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20.2.22 토 08:00
상단여백
HOME 노동이슈 사건ㆍ사고
[고 문중원 기수 장례 없이 49재] “다단계 하청구조 탓에 김용균 이어 문중원 숨져”마사회-유가족 집중교섭 별다른 성과 없어 … 시민대책위 17일부터 5일간 오체투지
▲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는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조계사 극락전에서 고 문중원 기수 49재를 거행했다. 고인의 부인 오은주씨가 재를 지내고 있다. 노동과세계

“(아이에게) 사람들이 여기서 뭐 하는 거지? 아빠 좋은 데 가라고 기도하는 거야. 말 안 들으면 안 돼.”
“죽었다고? 뭐야 그게?”
“조금 있다가 절할 때 같이 잘하면 초콜릿 과자 줄게. 2개 줄게.”
“정말, 정말?”

부산에서 올라온 고 문중원 기수의 여섯 살 막내아들은 넓은 조계사 극락전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사람들 틈 사이를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이모는 막내조카를 무릎에 앉힌 뒤 우유를 쥐여 줬다. 아홉 살 큰딸은 오랜만에 만난 엄마 옆에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문중원 기수 사망 49일, 유가족 장례 없이 49재

렛츠런파크 부산경남(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기수로 일하던 문중원(사망당시 40세)씨는 지난해 11월29일 부정경마와 채용비리 의혹을 유서로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가족은 한국마사회에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대책을 요구하며 장례를 미루고 있다.

같은해 12월27일에는 고인의 시신을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인근에 안치하고 분향소를 차렸다. 고인의 부모와 아내 오은주씨, 오씨의 부모는 서울 영등포구 비정규노동자쉼터 꿀잠에서 함께 생활하며 분향소를 지키고 있다. 오씨는 서울로 올라오며 두 자녀를 동생에게 맡겼다. 이모는 16일 오전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주관으로 열린 문중원 기수 49재에 두 조카를 데려왔다. 아이들은 검은색 옷을 맞춰 입혔다.

49재는 고인의 생전 잘못을 심판받고 환생하는 날에 맞춰 불공을 드리는 대승불교 행사다. 일반적으로 49재 이전에는 상중으로 보지만 재를 지내면 탈상을 한 것으로 본다. 이날 49재는 그렇지 않았다. 사회를 맡은 양한웅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집행위원장은 마이크를 든 뒤 한참을 가만히 서 있었다. 그는 “좋은 곳으로 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49재를 지내는데 고인은 아직 장례조차 치르지 못했다”며 “자제 분이 계셔서 차마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말을 하기 너무 힘들다. 열사의 뜻을 이어받아 열심히 투쟁하되 오늘만이라도 좋은 곳에 가실 수 있도록 한마음을 모으자”고 말했다.

사회노동위원장인 혜찬 스님은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다단계 하청구조 속에서 김용균 노동자를 떠나보냈고 이제는 그 사회구조적 문제가 마흔 살 문중원의 죽음으로 다시 이어졌다”며 “열사 유해를 따뜻한 곳에 모시지 못하고 차가운 광장에서 우리와 함께 싸우는 이 현실에 대해 울분과 분노를 느낀다”고 토로했다.

“남편 잘 보살피지 못해 이리 된 것 같다”
“한 풀기 위해 악착같이 싸우겠다”


유가족 인사 차례. 남편 영정을 보던 오은주씨가 오열했다.

“제 남편을 어둡고 좁은 곳에 넣어 두고, 떠나보내 주지 못하고, 광화문 길 한복판에 놔두고 여기 와 있습니다. 49재가 지나면 영혼이 환생한다는데 남편은 제 곁을 맴돌고 있을 것 같습니다. 더 이상 춥지 않도록 따뜻한 곳으로 보내 줘야 하는데 사건이 해결되지 않아 남편에게 너무 미안합니다. 제가 남편을 잘 보살피지 못해 이렇게 된 것 같아서…. 제 잘못 같아서 악착같이 투쟁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보며 지친 몸을 일으키고 또 일으키고 있습니다. 아빠가 남기고 간 흔적을 슬픔으로 기억하기보다는 행복한 추억으로 기억하는 아이들로 키우겠습니다. 남편의 한을 풀어 주고 일상으로 돌아가 남편이 저희를 보며 웃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49재 참가자들이 연신 얼굴을 훔쳤다.

유가족과 문중원시민대책위원회는 고인의 시신이 없는 빈 상여를 메고 조계사에서 청와대로 행진했다. 정부를 상대로 사태해결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마사회와 민주노총문중원열사대책위원회, 문중원시민대책위는 지난 13일부터 집중교섭을 하고 있다. 마사회 경주경기가 있는 날을 제외하고 매일 만난다. 광화문 앞을 지나던 상여 행렬이 정부서울청사 인근에 잠시 멈췄다. 고인의 시신이 안치된 장소를 멀리서 바라보며 잠시 묵상했다. 이 자리에서 진기영 공공운수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어제 교섭에서 내일(16일)이 49재인데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유가족 심정을 조금이라도 생각하라고 호소했는데도 결론을 내지 못했다”며 “마사회는 (부정경마와 채용비리에 대한) 증거가 있지 않다고 하는데 고인의 유서 외에 그 어떠한 명확한 증거가 필요하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문중원시민대책위는 17일부터 4박5일간 오체투지 행진을 한다. 마사회 본사가 있는 경기도 과천 렛츠런파크 서울에서 출발해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행진을 마무리한다. 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씨, 고 이한빛 피디의 아버지 이용관씨, 일터에서 추락해 숨진 청년 건설노동자 고 김태규씨의 누나 김도현씨가 앞장선다.

제정남  jjn@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정남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