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윤수 축구평론가

유럽의 근대화가 그렇듯이 우리의 근대화 역시 ‘경제 성장’과 ‘민주화’라는 두 바퀴로 전진했다. 유럽이 그렇듯이 우리 역시 이 두 바퀴를 굴리는 힘 중 중요한 요소는 바로 ‘중산층화’였다. 근대화는 도시화로 이어지고 도시화는 곧 중산층의 엄청난 성장을 뜻한다. 이 중산층은 경제적으로 안정적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비교적 자유주의적이며 특히 문화적으로는 ‘독자적인, 세련된, 새로운, 활기찬, 건강한, 서구적인, 여유 있는’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게 된다. 이 점에 주목해 보면 경제 성장과 민주화는 문화적 중산층화 욕망을 가로막는 ‘가난’이나 ‘독재’에 저항한 사회적 행위이기도 하다.

이렇게 ‘문화적 중산층화’가 이뤄졌을 때, 혹은 그것이 충분히 달성 가능하다고 여겨질 때 여가 문화는 급성장하게 된다. 도시의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삶도 중산층으로 도약한다고 여기면서 그것을 ‘신체적이고 물리적이며 즉각적으로’ 체험하고자 한다. 자가용 드라이브, 불고기 가든의 외식, 그리고 특히 한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요트를 타고 수상스키를 즐기고, 그것도 안 되면 오리배라도 타야 했다. 1980년대 이후 한강과 그 수변공원은 그런 맥락에서 조성됐다.

신체적 액티비티를 여가로 여기는 사회

어느덧 21세기가 됐고, 80년대식 중산층 문화의 주도 세력은 장년을 넘어 노년층으로 가고 있으며, 특히 수변공원과 관련해 세계적인 트렌드가 변화하고 우리 사회 역시 인구와 거주환경이 급변하고 가족과 세대 문화가 달라졌다. 무엇보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여행에 대한 인식 자체가 변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레저 스포츠’와 ‘구경거리 관광문화’에 머물러 있음은, 그래서 안타깝다.

우리 사회에서 여가(가벼운 산책에서 장거리 여행까지)는 놀이(play)와 레크리에이션(recreation)에 집중돼 있고 그것도 신체적인 액티비티(활동) 프로그램으로 인식돼 왔다. 앞서 80년대 이후 중산층 열망이 그 원인이라고 했지만 한편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그러니까 중산층 신화가 무너지고 살인적인 경쟁과 비정규직이라는 단어가 일상이 된 이후에도 여전히 신체 중심적 여가·레저·스포츠 문화가 확장됐다.

예컨대 마라톤을 보자.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마라톤은 황영조·이봉주 같은 전문 선수들의 영역이었다. 그러던 것이 2010년 한 해에만 500여개 대회가 열릴 정도로 대중화됐다. 스포츠사회학자 김영갑은 “극기와 자기 통제의 수단으로서 마라톤은 상처 입은 중산층의 자존심을 회복하고자 하는 욕구”라고 분석한 바 있다. 역시 사회학자 정준영도 적어도 미국에서 마라톤은 중산층 남성의 “세련된 자기과시 수단”이라고 분석했다. 고급 자동차는 물질적인 과시에 지나지 않지만 마라톤은 시간의 여유와 정신적 여유, 그리고 균형 잡힌 몸매로 성공한 중산층 정서를 과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분적으로 우리 사회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확실히 97년 외환위기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과 허약한 기반을 일거에 드러내고 또한 그것마저 무너뜨린 공포였다. 한편 바로 이러한 정황 때문에 여가에 대한 새로운 인식도 늘어났다. 제주도 올레길 선풍을 이끈 ‘제주올레’의 서명숙 이사장은 2012년 10월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한민국 사회가 너무 지쳐 있었다. 우리 사회가 ‘피로사회’ 아닌가. 누구나 인정하기는 싫지만 지나친 경쟁, 획일화, 다른 사람의 시선과 기준으로 살아야 하는 압박감 같은 게 있다. (중략) 여행을 가도 치유나 위로받기보다는 좀 더 많은 걸 누리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부러움과 열패감을 갖고 돌아왔다. 그런데 올레길에서는 자기 걸음의 속도대로만 가면 됐다. 이곳에서는 경쟁할 일도, 일정에 쫓기는 일도 없다. 그러면서 모처럼 자연으로부터 위로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됐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때에, 여가 문화에 대한 인식도 달라져야 하고 한강 수변공원이나 동네 체육공원 같은 물리적 공간도 달라져야 한다. 노인·어린이·장애인·여성·소수자 등 많은 유형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조건에 맞는 여가를 즐길 권리가 있다. 이를 무시하고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신체적으로 활력 넘치는 중산층’ 이미지에 모든 연령과 세대와 성별과 직업군을 포괄시켜 버리는 것은 위험하다. 여가, 곧 레저는 ‘신체적으로 활기 있는 어떤 행위’로만 한정해서는 안 된다.

