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탁 노회찬재단 사무총장

많은 이들이 노회찬을 부르고 있다. 총선이 다가와서인지 호명하는 빈도가 더욱 잦아지고 있다. 추모의 마음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자기가 주장하는 바의 근거로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많은 경우는 무엇을 이루겠다고 뜻을 세운 이들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의 마음 바탕, 즉 소명의 근거로 노회찬을 호명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정확하게 노회찬의 무엇을 부르고 있을까?

노회찬이라는 이름을 생각하면 많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그의 말이다. 상대에 대한 비아냥거림이 아니라 비유를 통해서 문제의 핵심을 짚어 내는 그의 뛰어난 능력에 탄복했던 이들이라면 어찌 그러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어서 그가 이 세상에 있어서 가장 좋았던 점을 꼽으라고 하면 역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그의 깊은 애정과 실천을 든다. 국회 청소노동자들을 대할 때 보여 준 그의 살뜰함에서뿐만 아니라, 그의 삶 전체가 사회적 약자와 함께하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노회찬 의원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사람마다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를 가까이에서 보았던 사회운동가들에게는 아마 6411번 새벽 버스가 가장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가 6411 버스를 불렀던 것은 사회적으로 이름을 받지 못한 이들에게 가장 알려지지 않은 정당의 대표로서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굳세게 손을 잡았으면 하는 강한 열망 때문이었으리라. 약자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보낸다는 차원이 아니라, 옆에 나란히 같이 있는 사람임을 전하지 못한 운동가로서의 안타까운 마음이자 더욱 스스로를 반성하고 길을 만들겠다는 각오였다.

우리의 기억에 남아 있고 또 현재도 운행하고 있는 또 다른 버스가 있다. 희망버스다. 전국 각지에서 출발해 2011년 부산의 한진중공업 크레인 농성장으로 향했던 희망버스는 그 이후 많은 투쟁현장으로 행선지를 변경해 운행했다. 그 버스는 투쟁하는 이들에게는 고립돼 있지 않음을 알리는 희망의 표지였고, 버스를 탄 이에게는 소박한 실천 하나가 큰 힘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희망의 상징이었다. 지금도 그 버스는 영남대의료원 박문진의 농성장으로 달리고 있다.

우리에게는 두 개의 버스노선이 생긴 셈이다. 투쟁 현장을 향하는 희망버스와 사회적으로 이름이 알려지지 않는 이들을 찾아가는 6411번 버스다. 희망버스가 직행노선이라면 6411번 버스는 낯선 공간을 군데군데 들르는 완행노선이다. 우리는 두 개의 노선이 다 필요하다. 다만 6411번 버스는 그 노선을 그리기가 좀 더 어렵다는 점은 있다.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만나고 또 관심을 갖는 데에는 많은 자원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노회찬재단에서는 그 작업의 일환으로 우선 돌봄노동을 다섯 가지 영역으로 나눠 현실과 대안을 찾는 작업을 시작했다. 또한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직접 연구에 참여해 정책을 생산하는 작업도 준비하고 있다. 6411번 버스 노선을 중심으로 한 빅데이터 분석도 진행하고 있다. 빅데이터 분석은 서울에서만 가능한 작업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도 분석이 가능하도록 확산을 계획하고 있다. 이를 통해 앞으로 6411번 버스를 희망버스와는 또 다른 역할을 할 수 있는 노선으로 만들려 한다.

재단에서는 6411번 버스를 통해서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찾는 사업과 함께 연대사회 실현을 위한 전략도 준비한다. 최근 노동운동에서 사회적 연대에 대한 관심과 실천이 늘고 있어 여간 기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아직 사회공헌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회공헌사업 역시 사회연대의 하나이기는 하지만, 사회연대는 그 범위를 뛰어넘는다. 사회연대는 그 결과로 제도 변화를 수반한다.

노동은 제도 변화를 이뤄 낼 수 있는 두 가지 수단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단체협약이고 또 하나는 사회협약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 두 가지 수단이 가진 힘은 미미하다. 단체협약은 사업장 울타리를 넘을 수 없고, 사회협약은 신뢰가 있어야 가능하지만 불신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유럽이 단체협약을 통해서 연대사회를 실현했다면, 독일을 비롯한 중부유럽 국가들은 사회협약을 통해서 노동이 있는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다. 한국 노동운동을 대표적으로 나타내는 전투적 조합주의가 과연 제도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또 하나의 수단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진단해야 한다. 만약 아니라는 진단에도 불구하고 이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라면 아주 구체적인 전략이 새롭게 나와야 한다.

희망버스와 6411번 버스가 노동을 모아 내는 힘이라면, 사회연대를 위한 전략은 노동운동의 길을 새로 내는 작업이다. 노회찬을 호명하는 빈도가 잦아진다는 것은 그러한 전략과 실천에 대한 바람이 많아진다는 뜻이다. 길을 내는 작업이 늦어질수록 우리가 탄 버스는 험한 길을 달릴 수밖에 없다. 이름을 부르는 이는 스스로 그 길을 닦는 일꾼임을 확인했으면 한다.

노회찬재단 사무총장 (htkim8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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