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석호 노동운동가

2020년 올해는 전태일이 떠난 지, 아니 전태일이 노동의 심장이 되고 한국의 역사로 남은 지 50년 되는 해다. 새해 첫 칼럼은 그 의미를 쓰려 했다. 마음을 바꿨다. 더 급한 사연이 있어서다. 전태일이 온몸 던져 손잡았던 이 시대의 ‘시다’ 이야기다. 다음은 제안단체를 대표해 직장갑질119의 박점규 운영위원이 쓴 글이다.

“가임기 여성은 다 잘라야 해. 오늘 일터에서 임신한 노동자가 이런 말을 들으면 어떨까? 가해자를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근로기준법)과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 위반으로 회사와 노동청에 신고하고, 언론에도 알리지 않을까?

4년 전 같은 말을 상사로부터 들었던 사회복지사 조재화씨는 ‘직장내 괴롭힘’을 알렸다는 이유로 다시 온갖 괴롭힘의 대상이 돼야 했다. 둘째 임신 소식을 알리자 들었던 폭언에 대해 항의한 조재화씨는 물론, 유일하게 편이 돼 줬던 동료인 이은주씨마저 더는 일을 할 수 없게 됐다. 그가 받은 해고통지서에는 직장내 괴롭힘, 일자리 성차별, 인권침해 등 허위사실을 퍼뜨렸다는 점이 해고사유로 기재됐다.

직장내 괴롭힘을 알린 대가는 일터에서 쫓겨난 데서 그치지 않았다. 4년 동안 30건에 가까운 민·형사소송이 이어졌다. 재판에서 복지관측은 폭언에 대해 ‘개그콘서트 정도의 농담이었다’고 답했다. 비정규직이었던 이은주씨는 소송기간 동안 복지관편에 선 이들로부터 ‘임산부를 선동해 계약을 연장하려는 음모’라며 인격모독에 가까운 비난을 들어야 했다. 소송은 두 노동자를 괴롭히는 수단이 됐다. 당시 복지관 책임자였던 관장은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이은주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계속하고 있다.

2019년 7월16일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됐다. 법에 따르면 직장내 괴롭힘을 신고하면 사용자는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조사해 징계해야 한다. 사용자는 직장내 괴롭힘을 신고했다는 이유로 신고한 노동자나 피해노동자에게 해고 등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안 되며, 만약 불리한 처우를 하게 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법이 통과되기까지 직장내 괴롭힘을 알리기 위한 수많은 피해 증언과 희생이 있었다. 이 증언과 희생으로 우리는 태움·따돌림·폭언·의도적 업무배제 등 직장내 괴롭힘의 심각성을 알게 됐다. 누군가의 용기 있는 행동이 모이고 쌓여 우리는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작 먼저 용기를 낸 당사자들은 해당 법안을 적용받지 못한다. 법은 소급해서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조재화씨와 이은주씨가 일터에서 당한 일들은 명백한 직장내 괴롭힘이다. 그러나 법원은 직장내 괴롭힘을 알리고 바로잡고자 용기 냈던 두 노동자의 행동에 대해 인정해 주지 않았다. 이은주씨는 벌금 500만원과 손해배상금 660만원을 선고받았고, 조재화씨는 구상금 300만원을 내라는 소송을 당했다. 직장내 괴롭힘을 직장내 괴롭힘이라고 말한 이유로 명예훼손 등 민형사상 소송의 대상이 된다면, 누가 ‘갑’의 횡포에 맞서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우리는 두 노동자의 용기가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의 씨앗이 됐기에, 두 노동자가 용기 잃지 않고 바로 설 수 있도록 서로를 지키는 울타리가 되고자 한다. 이것이 또 다른 용기들이 가능할 수 있는 든든한 연대가 될 거라 믿는다. 많은 시민 여러분의 연대를 호소한다.”

스무살 청년재단사 전태일은 며칠간 출퇴근할 자신의 버스비를 몽땅 털어 배곯는 시다들에게 풀빵을 사 줬다. 그리고 자신은 장시간 노동에 지친 밤늦은 시각에 평화시장에서 창동까지 12킬로미터를 휘청휘청 걷고 뛰며 퇴근했다. 야간 통행금지에 걸려 파출소에서 쪼그려 자기도 했다. 그러면서 또 실천하다가 온몸을 던져 세상을 깨웠다. 전태일의 아름다운 연대정신이다. 우리가 전태일처럼 행동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전태일의 그 정신을 십시일반 조금씩 받아안을 수는 있다. 직장내 괴롭힘에 맞선 용기가 무더기 보복 소송에 무너지지 않도록 연대해 달라. 두 노동자는 이 시대의 시다들이다.

두 노동자의 법률기금을 긴급하게 모금한다. 목표는 990만원이다. 모금계좌는 ‘전태일재단 신협 131-019-938995’다. 소셜펀치(m.socialfunch.org/twowomenstory)로도 가능하다. 한 번 더 호소한다. 이 시대 시다들의 손을 잠깐씩이라도 잡아 달라.

제안단체는 손잡고·직장갑질119·인권중심 사람·인권운동공간 활·불안정노동철폐연대·민주노총 여성위원회·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비정규노동센터·여성노동자회·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전태일재단 등이다.

노동운동가 (jshan8964@gmail.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