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변호사(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대상판결 : 헌법재판소 2012헌바90 노조법 24조2항 등 위헌소원

2018년 5월31일 헌법재판소가 대상결정을 선고했으니 벌써 1년7개월이 지났다. 헌법재판소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81조4호의 개정을 명한 기한인 2019년 12월31일이 속절없이 지났다. 노동현장에서조차 이 문제를 제기하는 이가 드물다. 그런데 지금에서야 다시 위 헌법불합치 결정을 꺼내 봐야 하는 까닭은 뭘까. 헌법과 법률에서 정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이 헌법상 각 주체에게 정한 의무가 분명함에도, 이를 다하지 않아 ‘운영비원조 금지조항’이 노조법에서 깨끗이 사라졌다. 이른바 ‘노조법에서 정한 운영비원조 금지 조항’이 노동현장에서 발생하는 다수의 노동분쟁 중 핵심인 것을 감안하면, 지금 위 결정이 갖는 헌법과 법률상 의의와 위 결정이 2020년 노동현장에 미칠 영향을 다시 살펴볼 상당한 이유가 있다.

국회가 무시한 ‘노조 운영비 원조’ 헌법불합치 결정

위 결정을 아직까지 이행하지 않은 국회의 직무유기는 위헌이고 위법이라는 데 이론이 있을 수 없다. 헌법재판소를 무시한 행태다. 노동은 물론 노사관계를 우습게 보지 않고서야 어떻게 위헌인 상태를 1년7개월여 지켜보고만 있단 말인가. 그들에게 노동은 과거에도 현재도 없다는 명백한 증거다. 앞으로 얼마간 이러한 위헌상태가 계속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위 결정은 그동안 행정부가 자행하고 법원이 방조한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 침해의 위헌성을 직접적으로 확인한 데 그 무엇보다 큰 의의가 있다. 위 사건 제기 경위에서 보듯이 2010년 노조법 개정 이후 개별사업장에서 노사가 자율적으로 맺은 단체협약에 대한 정부(고용노동부)의 무지막지한 시정명령이 시작됐다. 그 어떤 합리적인 기준도 없었다.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가 도입되면서 내놓은 ‘매뉴얼’이 노동현장을 지배했다. 형식상 법령도 아닌 그저 일개 부서의 내부 지침에 불과하고 위헌·위법적인 내용으로 메운 매뉴얼이었다. 그럼에도 지난 10여년간 이러한 매뉴얼에 근거해 노동현장 거의 모든 단체협약에 대한 강제분석과 수많은 시정명령이 뒤따랐다. 참으로 노동역사의 암흑기이자 위헌 상태라 이를 만하다. 위헌적인 노동행정의 참담한 결과는 익히 아는 대로다.

지방고용노동청의 시정명령에 대해 노조측에서는 행정소송 등으로 저항했지만 위헌적인 행정은 계속됐다. 위헌적인 행정이 가능하도록 법원은 힘을 실어 줬다. 시정명령의 부당함을 다투는 노동자들을 향해 대법원은 잇따라 “운영비 원조 행위는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잃게 할 위험성을 지닌 것으로 부당행위로 금지된다”고 연이어 선고했다(대법원 2016. 1. 28. 선고 2012두15821 판결, 대법원 2017. 1. 12. 선고 2011두13392 판결 등). ‘혹시나 했건만’ 노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대법원임을 확인한 노동현장은 완전히 절망상태였다. 그리고 ‘사법부가 정부의 노동정책에 부역한 것은 아닌가’하는 노동자들의 의심은 현재 억측이 아닌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다음으로 당장 2020년 노동현장에서 위 대상결정의 위헌결정이 끼칠 영향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헌법재판소가 주문한 2019년 12월31일까지 법률이 개정되지 않았으므로 현재는 ‘운영비 원조 금지’가 사라진 상태다. ‘금지하지 않으므로 허용된다’고 봐야 한다. 노조측에서는 그동안 노동부가 한 시정명령에 따라 반환하거나 빼앗긴 운영비 등을 되찾아 오거나 단체협상에서 다시 정하자고 제안해야 한다. 매우 정당한, 합헌이고 합법적인 협상안이다. ‘노동부의 시정명령 대상’이라는 사용자의 변명은 더 이상 통하지 않음을 사용자측에 확인시켜 줘야 한다. 대상결정에서도 ‘법 개정 전에도 자주성을 저해하거나 저해할 위험이 현저한 경우가 아니라면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분명하게 해석하고 있다.

