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1월16일 국회 앞에서 열린 한국노총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참가자들이 노동개악 저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정기훈 기자

문재인 정부가 집권 4년차를 맞았다. 그동안 추진했던 국정과제를 완성하고 아직 이루지 못한 ‘미완의 과제’를 해결해야 할 시점이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면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초 야심차게 추진한 노동시간단축·사회적 대화·최저임금 1만원·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 등 대다수 노동과제가 뻐거덕대고 있다.

올해 역시 마찬가지다. 정부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탄력근로제 확대와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 사실상 유예, 낮은 최저임금 인상률과 제도 변경,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자회사 전환, ILO 기본협약 비준과 노동관계법 개정을 둘러싼 논란에 휩싸일 것으로 예상된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달 노사정·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0년 올해의 주목할 노동이슈’ 조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노동시간단축 후퇴 따른 노사정 갈등 불가피

노사정·전문가 100명 중 가장 많은 44명이 올해 주목할 이슈로 ‘탄력근로제 확대 포함 노동시간단축 후퇴 논란’을 선택했다. 정부는 올해도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포함한 노동시간단축 보완입법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새해 신년사에서 “50명 이상 300명 미만 기업의 주 52시간 상한제 안착을 위해 탄력근로제 등 보완입법을 지속 추진할 것”이라며 “현장의 어려움을 덜기 위한 잠정적 보완조치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설문조사 참여자들은 ‘노동시간단축’ 열쇳말 뒤에 “노동법 개악 시도” “주 52시간 상한제 후퇴” “노사정 갈등” “선택근로제 확대” “소규모 사업장 갈등” 같은 우려를 덧붙였다.

‘4차 산업혁명과 플랫폼 노동자 권리 보장’은 2위(38표)였다. 지난해 10대 노동뉴스에서는 2위에 오른 이슈다. 지난해는 노동법 사각지대에 있는 플랫폼 노동자들이 노조 조직화에 박차를 가했던 해다. 플랫폼노동연대와 라이더유니온이 만들어졌다. 이런 추세는 올해 가속화할 전망이다.

이번 조사에서는 “노동자성 확대와 노조 설립신고 증가” “서비스·전문직 인공지능(AI) 일자리 대체위협” “노동유연화 가속화” “사용자성 강화해야” “플랫폼 노동 실태조사와 개선방안” 같은 목소리가 연결어로 제시됐다.

‘ILO 기본협약 미비준과 방치되는 노조할 권리’(33표)는 3위를 차지했다. 정부가 지난해 ILO 기본협약 비준동의안과 노동관계법 개정안을 제출했지만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채 해를 넘겨 버렸다. 4월 총선이 다가오는 만큼 실망감이 커지는 형국이다.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는 물론이고 5명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미적용 문제와도 관련이 있는 사안이다. 유럽연합(EU)은 이와 관련해 “한-EU 자유무역협정(FTA) 위반”이라고 주장하며 지난달 30일 무역분쟁 마지막 절차인 전문가패널 절차에 들어갔다.

격차해소·재벌개혁 더디기만 한 ‘경제민주화’

지난해를 뜨겁게 달군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자회사 반대투쟁’은 4위(21표)에 올랐다.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와 국립대병원 비정규 노동자들의 자회사 반대투쟁이 이어지고 있다. 3단계 전환 대상인 민간위탁기관 비정규직의 경우 정부가 기관 자율 정규직화 방침을 정하면서 사실상 손을 놓았다는 비판을 받는다.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이 이뤄져도 과제는 남는다. 임금·노동조건 차별이 여전한 공무직 문제와 같은 맥락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최저임금 인상률을 둘러싼 논란이 재현될 것으로 보인다. 5위(18표)를 기록했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최저임금 인상률이 2.87%로 결정되자 “최저임금 1만원 달성 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됐다”고 사과했다. 재계와 보수진영이 소득주도 성장과 최저임금 인상을 싸잡아 공세를 펼칠 것으로 전망된다.

노동계는 반격을 준비 중이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노동시간단축 최저임금 투쟁은 정부와 국회의 개악 저지투쟁에만 머물지 않고 현장에서부터 새로운 전략과 프레임 전환을 적극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은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한 개입과 견인의 고삐를 더욱 죄어야 한다”며 “각종 사회적 대화 체계의 결실을 국민에게 제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양극화 해소와 공정한 사회, 재벌개혁’과 ‘일자리와 고용 문제’는 각각 14명의 선택으로 공동 6위를 차지했다. 문재인 정부가 경제민주화를 내세웠음에도 가장 더딘 분야로 지목됐다. 격차해소와 재벌개혁은 손에 잡히지 않는다. 채용비리도 청년들의 가슴에 생채기를 남겼다. 공정과 상생이 거론되는 배경이다. 노동이사제를 통한 사업장 민주주의도 과제로 꼽혔다.

일자리 걱정은 컸다. 일자리 문제는 청년실업·40대 고용부진·고령자 일자리 등 대부분 연령대의 과제로 언급됐다. 노동인구 감소·광주형 일자리·실업부조·사회안전망은 고용불안에 따른 과제였다.

사회적 대화 순위 밖, 전태일 50주기 ‘눈길’

올해 4월 치러지는 총선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13명(8위)이 골랐다. 총선에서는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이 다양하게 언급될 가능성이 높다. 정치권이 어떤 응답을 내놓을지가 관건이다. 이번 총선부터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된 만큼 진보정당의 약진과 노동자 정치세력화 여부도 주목된다.

산업재해와 위험의 외주화 문제(9위·10표)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과제다. 지난해 10대 노동뉴스 공동 7위에 오른 ‘고 김용균 1주기 위험의 외주화는 그대로 …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목소리’의 연장선이다. 이달 16일부터 이른바 ‘김용균법’으로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이 시행된다.

2018년 기준 노조 조직률은 11.8%로 상승했다. 민주노총은 1노총 지위에 올랐다. 올해 주목할 이슈 10위(9표)에 ‘1노총 변경과 조직화 확대’가 꼽힌 이유다. 1노총 지위 변경에 따른 양대 노총의 역할 변화와 조직화 경쟁에 관심이 모아진다.

10위권 밖에도 유의미한 ‘주목할 이슈’가 있다. 공동 11위(8표)인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 후퇴’는 노동시간단축 정책 후퇴 이슈와 연동된다. 같은 순위의 ‘임금체계 논란’은 통상임금·포괄임금과 직무급제를 둘러싼 이슈로 한데 묶인다. 13위(7표)에는 ‘경사노위와 사회적 대화’가 올랐다. 2019년 주목할 이슈에서 4위를 차지한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올해는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는 해다. 6명이 주목해 공동 14위를 기록했다. 자동차를 포함한 구조조정을 우려하는 목소리에는 6명(공동 14위)이 공감했다. 4명(16위)은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개선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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