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진미 영화평론가

<미안해요, 리키>는 <나, 다니엘 블레이크>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켄 로치 감독의 신작이다. 원제인 “Sorry, We Missed You”는 택배노동자가 수취인이 부재중일 때 남기는 메모지 문구다. 영화 속 리키가 가족이 잠든 새벽 배송차를 몰고 나가면서 가족들에게 남긴 메모지의 문구이기도 하다. 위험하다며 막아서는 가족들을 따돌리고, 리키는 위태롭게 차를 몬다. 금방이라도 사고가 날 것만 같은 장면이 이어지면서 관객들이 가슴을 졸이는 순간,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다. 영화를 지켜본 관객들은 리키가 왜 이토록 무리하게 차를 몰고 나갈 수밖에 없는지 안다. 그래서 더욱 먹먹한 마음을 가눌 길 없다.

영화는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노동자 가족의 일상을 비추며, 프리랜서 노동자가 ‘워킹 푸어’가 되는 과정을 보여 준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노동자들이 왜 일을 하면 할수록 가난해지며, 가족의 삶은 피폐해질 수밖에 없는지 영화는 또렷하게 알려 준다.

1. 택배노동자, 리키

<나, 다니엘 블레이크>가 주인공의 실업급여 심사 인터뷰로 시작했듯이, <미안해요, 리키>는 리키의 취업 인터뷰로 시작된다. 건설현장에서 안 해 본 일이 없는 리키는 성실성만큼은 자신한다. “동료들이 게으른 게 싫어서, 개인사업을 해 보고 싶었다”고 말하는 그의 바람처럼, 택배기사는 자영업자다. 택배회사에서 받은 물품을 관리자의 지시와 감독을 받으며 운송하지만 노동자가 아니다. 배송차도 내 돈으로 장만해야 되고, 차량보험도 내가 들어야 한다. 쉬고 싶으면 내 돈으로 대체기사를 고용해야 된다. 그래도 건당 배송료가 상당하니까, 얼추 계산해도 꽤 큰돈을 벌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리키는 배송차를 계약한다. 회사 차량을 임대하거나 중고차를 살 수도 있지만, 집 월세를 내는 데 질린 데다 중고차는 수리비가 더 나간다는 말에 새 차를 산 것이다. 배송물량이 많은 황금노선을 땄으니, 이제 열심히만 일하면 금방 돈을 모으고 집도 살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건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다. 예상했던 수입액은 하루 14시간씩 주 6일을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이었다. 아니 그렇게 해도 벌 수가 없는 돈이다. 화장실을 가거나 밥 먹을 시간도 없을 만큼 바쁘게 일해야 하는 데다, 이 계산에는 각종 부대비용이나 위험비용 등이 빠져 있다. 가령 수수료나 차 할부금, 교통 범칙금, 도난이나 분실, 그리고 개인 사정으로 배송을 못하게 됐을 때 물게 되는 벌금 등등 말이다.

리키가 아들 문제로 하루만 쉬겠다고 하자 관리자는 윽박을 지른다. 하지만 그건 관리자의 인성 탓이 아니다. 그의 말에는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이 담겨 있다. 회사는 애플·삼성·자라 등 거대 기업으로부터 배송 물량을 따내기 위해 다른 택배업체와 경쟁해야 한다. 경쟁에서 이기려면 고객이 실시간으로 배송을 추적하는 시스템하에서 칼같이 배송 시간을 맞춰야 한다. 관리자는 리키에게 “네가 갖다 주는 물건에만 관심이 있지, 누가 너에게 관심을 두느냐?”고 묻는다. PDA 단말기의 재촉에 따라 움직이고, 오직 상품을 매개로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리키의 노동 상황은 일찍이 마르크스가 말한 ‘물화’와 ‘소외’의 개념에 정확하게 일치한다.