빌바오식 변화 필요한 때

안타깝게도 우리의 사회안전망은 부실하고 사회관계망은 해체되고 있다. 고령화 저출산은 1인 가구와 독거노인의 급증으로 이어진다. 노동시간은 멕시코와 더불어 가장 길고 자살률은 10여년간 1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7 삶의 질’ 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조사 대상 38개국 중 29위였다.

똑같은 신체활동을 하더라도 그것에 대한 인식의 변화, 감수성의 변화가 중요하다. 이른바 ‘건강’은 특정한 수치와 지표로 객관화되기를 요구한다. 그리하여 특정 목표가 설정되고 대회가 열리고 우승자와 그 밖의 열패자가 생긴다. ‘활력 넘치는 여가’란 기본적으로 시간과 비용이 들게 된다. 이를 스스로 충당할 수 없는 사람들은 단순히 여가 문화에 불참하는 정도가 아니라 사회심리적으로도 배제된다.

스페인 북부의 빌바오. 80년대 이후 산업이 침체되고 실업률이 무려 30%에 이를 정도로 쇠락했지만 바로 이 시점부터 한 세대를 뛰어넘는 장기적인 도시 재생 계획을 시행했다. 1989년 바스크 정부는 ‘빌바오 Ria 2000 종합계획’을 수립해 빌바오의 생명과 다를 바 없는 네르비온강의 수질 개선을 장기간에 걸쳐 추진했다. 과거 공업도시로서 물자를 수송하기 위해 강을 사용해 왔기에 네르비온강은 오염됐고, 강 주변지역은 문을 닫은 공장들이 늘어서 있었다. 이 강을 살리기 위해 약 15년간 8억유로가 투자됐다. 그 후 수변 공간의 환경친화적 개선을 도모했고, 보행과 대중교통 중심으로 도심 가로를 정비했으며, 구도심과 강변의 신개발지를 트램으로 연결해 도시 일상의 리듬이 단절되지 않도록 했다. 그 밖에도 쇠락한 도시 곳곳의 가로를 어린이·여성·노인 등이 맘 놓고 다닐 수 있도록 했으며 서점과 카페와 작은 식당들이 작지만 촘촘한 생활 공동체의 그물이 되도록 지원했다. 물론 당연히 유럽, 특히 스페인인 만큼 동네 곳곳에 축구장을 비롯한 스포츠레저 시설이 다양한 형태로 구비됐음은 물론이다.

우리의 여가시설 또한 이런 관점에서 새로 접근해야 한다. 한강변에서 꼭 달려야만 할까? 꼭 신체적으로 ‘활력 넘치는’ 활동 중심으로 동네 공원을 조성해야만 할까? 특색 있는 작은 서점들이 있어 평온히 산책하고 다정하게 책을 읽을 수도 있지 않은가. 강변을 천천히 산책하면 안 될까? 다양한 신체조건과 노동조건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반드시 전문 선수들처럼 규격화된 트랙이나 코트에서 ‘뛰어야’ 할까? 중산층으로 도약하기 위한 ‘획일화된 신체’ 이미지가 아니라 저마다 삶의 조건에서 저마다의 신체적 가치와 심미적 평온을 존중하는 다채로운 시설과 프로그램이 이제는 필요하다.

축구평론가 (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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