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직무·능력 중심 임금체계 개편 얘기를 또 꺼냈다. ‘직무중심 인사관리 따라잡기’ 책자를 발간하는 방식이다. 정부가 올해 경제정책방향에 ‘직무·능력 중심 임금체계 개편 지원’을 넣었는데 그 일환으로 기업들이 개편할 때 참고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다. 노동자들은 박근혜 정부 시절을 떠올린다. 정부가 2대 지침을 내놓고 성과연봉제 도입을 밀어붙이며 공공기관 노조와 맞부딪치던 때 말이다. 당시 박근혜 정부에 맞섰던 공공부문 노조들은 문재인 정부 직무급 중심 임금체계 개편 띄우기를 어떻게 볼까.

 

▲ 윤정일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

박근혜의 성과연봉제 밀어붙이기와 판박이
윤정일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

정부는 민간과 공공부문 모두에서 연공급제 임금체계를 부수려는 목적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고용노동부 발표에 앞서 지난해 12월 기획재정부 공공기관운영위원회는 올해 직무와 성과중심 임금체계를 도입할 경우 경영평가에서 인센티브를 준다고 결정했다.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직무급제를 도입하고 민간으로 확산하겠다는 정부 기조가 공공기관운영위와 노동부 발표로 현실화했다.

정부는 직무급으로 장기적 저성장과 노동시장 양극화에서 오는 격차 문제에 대처하고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취지를 살릴 수 있다고 홍보한다. 이런 주장이 전혀 타당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임금체계는 노사관계와 노무관리를 결정짓는 등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수단이 되기 때문에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충분한 공감대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공공부문에서 경영평가 방식을 통해 임금체계를 바꾸겠다는 의도는 박근혜가 성과연봉제를 추진했을 때와 판박이다. 이대로 밀어붙이면 임금체계 개편을 수용하지 않는 노조는 싸우고, 노조가 없거나 힘이 약한 곳은 사측 강압이 먹히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짧은 시간에 완료하려는 점도 문제다. 직무에 따라 임금을 차별화하기 위해서는 직무에 대한 정확한 평가나 직무분석이 따라야 한다. 시간이 소요되는 작업이다.

노조를 비롯한 노동계는 충분한 논의와 협의를 통해서 합당한 임금체계를 노사교섭과 사회적 대화로 만들어 가자고 정부에 여러 차례 제안했다. 임금체계 개편의 핵심이 격차 축소에 있다고 보고 정부에 연대임금제 현실화 방안 등을 논의하자고 여러 차례 제안했다. 응답하지 않더니 이렇게 일방적으로 추진하겠다고 선포해 버렸다. 노정 갈등이 불가피하다.


 

▲ 이지섭 금융노조 홍보실장

당사자와 아무 논의도 없는 최악의 행정 결정
이지섭 금융노조 홍보실장

개혁을 위한 논의는 언제나 옳다. 그러나 이번에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방식은 아니다. 때로는 내용보다 형식이 중요할 때가 있고,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임금노동자의 생계수단인 임금을 좌지우지할 문제라면 더욱 그렇다. 당사자와 아무 논의도 없이 직무급제로의 임금체계 개편을 장려하고 나선 것은 어떤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는 최악의 행정 결정이다.

사실 직무급제는 학계에서조차 노동시장 내부 격차를 완화하고 노동자 간 연대를 실현하기 위한 대안으로 줄기차게 제안했던 방안이다. 그러나 그렇게 대안으로 제시된 가장 큰 이유인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가 충족돼야 하고 그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바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이윤율 격차 해소와 초기업단위 교섭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기업의 지불능력과 직결되는 문제이기에 대기업에 수직계열화로 종속된 중소기업의 이윤율 저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애초 직무급제를 통한 양극화 해소는 불가능하다. 이 문제가 해결된다 해도 초기업단위 노조에 산업 수준의 임금정책에 개입할 수 있는 적극적인 교섭 권한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직무급제는 개별 사업장에서 일의 종류에 따라 신분과 임금수준을 나누는 새로운 계급제도가 될 뿐 양극화 해소에는 어떤 역할도 할 수가 없다. 정부가 진짜로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실현하고 싶다면 문재인 대통령 공약인 초기업단위 교섭 촉진부터 이행하고 나서 얘기해야 한다.

 

▲ 진병우 공공노련 정책실장

정공법으로 협의하라
진병우 공공노련 정책실장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직무·능력 중심 임금체계 개편 지원’은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먼저 정부가 왜 정공법이 아닌 편법을 쓰냐는 것이다. 앞에서는 노동계와 합의가 기본이며 노사 자율로 추진한다고 하면서 뒤에서는 경영평가에 항목을 만들고 직무급 전환 매뉴얼을 발표하는 등 기관과 여론에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공공부문 임금체계 개편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공공기관위원회에서 정부 요구로 이미 의제에 올라 있다. 공공부문 노조가 기획재정부와 협의를 시작하는 중요한 시점이다. 어느 때보다 교섭 상대로서 정부에 진정성이 요구되고 있다. 악몽 같았던 성과연봉제로 생긴 노동계 불신을 해소하고 갓 시작한 노정교섭이 제대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정부가 부처별로 대화와 압박을 병행하는 이중적인 모습부터 버려야 한다.

