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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 자료협조 거부 과태료 부과 법안 조속히 통과돼야손익찬 변호사(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 손익찬 변호사(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길을 걷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생각해 보자. 목격자도 CCTV도 없는 상황에서, 유일한 증거는 가해 차량 블랙박스뿐이다. 그런데 가해 차량 운전자가 블랙박스 제공을 거부한다. 심지어 가해자는 피해자인 내가 혼자 넘어진 것이고, 교통사고 자체가 없었다고도 주장한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현장에 출동하지도, 자료조사를 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경찰은 개인정보 침해 문제가 있으므로 피해자가 자료를 받을 권리는 없고, 경찰이 수집한 자료를 정보공개 청구해서 받아 갈 수 있다고만 설명한다. 가해자가 제출한 자료를 받아 보니 기한이 오래돼서 블랙박스 자료가 다 지워졌다거나, 블랙박스 영상 중에서 자기에게 유리한 부분만 제공해 놓았다. 보험사고가 발생했다는 입증책임은 나에게 있다는데, 자료를 얻는 것은 이토록 어렵다.

대개 산재보상을 신청하는 노동자들이 겪는 어려움이 이와 비슷하다. 위와 같은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8년 9월27일 사업주의 자료협조 의무를 구체화하고 불이행시 과태료를 부과하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행 산재보험법 116조(사업주의 조력) 2항에서는 “사업주는 보험급여를 받을 자가 보험급여를 받는 데에 필요한 증명을 요구하면 그 증명을 해야 한다”고만 정하고, 사업주에 대한 형사처벌이나 과태료 부과 같은 강제조항이 없다.

반면 한정애 의원의 개정안을 보면 116조2항을 개정해서 노동자측이 사업주에게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자료’를 요구할 수 있고, 사업주가 정당한 사유 없이 불이행하면 100만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된다고 정한다. 이러한 ‘자료’에는 산재 신청에 반드시 필요한, 근로시간을 알 수 있는 자료나 작업환경측정결과 보고서 등이 포함된다. 과태료 액수가 적더라도 공권력이 개입해서 사업주를 압박할 수 있으므로 나쁘지 않은 법안이다.

물론 노동자가 자료를 확보하지 않더라도 산재를 신청할 수는 있다. 위 서류들은 근로복지공단이 재해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서류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실’이라는 것은 조명하는 각도에 따라서 달리 보인다. 상당수 산재 사건은 아주 미세한 차이로 결론이 달라진다. 또 사업주에게 불리한 자료를 감출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부터 노동자가 자료를 확보하고 밑그림을 그리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노동자측의 산재수급권을 온전히 보장하려면 필요한 자료를 확보할 권리도 보장해야 한다.

변호사나 공인노무사가 대리하는 사건이어도 사업주에게 자료를 얻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협조를 거부하는 사업주들이 내놓는 답은 하나같이 비슷하다. 대체 사업주가 왜 도와줘야 하냐는 것이다. 사업주들은 우선 보험료가 오르는 것을 막연하게 걱정한다.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만 오르고 특히 질병의 경우에는 법이 바뀌어서 보험료가 인상되지 않는다고 알려 줘도 대개는 설득되지 않는다. 그리고 직업병 사건의 경우 사업장 작업공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꼴이 되기에 적극적으로 방어한다. 근골격계질환의 경우에도 한 건이라도 승인되면 유사한 질환을 겪는 사람들도 신청할 것 같은 두려움에 필사적으로 방어한다.

그런데 산재보험 제도는 사회보험이면서 민사법적으로는 ‘책임보험’ 제도다. 민법상 사업주가 노동자에게 지는 손해배상 책임을 대신해서 보험회사(국가·근로복지공단)가 보험금을 주는 제도라는 말이다. 만약 산재보험 제도가 없었더라면 사업주 입장에서는 산재 의심 사례가 발생할 때마다 소송에 휘말리게 되고 패소하면 거액의 배상금을 물을 위험을 안는다. 개별 사업주가 지는 위험을 전체 사업주에게 분산하는 제도가 산재보험 제도다. 사업주의 협조 거부로 공단에서 불승인 처분을 받는다면, 노동자가 마지막으로 선택할 방법은 사업주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길뿐이고, 이러한 외나무다리의 대결은 산재보험 제도가 탄생하기 이전으로 시간을 되돌리는 일이다.

사업주는 공단이 산재보험금을 지급하면 그 부분만큼은 자신이 민사 책임을 부담하지 않아도 되므로 사업주에게 이득이 된다. 그러나 이를 이득으로 여기지 않는 이유는 사업주가 궁극적으로 민사책임마저도 손쉽게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산재 민사소송을 걸면 사업주의 고의나 과실을 증명해야 하므로 무과실 책임인 산재보험보다 입증이 어렵다. 또 노동자측 실수나 체질적 소인에 관한 ‘과실상계’만 있을 뿐이고, ‘징벌적 손해배상’은 없으므로 배상액도 깎인다. 결국 당장 필요한 변화는 한정애 의원안같이 산재보험 제도 내에서 해결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산재 피해 노동자의 답답한 마음을 풀어 주려면 이 법안이 국회에서 최대한 빨리 통과돼야 한다.

손익찬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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