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10년 전 ‘청년 민주노총’을 내걸고 민주노총 위원장에 당선했던 김영훈(52·사진) 정의당 노동본부 본부장이 노동정치에 도전한다. 그는 “감히 전태일의 이름을 걸고 4월 총선에 출사표를 던진다”며 “50년 전 청년 전태일이 ‘나를 아는 모든 나, 나를 모르는 모든 나’라고 노동을 호명했듯, 또 다른 나인 오늘의 모든 전태일의 이름으로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에 출마한다”고 밝혔다.

철도노동자로 노동운동을 시작해 민주노총 위원장을 거쳐 노동정치에 뛰어든 김영훈 본부장은 “전태일의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외침을 넘어 모든 노동자가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고 단결하고,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무분별한 공공부문 민영화와 제2의 김용균을 막기 위한 발전 5사 통합과 전력산업 재공영화도 그가 국회에서 이루고 싶은 꿈이다.

22일 오전 국회에서 만난 김 본부장은 “노동현장과 당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노동이 당당한 나라를 만드는 준비된 노동대표”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노동, 국민의 삶 관통하는 핵심”

- 정의당에서 연이어 총선 출마 소식이 들린다.
“지난 21일부터 당 내 비례대표 경선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다. 본격적인 출마선언이 이어질 것이다. 저 역시 <매일노동뉴스>를 통해 공식적인 출마를 알린다. 설연휴가 지나면 비례대표 후보 출마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다. 50년 전 전태일은 ‘나를 아는 모든 나, 나를 모르는 모든 나’라고 노동을 호명했다. 노동에 인격을 부여한 것이다. 전태일의 정신은 평등과 연대를 실현하는 데 있어 타인과 내가 다르지 않다는 것,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나를 위한 희생임을 뜻한다. 부족하지만 감히 또 다른 나인 오늘의 모든 전태일의 이름으로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에 출마하고자 한다.”

- 정의당의 노동대표임을 스스로 선언한 것인데, 노동계 할당은 없나.
“19일 총선룰을 확정하는 당 전국위원회가 열렸다. 청년 할당과 농·어민 전략명부 신설 등이 논의됐다. 일부에서 ‘노동이 당당한 나라를 표방하는 정의당에서 정작 노동 전략명부는 왜 실종됐느냐’는 항의성 문자를 많이 받았다. 당의 5대 핵심전략에 청년 정치세력화와 호남 최대 정당지지율 확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밖의 노동권을 찾겠다는 노동전략이 포함돼 있다. 비례대표 후보 선출에 노동전략이 포함되지 않은 것은 조금 달리 봐야 한다. 농민은 이미 우리 사회 소수자다. 이주노동자와 규모가 비슷하다. 반면 임금노동자는 3천만명에 육박한다. 청년과 여성·이주민 등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문제가 노동으로, 후보를 특별히 할당하는 전략보다는 청년노동과 여성의 경력단절, 이주노동 등 전 국민의 삶을 관통하는 핵심 문제로 노동이 자리 잡고 있다. 이것이 정의당의 핵심전략이기도 하다. 비례대표 명부에서 몇 번에 배치될 것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정의당에는 훌륭한 노동계 출신 후보가 많기에 내부에서 치열한 경쟁을 통해 후보가 배출되기를 바란다.”

“전태일 3법·전력산업 재공영화 추진”

- 노동이 당당한 나라를 이야기했다.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은 어떻게 평가하나.
“노동존중 사회라는 비전은 훌륭했으나 길을 찾는 데는 실패했다. 대통령의 의지는 있었을지 몰라도 노동에 대한 철학이 빈곤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해 한일 갈등을 무릅쓰고라도 이행하겠다는 분명한 철학과 의지를 가지고 있다. 그런 철학과 의지가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문제나 현대자동차 불법파견에는 왜 적용되지 않나. 똑같이 대법원 승소 판결을 받은 사안이다. 보수언론이 경제위기를 조장하며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직접고용을 반대할 때 ‘대법원에서 판결 난 사안을 지키지 않는 것이 과연 나라냐’고 왜 반격하지 못하나. 이중적인 잣대다. 정부의 진정성에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가 탄생할 때 조직된 노동자들이 많은 지지를 보냈다. 하지만 그 지지가 이제 실망으로 돌아오고 있다. 정의당이 고민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노동자들의 실망을 정의당이 담을 준비가 돼 있는지 매일 스스로에게 묻고 있다.”