노조의 운영비 원조 요구는 합법

복수노조 제도 아래, ‘운영비 원조 금지제도의 운영’에 관한 법리에서도 위 대상결정은 매우 의미 있는 해석을 했다. 특히 노동조합 설립 바람이 거세진 최근 노노 간 갈등의 대표적인 유형은 ‘복수노동조합이 있고 특정 노동조합에 대해서만 운영비를 원조하는 경우’일 것이다. 차별은 대부분 교섭대표노조와 사용자 사이 단체협약 등에서 비롯된다. 사용자에 대한 다수의 행정단속 및 형사처벌은 ‘교섭대표노조가 피해자인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로 행해진다. 때로는 교섭대표노조를 사용자가 행한 부당노동행위의 공범으로 처벌하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교섭대표노조가 피해자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에 대해 대상결정은 “이러한 노조 차별은 교섭대표노조와 사용자의 공정대표의무(노조법 29조의4) 위반이거나, 차별받은 노동조합에 대한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노조법 81조4호의 지배·개입)가 될 수 있다”고 해석한다. 교섭대표노조는 대등한 지위의 교섭 상대방이며 교섭의 결과물을 누리고 있다. 누가 보더라도 ‘자주성을 침해받은 자’라고 쉽게 평가할 수는 없다. 게다가 사용자가 행한 부당노동행위의 공범 주체는 더더욱 될 수도 없다. 대상결정의 이유를 노동부와 법원에서 충분히 참고할 만하다.

매우 훌륭한 결정임에도 대상결정이 남긴 아쉬움도 있다. 전임자급여 지급금지 등에 관한 규정(노조법 24조2항 등)이 운영비 원조 금지와 다르다고 평가했기 때문이다. 대상결정에서는 노조법상 양 제도 규정 형식과 내용, 금지의 취지와 규정의 내용, 예외의 인정범위 등에 차이가 있다는 이유를 제시했다. 과연 그런가. 동의할 수 없다. 유급 및 무급 전임자 모두 노동조합 운영의 핵심적인 요소다. 노동현장에서의 그 가치는 운영비 원조를 뛰어넘는다. 타임오프 제도 도입 이후에도 전임자급여는 가장 중요한 노사협상 대상이었다. 운영비 원조와 마찬가지로 노사 대등 협상의 결과물이므로 노동조합의 ‘자주성’이 침해될 여지는 없다. 더구나 복수노조 제도에서는 다른 노조의 존재는 전임자급여 결정에서의 ‘자주성’을 담보하고도 남는다. 그렇기 때문에 전임자급여 지급금지 규정(노조법 24조2항 등)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기각결정(합헌결정, 2014. 5. 29. 선고 2010헌마606 결정)은 바뀔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저해할 위험이 없는 경우’라는 대상결정의 기준을 전임자급여 지급금지에도 적용해야 한다. 이제 위헌 청구만 남았을 뿐이다.

국회, 헌법재판소 제시 기준 따라 입법해야

국회는 당장 입법에 들어가야 한다. 지난해 11월 여야가 각각 노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노동부에서도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을 포함한 노조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더불어민주당안(설훈 의원안, 의안번호 23598)은 노동부가 한 제안을 그대로 좇아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에 맞춰, ‘노동조합의 운영비를 원조하는 행위’가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저해하거나 저해할 위험이 있는 경우에 한해 부당노동행위로 처벌하는 것으로 규정하고자 함”이라고 제안이유를 밝혔다. 이에 반해 자유한국당안(윤재옥 의원안, 의안번호 23599)의 제안이유는 “노동조합의 운영비를 원조하는 행위 중 노동조합사무소의 운영과 관련한 최소한의 관리유지비를 원조하는 행위는 부당노동행위의 예외로 하려는 것임”이라고만 했다. 요컨대 국회는 헌법재판소가 제시한 기준에 따르면 충분하다. “운영비 원조 행위로 인해 실질적으로 노동조합의 자주성이 저해됐거나 저해될 위험이 현저한 경우에 한해 제한한다”라고.

돌아보면 위 대상결정이 나오기까지 과정은 참으로 드라마틱하다. 직접적으로는 헌법재판소 재판관 구성의 변화가 큰 영향을 미쳤다. 2017년 3월10일 박근혜 정부 탄핵 결과 촛불정부가 탄생했고 촛불정신을 얼마간 반영한 헌법재판소가 구성됐다. 대상결정에서 ‘여전히 합헌이다’고 한 반대의견이 2명에 그친 것은 그 결과물이다. 그리고 서울 광화문광장에 모인 수천수만 노동자가 촛불정부 탄생에 함께했음은 긴 말이 필요 없다. 결과적으로 대상결정은 10여년간 노동권을 잃었던 노동자의 절절한 요구에 정부와 헌법재판소가 응답한 결정이라고 평가하더라도 손색이 없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위 입장이 영구불변의 진리가 아니라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최고 사법부이기는 하나 대법원과는 달리 노동현장에서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숙명을 안고 있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만약 노동자가 스스로 노사관계의 자주성을 지킬 의지가 없거나 노동자임을 부정할 때 헌법재판소는 즉시 다수의견을 바꿀 것이다. 노동행정이 과거 암흑기보다 더 준동하더라도 헌법재판소는 아마도 침묵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올해가 그래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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