸린다. 걸어 다니면서 동네 사람들 사는 모습을 티 안 나게 훔쳐보는 여행자스러움을 즐기면 된다. 5미터는 족히 돼 보이는 기다란 베틀에 짱짱한 실을 걸어 두고 무언가를 열심히 짜는 이의 등판은 쉴 틈이 없어 보인다. 동네 공용 탁구대에서 내기 탁구 한판에 온통 빠져 있는 아재들은 마냥 즐겁다. 한국 아재들이 당구장에서 노는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공사장 인부들은 어디서나 햇살 아래 버겁다. 변변한 장비도 없이 손으로 건물을 이어 올리는 모습이라 더더욱 그렇다.

뭔가 가벼운 액티비티를 원한다면, 직접 작은 보트 하나에 몸을 싣고 노를 저어서 페와호수 한가운데로 들어가 멍 때리다 나와도 좋다. 서너 명까지는 탈 수 있으니 한 팀이 움직이기에도 나쁘지 않다. 다만 나갈 때 의욕이 넘쳐 과하게 노를 젓다 보면 돌아올 때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바람을 거슬러 나와야 하는 경우라면 그저 ‘안습’일 뿐. 저질체력이라면 나름의 안배가 필요하다. 사랑곶 높은 언덕에 올라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진짜 액티비티족이 돼 보는 것도 나쁘지 않고, 새벽에 좀 부지런을 떨어 사랑곶이나 평화의 탑에서 일출을 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하지만 부지런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호숫가에서만 어슬렁거리기가 그렇다면 버스를 타고 시내로 올라가 볼 수도 있다. 힌두사원인 빈디야바시니 사원(Bindyabasini Temple)까지 버스를 타고 나가서, 사원을 한 바퀴 둘러본 다음에 포카라 구도심을 가로질러 호수쪽으로 돌아오는 구도심 투어도 제법 볼거리가 있다. 포카라의 올드 바자르가 있는 구도심은 히말라야 트레킹이 성행하기 전만 해도 포카라의 활력이 모여 있던 곳이었다. 지금은 시장이라는 이름이 어색할 정도로 바래고 낡아 버린 건물들만 초라할 뿐이다. 상점들은 여기저기 비어 있고, 오가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3천만 가까운 네팔 사람들이 먹고살 일이 걱정스럽긴 하다. 변변한 산업이 있는 것도 아닌데, 히말라야를 낀 관광산업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걸 관광 중심지 포카라의 올드 바자르가 웅변하는 듯하다. 포카라를 오가다 보면 여러 군데의 초크(chowk)를 만나게 된다. 할란초크·하리초크·밀란초크 등등. 여행자들에게 이 초크들이 중요한 건 버스정류장이나 터미널이 대부분 초크에 있기 때문. 그리고 이 초크들은 큰길과 큰길, 작은 길과 큰길이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쯤 되면 ‘초크’에 대한 촉이 대충 온다. 초크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서아시아에서) 두 도로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오픈마켓 터.’

호수를 끼고 이삼일, 사원과 구도심을 돌며 하루, 사랑곶에 올라 멀리 안나푸르나 구경하는 맛에 하루. 포카라에서 일주일 정도 어슬렁거리는 일은 일도 아니다. 그렇게 포카라에서는 시간이 흔적 없이 지워지고 흘러가니까 말이다.

여행작가 (ecocj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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