2. 돌봄노동자, 애비

그렇다면 인간과 인간이 접촉하는 돌봄노동자의 상황은 다를까. 리키의 아내 애비는 요양보호사다. 학습지 교사처럼 하루 6~7명의 가정을 방문해 씻기고 먹인다. 애비는 정이 많은 사람이다. 환자와 개인적으로 친해지지 마라는 규정이 있음에도, 애비는 환자 이야기도 듣고 자기 이야기도 하면서 가족처럼 대하려 애쓴다. 하지만 어떤 날은 환자가 어깃장을 놓기도 하고, 상태가 나쁜 날엔 똥을 싸서 칠하고 할퀴기도 한다. 그걸 치우려면 정해진 방문시간이 초과되지만 중간에 나올 수도 없다. 애비는 관리자에게 이런 사정을 말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정해져 있다. 다른 사람을 추가 투입할 수 없고, 건당으로 계산되기 때문에 초과 시간을 급여에 산정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이동시간도 노동시간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비용도 본인 부담이다. 리키의 배송차를 계약하느라, 차를 팔게 된 애비는 버스를 기다리느라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 방문 시간을 맞추기도 힘들고, 먼 곳에 사는 환자는 맡을 수 없다.

애비는 점점 더 수렁으로 빠져들어 가는 악몽을 꾼다. 리키는 친정아버지처럼 폭력적인 남자는 아니지만, 애비의 차를 팔면서 “앞으로 돈은 내가 벌 터이니, 당신은 일을 줄이라”고 말했다. 맞벌이 부부에서 여자의 일은 남자의 일에 비해 무시당하기 일쑤다. 애비도 아침 7시 반부터 저녁 9시까지 역한 냄새를 참아 가며 죽어라 일하지만, 아이들 관리는 애비의 몫이다. 애비는 이동시간마다 전화기를 붙들고 애들을 챙기느라 여념이 없다.

어린 딸은 집을 치우고 아빠도 돕지만, 사춘기 아들이 말썽이다. 아들의 반항도 이해는 간다. 대학을 가 봐야 콜센터 상담원이 되는 현실에서 전망을 찾기가 어려운 탓이다. 더 나은 미래를 ‘선택’해야 한다느니, 너 자신에게 ‘기회’를 주라느니 하는 신자유주의적인 언사에 헛웃음이 나온다. 친구들과 그라피티를 하며 그림에 대한 재능과 사회에 대한 냉소를 푸는 아들은 생계노동으로 지친 부모와 점점 말이 통하지 않음을 느낀다.

3. 한국의 상황

리키의 고향은 맨체스터다. 산업혁명의 발상지에서 자란 그가 오랫동안 건설노동자로 일하다가 지금은 플랫폼 노동자가 됐다니, 마치 자본주의 노동의 변천사를 보는 듯하다. 일종의 ‘전형’에 해당하는 그의 상황은 동시대 한국에서도 동일하게 펼쳐진다.

올해 6월 민주노총에서 대리운전·퀵서비스·음식배달 등 플랫폼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의하면, 이들의 월평균 수입은 313만원이었다. 그러나 수수료 등 각종 비용을 제외하면 수입은 165만원에 불과했다. 노동시간은 대기시간을 포함해 하루 13.7시간이고, 주 6일간 근무했다. 업체는 이들을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고 프리랜서와 같은 개별 사업자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11월 서울행정법원이 택배기사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애비의 상황도 한국에서 비슷하게 펼쳐진다. 이동하면서 “시리얼은 어디에 있다, 컴퓨터는 15분만 해라, 숙제랑 가정통신문은 식탁에 올려놔라”고 전화하는 애비의 모습은 한국의 여성노동자들에게서 숱하게 봐 왔던 모습이다.

“가족은 말썽이 나기 마련이다.” 인정사정없는 관리자가 리키에게 한 말이다. 가족돌봄 문제는 변수가 아니라 상수라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에게 가족을 돌볼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 하지만 돌봄에 전혀 시간을 쓸 수 없게끔 노동이 조직돼 있다. 아이들은 방치되고, 불화는 잦아지며, 불안정 노동자의 삶은 대물림된다. 아무도 가족을 돌볼 수 없는 환경에서 누가 아이를 낳으려 할 것인가. 저출생은 필연이다.

영화평론가 (chingm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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