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민·사회단체가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노동자가 산재를 입증하기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은 ‘국가핵심기술에 관한 정보’ 비공개 원칙을 담고 있다. 지난해 8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개정안은 2월21일 시행된다.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은 7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월에 시행될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이 노동자의 생명·안전·알권리를 침해한다”고 규탄했다. 반올림은 개정안이 정보공개청구를 제한하는 ‘삼성의 청부입법’으로 보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은 인권운동더하기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가 공동주최했다.

오민애 변호사(민변 노동위)는 “국가핵심기술에 관한 정보라면 어떠한 이유로든 공개할 수가 없는데 반도체·전자산업 공정에 관한 대부분의 내용이 국가핵심기술에 포함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개정안에 신설된 14조(산업기술의 유출 및 침해행위 금지) 8호에 따르면 산업기술 관련 소송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적법한 경로를 통해 산업기술이 포함된 정보를 제공받은 자가 정보를 제공받은 목적 외의 다른 용도로 그 정보를 사용하거나 공개하는 행위가 금지된다.

이태성 공공운수노조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간사는 “발전소에 있는 현장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언론에 많은 (시설 내부) 영상과 자료를 공개했다”며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이 같은 일 모두가 잠재적 범죄로 취급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수 반올림 활동가는 “포토레지스트 기술은 반도체 회로를 만드는 데 가장 기본적인 기술이지만 산업기술에 해당해 14조8호에 따라 정보를 제공받은 목적 외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없다”며 “반도체 공장에 이런 식으로 정의된 산업기술만 230개고 디스플레이에는 205개 넘는다”고 지적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해 7월 고시한 ‘첨단기술 및 제품의 범위 별표1’에는 자동차·조선·전력·의료 등 33개 산업 분야 3천개에 달하는 첨단기술이 지정돼 있다.

노동·시민·사회단체는 기자회견에서 “국가핵심기술을 이유로 작업장 위험성을 감추겠다는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에 대해 국회와 정부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석탄재 찌꺼기 처리작업 중 노동자는 ‘결정형 유리규산’이라는 1급 발암물질에 노출됐다. 김용균 특조위 조사가 없었다면 발전소 노동자는 이를 모른 채 일했을 것이다. 대다수 노동자의 처지는 발전소 노동자와 다르지 않다. 자신이 어떤 위험에 노출됐는지 모른다. 산업재해로 추정되는 질병에 걸려도 입증하기 어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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