두 번째는 정부가 호봉제를 개편한다면서 내놓는 논리가 비현실적이고 노동계 동의를 얻기 어렵다는 점이다. 40대 취업률이 28년 내 최저치를 기록한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에게 장기근속은 생존 문제다. 고령사회로 갈수록 고용 지속과 임금기대치 또한 높아진다. 상대적으로 저임금에 고강도 업무를 수행하던 청년기를 거쳐, 장년기에는 숙련된 업무능력을 바탕으로 임금을 더 받아 생애임금의 균형을 맞추는 형태의 호봉제는 우리나라 산업구조와 직장문화의 특성이 반영된 것이다. 임금체계 변경이라는 거대 이슈를 다루면서 노동계 우려를 진지하게 성찰하지 않은 채, 호봉제는 악(惡)이고 직무급제는 선(善)이라는 식 접근은 누구의 공감도 얻기 어렵다. 지금이라도 제대로 논의하자. 그러나 정부는 아직 준비가 덜 된 것 같다.

 

▲ 나영명 보건의료노조 기획실장

임금체계 개선 해답이 직무급제는 아니다
나영명 보건의료노조 기획실장

정부가 직무급제 도입을 서두르고 있는데 박근혜 정부가 밀어붙인 성과연봉제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노사자율과 합의를 내세우고 있지만 직무급제 모델안을 설계하는 것에서부터 작무급 도입 매뉴얼을 배포하고, 무료컨설팅을 지원하는 데 이르기까지 정부는 여전히 일방통행식 밀어붙이기를 한다. 노사 대화는 없고 약한 곳에서부터 직무급제 도입의 물꼬를 트겠다는 계산뿐이다.

임금구성의 복잡성, 임금격차 확대 등 현행 임금체계의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폭넓게 형성돼 있다. 그러나 그 해답이 정부가 주도하는 직무급제는 아니다. 연공급을 완화하기 위해 임금동결구간을 만들고 평가에 따른 임금상승단계를 만드는 직무급제를 만병통치약처럼 들이민다면 임금삭감·임금통제·교섭권 박탈 꼼수라는 비판을 피해 갈 수 없고, 노동자들의 격렬한 저항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보건의료노조는 임금실태 전면조사를 바탕으로 임금구성의 복잡성, 커다란 임금 편차, 임금인상에 따른 임금격차 확대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산별임금체계와 연대임금전략을 준비하고 있다. 정부는 임금삭감을 노린 직무급제를 일방적으로 강행할 것이 아니라 현행 임금체계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합리적인 대안을 놓고 노동계와 대화하고 산별교섭을 활성화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 정윤희 공공연맹 정책실장

선 직무수행체계 개편 후 임금체계 논의해야
정윤희 공공연맹 정책실장

문재인 정부는 공정임금과 동일노동 동일임금, 초기업별 교섭 정착이라는 대선 공약을 밝힌 바 있다. 그리고 공정임금체계를 직무중심 임금체계로 상정했다. 2018년부터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에 직무성과급제 도입을 위한 공개토론회와 연구용역 등을 했고,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공공기관위원회에 임금체계 개편과 관련한 내용을 의제로 올렸다. 최근 고용노동부가 발간한 ‘직무중심 인사관리 따라잡기’ 또한 이 연장선이다. 노동계 내에서도 사회 불평등이 확대되고 부익부 빈익빈이 사회 문제화하는 상황에서 호봉제로 대변되는 연공서열 중심의 임금체계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그리고 그 대안이 직무중심 임금체계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공공기관의 임금체계 개편과 관련된 논의는 여러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임금체계는 일을 배분하고 수행하는 직무체계를 반영해야 한다. 연공급제는 순환보직과 협업이 전제돼 있다. 그렇다면 직무수행체계 개편 논의가 먼저고, 이에 따른 적절한 임금체계가 무엇인가가 논의돼야 한다. 일의 순서가 바뀌어 있다. 또한 기관 내부의 고용형태별 임금격차뿐 아니라 기관 간 임금격차도 만만치 않다. 현행과 같은 총인건비 관리 방식을 유지한 채 기관별로 직무급을 도입하는 형태에서는 공정임금이 될 수 없다. 이 밖에 직무분석과 평가의 주체 등 수많은 문제가 있다.

이런 문제를 도외시한 채 단지 ‘공공기관에 호봉제를 폐지하고 직무급제를 실현했다’라는 목표하에 진행되는 임금체계 개편은 박근혜 정권 당시의 성과연봉제 도입과 다를 바 없다. 정부가 임금체계 개편 관련 논의를 할 때마다 이야기하는 점진적·단계적·노사합의 원칙을 이번에는 제대로 구현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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