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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돌아보며손명호 변호사(법무법인 오월)
▲ 손명호 변호사(법무법인 오월)

우리 사무실에는 한 가지 전통(?)이 있다. 모든 구성원이 새해를 시작하며 각자 이루고픈 목표를 정한다. 어떤 목표라도 상관없고 거창할 필요도 없다. 한 달에 한 번씩 아이 없이 혼자 극장에서 영화 보기, 일본어 학습지를 한 달 이상 밀리지 않고 풀기, 몸무게 3킬로그램 감량하기 등등이다. 스스로 정한 목표를 이룬 구성원은 약소하지만 상을 받는다. 나는 야심 차게도 세 가지 목표를 정했는데, 그중 두 가지를 실패해서 수상은 물 건너갔다. 다만 수영 배우기는 성공했는데 열 달 넘게 아직 초급반인 건 비밀이다. 개인적인 성취로는 아쉬움이 큰 한 해였지만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법정에서 싸워 온 사무실의 성과가 적지 않아 몇 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시내버스 회사가 지연운행을 이유로 운전기사를 해고한 사건이다. 1심은 지연운행을 반복하는 행위가 고의로 인한 것이 아니더라도 다른 운전기사들에 비해 지연운행 정도가 현저하고 회사의 거듭된 촉구에도 개선되지 않으면 해고사유에 해당한다고 봤다. 그러나 2심은 지연운행을 이유로 징계하려면 교통상황이나 도로사정과 관계없이 운전기사가 의도적으로 늑장운행을 했음이 명확하게 확인돼야 한다고 봤다. 피고회사의 다른 운전기사들이 습관적으로 신호를 위반하거나 무정차 통과를 하고 있으며, 다른 회사 운전기사들도 배차 간격을 지키기 위해 난폭운전이나 과속운전을 할 수밖에 없는 근로환경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다른 운전기사들이 정시에 운행한다는 표면적인 사정만으로 해당 운전기사가 의도적으로 지연운행을 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의뢰인이 직접 현장에 나가 다른 운전기사들이 습관적으로 신호를 위반하거나 난폭운전을 하는 장면을 촬영해 증거로 제출한 것이 유효했다. 법원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운전기사가 교통법규를 준수하고 무정차 통과를 하지 않는 정상적인 운행으로는 배차 간격을 준수하기 어렵다면 회사는 운전기사 충원, 시내버스 증차나 배차 간격 조절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내버스 운전기사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제대로 파악한 좋은 판결이다(서울고등법원 2019. 11. 22. 선고 2019나2018936 판결).

다음으로 사용자와 교섭대표노조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공정대표의무 위반 사건이다. 소수노조는 수차례에 걸쳐 사용자와 교섭대표노조에 단체교섭 진행 상황·경과·계획 등을 알려 줄 것을 요청했고, 단체교섭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면서 단체협약 체결 과정과 내용에 있어서 소수노조를 차별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용자와 교섭대표노조는 소수노조에 이를 공유하지 않았고 단협에 소수노조 의견을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법원은 사용자와 교섭대표노조가 단체교섭 진행 상황 등을 공유하지 않고 소수노조 의견을 교섭에 반영하지 않은 것은 공정대표의무를 위반한 것이므로 그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서울남부지법 2019. 11. 5. 선고 2018가단251558 판결). 또한 법원은 노동조합 사무실은 상시적인 신규 조합원 모집과 조합원 상담이 이뤄지는 등 노동조합의 존립과 발전에 필수적이고 핵심적인 요소이고 이러한 활동은 주로 회사 내에서 이뤄지므로 사용자가 소수노조에만 사업장 밖에 노조사무실을 제공한 것은 공정대표의무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즉 법원은 사용자가 소수노조에 노조사무실을 제공했더라도 그 장소를 차별한 경우에는 공정대표의무 위반이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고, 사용자의 공정대표의무가 소극적인 중립유지의무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차별하지 않을 의무라고 봤다(대전지법 2019. 8. 28. 선고 2018구합104220 판결).

한 해를 돌아보면 여러 사건들과 사람들이 떠오른다. 왜 조금 더 친절하지 못했는지, 왜 조금 더 경청하지 않았는지, 왜 함부로 이 정도면 됐다고 멈췄는지 스스로 돌이켜 본다. 동시에 한 해 동안 현장과 법정에서 인간의 존엄과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해 애써 온 모든 노동자 동지들에게, 그 노동자들과 함께 싸운 법률가 동지들에게 수고하셨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내년에도 지치지 않고 함께 가자는 다짐과 함께.

손명호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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