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자원이 부족하고 가난한 나라는 노동자들을 헐값에 오래 일하게 했다. 산업의 역군이라며 담금질했다. 그러는 사이 수많은 노동자가 쓰러져 갔고 이대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 힘을 받기 시작했다. 한평생 일만 하다 죽는 삶이 아닌 개인 일상을 회복하고 가족·사회와 함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춰 보자고 했다.

문재인 정부는 ‘과로사회 종식’을 말하며 노동시간단축을 꺼내 들었다. 줄어든 노동시간만큼 일자리를 나누자고 했다. 그러나 보수언론과 재계는 노동시간단축을 경제위기 원인으로 지목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정책이 그랬고 최저임금 인상이 그랬다. 시간이 갈수록 저항도 거세졌다. 기본급이 적고 수당이 많은 현 임금체계에서 노동자들 역시 노동시간단축을 그저 환영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었다. 노동시간단축과 잘못된 임금체계 개선을 함께 논의해야 할 정부는 언제나 그렇듯 손쉬운 방법을 택했다. 기업의 아우성을 잠재우겠다며 내년 1월 시행 예정인 50명 이상 300명 미만 사업장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 시행을 사실상 유예했다. 계도기간을 부여하겠다고 했고, 자연재해와 재난에 한정된 인가연장근로(특별연장근로)에 경영상 사유를 추가했다. 워라밸을 말하던 정부는 다시 후퇴하고 말았다. 법률이 정한 주 52시간 상한제 시행시기를 집행해야 할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법 집행을 임의로 유예하고 국회 입법권을 심대하게 침해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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