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차 승무원에게 발병한 하지정맥류가 업무상질병에 해당한다는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판정이 나왔다. 승무원은 열차 운행 전부터 서서 일을 한다. 매일노동뉴스 자료사진
열차 승무원에게 발병한 하지정맥류가 업무상질병에 해당한다는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판정이 나왔다. 수술실 간호사처럼 좁은 공간에서 정지된 자세로 오랜 시간 서서 일하는 노동자의 하지정맥류가 산업재해로 인정된 사례는 있지만 걸어 다니며 일하다 발병한 질병이 산재로 인정된 것은 이례적이다.

29일 법률사무소 일과사람에 따르면 근로복지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지난 9일 KTX·일반열차 승무원인 김아무개(31)씨의 요양급여신청 사건에서 하지정맥류를 업무상질병으로 인정했다.

김씨는 2012년 7월 한국철도공사 자회사인 코레일관광개발에 입사해 KTX·일반열차 승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2016년 4월부터 왼쪽 다리 종아리에 통증이 발생했다. 시간이 지나도 통증이 가라앉지 않았다. 여름 성수기를 맞아 업무량이 증가해 제대로 치료하지 못했다. 같은해 8월 찾은 병원에서 하지정맥류 진단을 받았다. 9월부터 두 달간 병가를 내고 수술 치료를 받은 뒤 현장에 복귀했다. 치료 후에도 질병은 완치되지 않았다. 병원측은 2018년 10월 추가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진단을 내놓았다. 김씨는 다시 두 달간 병가를 냈다. 그는 지난해 8월 “온종일 서서 일해 하지정맥류가 발생했다”며 공단에 산재를 신청했다. 열차 승무원 중 최초다.

승무원 노동환경 어떻기에 질병 발생했나

열차 승무원은 출발 전 열차를 점검한다. 또 열차 플랫폼에서 고객맞이 인사를 한다. 운행 중에는 차내 순회업무를 한다.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서도 정리를 위해 순회를 한다.

운행 중 순회업무는 20~30분 간격으로 이뤄진다. 이 시간 안에 열차를 한 바퀴 돈다는 얘기다. 김씨가 입사할 당시인 2012년 업무매뉴얼에 따르면 승무원은 치마를 입고 무릎을 굽혀 고객응대를 해야 했다. 구두 높이는 3~5센티미터 정도다. 2014년 12월에야 바지를 입을 수 있게 됐다. 최근에는 허리를 굽혀 응대하는 방식으로 완화됐다. 구두 높이는 3센티미터로 줄었다.

고객의 짐을 들거나 선반의 짐을 정리하는 등 무거운 물건을 다루는 업무는 수시로 했다. 공단 재해조사 결과에 따르면 김씨는 열차 안에서만 하루 평균 5시간, 평균 2킬로미터(1만8천보)를 걸었다.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는 업무상질병판정서에서 “하루 5시간 이상 서서 일하고 열차의 진동과 흔들림으로 인해 하지에 많은 힘을 줄 수밖에 없었다”며 “2킬로미터 이상을 불안정한 자세로 걸었고 불편한 복장으로 피로가 누적됐다”고 밝혔다. 이어 “전문의도 환자의 직업 특성상 서 있는 시간이 많고 정맥압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하지정맥류 발병에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는 “신청 상병은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는 것이 심의회의에 참석한 위원들의 일치된 의견”이라며 “신청인의 하지정맥류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업무상질병으로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유사업무 노동자 산재신청 확산 전망

김씨가 산재를 인정받으면서 유사 증상을 호소하는 승무원들의 산재신청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김씨가 일하는 코레일관광개발 부산지사에 하지정맥류를 호소하는 승무원은 10명 안팎인 것으로 전해졌다. 마트노동자·백화점판매 노동자 등 장시간 서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이번 산재승인이 참고사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건을 대리한 권동희 공인노무사는 “하지정맥류는 발병률에 비해 산재 신청·승인 건이 적은 대표적인 질병”이라며 “좁은 공간에서 서서 일하는 노동자의 하지정맥류가 산재로 인정된 사례는 있지만 승무원처럼 이동하는 노동자가 산재를 인정받은 사례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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