- 국회의원이 된다면 추진하고자 하는 입법은.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쳤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근기법 적용제외 대상이 과다하게 양산되고 있다. 근기법 밖의 전태일이 너무 많다. 근기법 적용을 받지 않는 5명 미만 사업장 중 영세하지 않은 곳도 많다. 유명 프랜차이즈 미용실이나 동네 병원은 위장된 5명 미만 사업장이다. 그런 차원에서 ‘전태일 3법’을 발의하고자 한다. 모든 노동자에게 근기법을 적용하고, 일하는 모든 사람에게 단결할 권리를 보장하자는 것이다. 강제된 자영업자인 특수고용 노동자와 플랫폼 노동자에게도 노조할 권리와 단결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영세한 자영업자도 마찬가지다. 모든 일하는 사람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조직을 만들 때 사회적 대화가 가능하다. 문재인 정부의 사회적 대화는 미조직 노동자에게 단결할 권리를 부여하지 않은 채 시작됐다. 단결하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나. 근본적인 모순이다. 나아가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이루지 못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추진하겠다. 2017년 5월1일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발생한 크레인 사고로 비정규 노동자 6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삼성중공업은 고작 벌금 300만원만 냈을 뿐이다. 원청에 책임을 물어야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다.

전력산업 재공영화와 발전 5사 통합, 경쟁을 이유로 분리된 KTX와 수서발 고속철도(SRT) 통합도 추진할 예정이다. 한때 우리 사회를 풍미했던 분할·민영화의 신화는 거짓으로 드러났다. 위험의 외주화라고 하는데, 애초에 위험한 일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회사를 분할하고 업무를 쪼개 비정규직에게 맡겼기 때문에 위험해졌다는 것이다. 전력산업도 멀쩡한 회사를 5개로 분할했다. 무리한 비용절감이 김용균 노동자 죽음 같은 참사를 만들었다.”
 

▲ 정기훈 기자

“대중적 인지도만으로는 정치할 수 없어”

- 출마를 선언하며 전태일 유서를 인용했다. 올해가 전태일 열사 50주기다. 특별한 계획이 있나.
“40주기 때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전태일 평전 읽기 운동을 했다. 올해는 전태일기념관이 있는 서울지하철 종로3가역의 이름을 변경하는 캠페인을 하려고 한다. ‘종로3가·전태일역’으로 병기하는 것이다. 전태일을 대중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물론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전태일을 알게 되는, 그런 작은 변화를 이뤄 내고 싶다.”

- 출마의 변을 미리 한다면.
“노동이 당당한 나라를 위해 준비된 노동대표라고 자부한다. 정의당이 선거제 개혁으로 비례대표 후보가 기존보다 늘어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한편으로는 정의당을 대표할 만한, 당에서 단련되고 검증된 숨은 인재가 있는지에 대한 걱정도 나온다. 국회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은 헌법기관이기에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 당선돼서는 안 된다. 대중적 인지도만으로는 정치를 할 수 없다. 민주노총 위원장 시절에 통합진보당 분당 사태를 지켜보며 진보정치는 노동을 모른다고 원망했다. 그런데 돌아보니 노동은 과연 정치를 잘 아는가 하는 반문이 들었다. 정치는 갈등을 조정하고 큰 책임이 뒤따르는 쉽지 않은 일이다. 노동정치는 더욱 어렵다. 정치를 외면하는 대가는 가장 저질의 사람에게 지배를 당하게 된다고 하지 않나. 짧지 않은 노동현장 경험과 당에서의 경험을 통해 이 시대 또 다른 전태일, 모든 전태일의 이름으로 저의 모든 열정과 역량을 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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