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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본 인권위 간접고용 제도개선 권고 ⑤] 용균이가 빠진 법을 왜 ‘김용균법’이라고 하나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11월5일 ‘간접고용 노동자 노동인권 증진을 위한 제도개선 권고’를 발표했다.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도급 금지 유해·위험 작업 범위 확대 △위장도급 근절 △사내하청 노동자 노동 3권 보장을 위한 제도개선을 하라고 권고했다. 노동부는 20일까지 답변을 내놓아야 하지만 아직 뚜렷한 움직임이 없다. 노동·시민·사회단체가 노동부에 권고 이행을 촉구하는 글을 보내왔다. 6회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아들의 사고 전까지 나는 지극히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우리 부부는 아들 용균이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자식이라고는 아들 하나였기에 늘 다칠까 봐 불안해하며 마음을 놓지 못했다. 부모로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아이였기에 노심초사하며 지켜봤다.

아들은 전문대를 졸업했고 우여곡절 끝에 변변치는 않지만 공공기관인 서부발전 하청회사에 입사했다. 그런데 아들이 출근한 지 3개월도 채 안 된 어느날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살면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 나 또한 별 탈 없이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은 아들이 산업재해 사고를 당하며 철저하게 부서졌다. 세상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고, 가슴속엔 터질 듯한 분노가 끓어올랐다. 조상이 굽어 살펴준다면 이럴 순 없다고, 신이 있다면 이런 엄청난 일을 겪도록 절대로 방관하지 않았을 거라며 원망했다. 아들을 지키지 못한 나 자신도 너무 밉고 싫었다. 자식한테 잘해 주지도 못해 놓고 목 놓아 우는 것조차도 아들한테 면목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아들을 잃고 보름 후인 2018년 12월25일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국회를 찾아갔다. ‘위험의 외주화’를 막겠다는 취지였다. 용균이를 생각하며 뭐라도 해야 했다. 정부여당, 야당 할 것 없이 찾아가서 법을 통과시켜 달라고 읍소했다.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면 내 아들 같은 사고를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보수야당의 방해에 법 통과에 어려움을 겪었다.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 국회에 출석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여야 간 정치협상 카드로 내몰렸다. 국민의 죽음을 막자는 데 당리당략으로 협상을 한다는 게 납득이 안 됐다.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은 결국 통과됐지만 재계 반발로 누더기가 됐다. 여당도 야당도 정부도 재계 반발에 힘을 쓰지 못했다. ‘김용균법’이라는 산업안전보건법에는 내 아들도, 구의역 김군도 포함되지 않았다. 정치인들이 노동자들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원망의 화살은 곧바로 사회로 향했다. 처음엔 아들의 잘못으로 몰고 간 원·하청 회사를 원망했다. 아들은 변변한 안전교육 없이 밤낮으로 혼자서 일했다. 현장은 위험천만했다. 언제 어디서든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죽음의 현장’이었다. 아들은 사고 후 4시간 만에 발견됐다. 사측은 시신 수습도 하기 전에 옆 라인을 가동시켰다. 그리고 다시 4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아들 시신이 수습됐다. 사고 이틀 째 되는 날, 아들이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증거를 찾기 위해 현장을 방문했다. 사고를 은폐하기 위해 현장은 깨끗하게 물청소돼 있었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폭발했다. 어떻게든 국민에 고발하고 알려야 했다. 나라에서 운영하는 공공기관이라는 곳이 이 따위로 안전을 방치하고 국민을 기만하다니. 구조적으로 비정규직을 만들어 권한은 원청이, 책임은 하청 말단 직원인 사고 당사자에게 지우게 만드는 부조리를 뿌리 뽑고 싶었다. 자연스레 싸워야 하는 대상이 커져 갔다.

고용노동부를 찾아가서 “8년 동안 12명이 산재사망사고를 당했는데 제대로 된 조사와 재발방지를 위해 조치를 취했다면 용균이 사고는 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지금 당장 재발방지 조치를 취해 달라”고 요구했다. 세 번을 찾아가서 촉구했지만 노동부는 ‘소 귀에 경 읽기’처럼 요지부동이었다. 분노는 증폭돼 갔다. 그래서 아들이 생전에 들었던 피켓처럼, 권한을 가진 책임자 대통령이 해결하라고 했다. 결국 2019년 2월5일 당정은 ‘고 김용균 노동자 사망 후속대책’을 발표했다. 합의된 내용이 일사천리로 이행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큰 착각이었음을 곧 알게 됐다. 정부와 합의하고 특조위 조사로 22개 권고안이 그해 8월에 나왔지만 지금까지도 현장에서 이행된 게 없다. 직접고용 정규직이 돼야 죽음을 막을 수 있다는 특조위 권고는 이행되지 않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용균이와 같은 노동자들이 여전히 도급 노동자인 상태의 산업안전보건법이 문제라고 하는데도 정부는 꿈쩍하지 않고 있다.

1월16일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이 시행됐지만, 이 법으로는 일터에서 노동자들의 죽음을 예방할 수 없기에 참담할 뿐이다. 아들을 잃은 아픔을 가슴에 안고 다른 사람들이라도 끔찍한 아픔을 겪지 말기를 바라며 달려왔건만 도대체 무엇을 했단 말인가.

세월호 참사를 보며 느낀 것은 내가 믿고 살고 있는 나라가 겉보기와는 다르게 속은 더러울 정도로 뿌리 깊게 썩어 빠졌다는 것이다. 그 썩은 뿌리를 끊어 내야 사람들이 일하다 죽지 않고, 일하다 다치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요구한다. 산업안전보건법을 재개정하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라. 기업들이 안전을 소홀히 해 산재사망사고가 발생하면 크게 타격을 받는다는 것을 알려 주고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도록 해야 한다. 산재사망사고 유족들을 만나고 같이 슬퍼하는 일이 더는 없었으면 좋겠다.

김미숙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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