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탁 노회찬재단 사무총장

“혹시…. 김형탁 사무총장님 아니신가요?” 약속이 있어 사무실 건물 밖을 나와 성큼성큼 걸으며 지나가는 길에 옆에서 자신 없는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작은 소리지만 내 이름인 듯해 돌아보니 안면이 없는 흰머리 초로의 여인이 확인의 눈빛을 보내고 있다.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반갑고 한편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웃으며 인사를 한다.

같이 인사를 나눴더니,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냐며 나를 부른 이유를 말한다. 재단에서 회원들에게 이메일로 소식지가 나가는데, 방금 모바일폰으로 신임 사무총장 인터뷰 글을 읽고 함께 실린 사진을 봤다고 한다. 그때 마침 내가 지나가기에 사진과 모습이 같아 나를 불렀다고 한다. 다시 한 번 반가운 인사를 했더니, 그 자리에 서 있게 된 사연을 말한다.

실은 억울한 사연이 있어 고소를 한 사건이 있는데, 그날 서울서부지검에 출두해 사건 경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나오는 길이라고 한다. 서울 은평구 진관동에 사시는데 원래 살던 집이 뉴타운 개발로 철거된 것도 억울한 일인데, 현재 옮겨 살고 있는 곳에서 다툼이 있던 중에 폭행까지 당한 일로 고소한 사건이라고 한다. 약속 때문에 길게 이야기를 나눌 수 없어 다음날 다시 만나기로 하고 그 자리를 마쳤다.

다음날 찾아온 그분에게서 긴 사연을 들었다. 사연의 자초지종은 여기에 적지 않는다. 아무튼 그 억울한 사연으로 참여연대를 찾아가 보기도 하고,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을 소개받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한 번의 상담으로 방향을 찾을 수 있는 억울한 사연이란 잘 없으니, 어찌 일이 쉽게 해결됐겠는가. 그래서 지금도 대문을 출입할 때 늘 두렵고 불안하다고 한다.

재단 사무총장이라 한들 무슨 용빼는 재주가 있어 해답을 제시할 수가 있을까 생각하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도 얼마나 마음에 억울함이 있었으면 나를 만나려 했을까 하는 생각에 최대한 마음을 열어 놓고 들으려 했다. 이전에도 몸담은 단체에서 하소연을 들어 보지 못한 바는 아니었으나, 사연에 안타까워하면서도 서둘러 정식 상담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연결해 주려는 마음만 급했다. 그 이후 해결 여부는 내 손을 떠난 일이었다. 그러나 이날은 그렇게 급하게 서두르지 않았다.

생전 노회찬 의원이 좋아했던 문구가 신영복 선생의 ‘함께 맞는 비’였다. 우산을 씌우면 되지 왜 함께 비를 맞느냐는 비아냥거림이 있지만, 우산을 씌워 줄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그러니 함께 비를 맞으며 아픔을 함께하는 마음의 연대를 소중히 여긴다. 연대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니 함께 비를 맞는 자리에서 길을 찾자는 의미일 터다.

그러나 함께 비를 맞는다는 것은 연대의 의미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세상을 같은 눈으로 바라본다는 의미도 함께 가지고 있다. 비를 맞으며 바라보는 세상과 우산을 쓰고 바라보는 세상은 나에게 다가옴이 같지 않으리라. 아픔을 함께하는 것이 그 자리에 같이 서 있는 것이라면, 같은 눈으로 바라본다는 건 함께 걸을 수 있는 길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요즈음 나는 필연을 이해하지만, 정작 믿어야 할 것은 우연의 힘이라 생각하게 됐다. 우연은 느닷없이 다가오긴 하지만, 우리의 삶과 사회에 아주 다양한 색깔과 선을 그린다. 어쩌면 우리는 가능한 것들만 쫓으며 아름다운 길들을 다 놓쳐 버렸는지도 모른다. 인연을 소중히 여기지 못하면서 함께할 이들을 다 놓아 버렸는지도 모른다.

2020년이 나에게 주는 의미는 우연과 인연을 소중히 하는 데 있다. 아주 많은 이들, 그리고 다양한 사건들과 조우하게 될 것 같다. 그 만남을 소중히 하고 싶다. 욕심을 내지 않는다면, 그리고 조바심을 내지 않는다면 수많은 결절점이 연이어질 것이다. 사회를 원뿔로 상상해 보면 최상층부는 한 점으로 집중되고 최하층부는 고립되고 분산된 모양으로 보이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최상층부는 연결 방도가 없어 고립된 반면 최하층부는 가장 널리 연결될 수 있는 모양이다. 이름하여 사회연대전략이다.

해를 넘기기 전인 지난달 31일 그분께 안부전화를 드렸다.
나에게 묻는다.

“혹시 며칠 전에 저의 집 근처에 오셨나요?”
“아니요, 그러지 못했습니다.”
“아, 그런가요? 며칠 전 대문 밖 먼발치에 보이는 분이 선생님인 줄 알았어요.”
“아, 그러셨군요. 신년에 꼭 찾아뵐게요.”

방문할 거란 믿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던가 보다. 조만간 함께 비를 맞는 의미를 다시금 일깨운 그분에게 한 번 더 하소연을 들으러 가야겠다.

노회찬재단 사무총장 (htkim8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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