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안전공학)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속담이 있다. 전부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을 두고 세간에서 하는 말이다. 시행일이 가까워짐에 따라 개정법의 실체를 알게 되면서 개정 내용의 엉성함과 정부 설명과 너무나 다른 사실에 불만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작업중지명령에 관한 규정만 하더라도 작업중지명령 취지와 원리에 반하는 개정 내용에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종전 법에서는 △중대재해 발생 여부 △시정조치명령 이행 여부 △법령 위반 여부와 관계없이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에는 작업중지·사용중지·시정조치 등의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전부개정법에서는 작업중지명령 발령요건을 중대재해 발생시와 그렇지 않은 경우로 구분하면서 중대재해가 발생하지 않은 경우에는 “사업주가 ‘법령상의 조치’를 하지 않아 근로자에게 ‘현저한’ 위험이 초래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될 때”만 해당 기계·설비 등에 대한 시정조치명령을 내릴 수 있다. 게다가 이 “시정조치명령을 이행하지 않아” 위험상태가 해소 또는 개선되지 않거나 근로자에 대한 위험이 현저히 높아질 우려가 있는 경우에만 해당 기계·설비 등과 관련된 작업의 전부 또는 일부의 중지를 명할 수 있는 것으로 개정됐다.

다시 말해 개정법하에서는 ‘법령’을 위반하지 않거나 법령을 위반하더라도 ‘현저한’ 위험이 초래될 우려가 없는 상황에서는 현행법과는 달리 시정조치명령을 내릴 수 없다. 작업중지명령(중대재해 발생을 전제로 하지 않는)은 사업주가 이 시정조치명령을 이행하지 않는 경우에만 내릴 수 있게 바뀌었다. 결국 중대재해가 발생하지 않은 경우에는 아무리 급박한 위험이 현존하더라도 사전에 법 위반을 전제로 한 시정조치명령을 내리지 않는 이상은 작업중지명령을 내릴 수 없게 됐다.

본래 작업중지명령은 중대재해가 발생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리고 법령 위반이 없더라도 급박한 위험이 현존하면 내릴 수 있어야 하고 또 작업중지명령은 급박한 위험을 제거하기 위한 목적으로 내려지는 특성상 행정기관의 시정조치명령 없이도 내릴 수 있어야 함에도 개정법하에서는 그럴 수 없게 됐다.

다양한 상황에 대해 다양한 형태로 발령하는 시정조치명령 제도와 중대재해 발생, 법 위반 여부와 관계없이 급박한 상황에 대해 발령돼야 하는 작업중지명령 제도의 취지와 특성을 몰각한 역진적 개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중대재해 발생시의 작업중지명령에 ‘몰빵’(?)하다가 작업중지명령 등 행정명령 대상이 오히려 대폭 축소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한편 전부개정법 55조1항에 따라 ‘사업장의 일부분’에 대해 작업중지명령을 발령했는데, 사업주가 이를 위반한 경우에는 형사처벌이 이뤄진다. 그런데 55조2항에 따라 ‘사업장 전체’에 내려진 작업중지명령을 위반한 경우는 아무런 처벌규정이 없다. 전자에 대해서만 처벌하고 위반의 정도가 심한 후자에 대해서는 처벌이 없는 것은 명백한 입법 실수다.

입법예고 당시에는 한 개의 항으로 돼 있던 작업중지명령 규정이 심사 과정에서 사업장 일부분에 대한 작업중지명령과 사업장 전체에 대한 작업중지명령으로 구분됐다. 분리돼 나온 2항(사업장 전체에 대한 작업중지명령)에 대해 처벌규정을 두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누락시킨 것이다. 법이 얼마나 졸속으로 개정됐는지를 방증하는 사례다.

전부개정법이 겉으로는 사업주의 의무를 강화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작업중지명령과 같이 멀쩡한 내용을 이유 없이 무력화하거나 실효성이 없는 사항이 적지 않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다시 법 개정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경계해야 할 것은 문제가 명백함에도 개정한 지 얼마 안 됐다는 이유로 개정 요구를 묵살하는 것이다. 얼치기 법 개정의 또 하나의 폐해다. 이 모든 것을 방관하기에는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이 엄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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