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내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달성할 수 없게 됐다. 경제환경과 고용상황, 시장수용성 등을 고려해서 최저임금위원회가 고심에 찬 결정을 내렸겠지만 대통령으로서 대국민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 것을 매우 안타깝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7월12일 새벽 최저임금위원회는 내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2.87% 오른 8천590원으로 결정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같은날 오전 청와대 참모들과의 회의에서 “송구하다”고 사과했다.

어쩌면 예견된 것이었다. 문 대통령은 올해 초 신년 기자회견에서 한 연설을 보면 ‘노동’이라는 단어를 한 번 사용했다. 지난해 신년 기자회견에서는 9번 언급했다.

<매일노동뉴스>가 노사정·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9년 10대 노동뉴스’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정부·국회가 ‘사회적 대화’ 싹 잘라

노사정·전문가 100명이 가장 많은 44표를 준 사건은 “탄력근로제 확대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기”로 요약된다. 문제의 발단은 지난해 11월 탄력근로제 확대에 합의한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였다. 경사노위가 그 유탄을 맞았다. 정부와 국회가 압박하는 가운데 경사노위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에서 노사정 합의가 이뤄졌다. 하지만 비정규·여성·청년 계층별대표 3명의 불참으로 경사노위 본위원회는 열리지 못했다. 경사노위는 8개월 만인 10월 본위원회를 정상화한 뒤에야 합의안을 통과시킬 수 있었다.

2기 경사노위에서 사회적 대화는 1기 초반만큼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국회가 사회적 대화의 싹을 잘라 버린 셈이다.

탄력근로제 확대는 노동시간단축 후퇴와 맞물린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11일 50명 이상 300명 미만 사업장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 보완을 이유로 시행유예나 다름없는 계도기간 부여를 공식화하고, 인가연장근로(특별연장근로) 사유를 확대하는 대책을 발표했다(공동 7위·30표). 노동계는 “노동시간단축 기조를 흔드는 정책”이라고 반발했다. 정의당은 이재갑 노동부 장관을 직권남용·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노동시간단축·최저임금 ‘수난사’

노동시간단축과 더불어 최저임금 인상률을 둘러싼 논란(5위·36표)이 불거졌다. 정부는 지난해 최저임금 속도조절론을 언급하며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했다. 올해는 최저임금위원회를 이원화하고 고용수준과 기업 지불능력·경제성장률을 반영하는 최저임금 결정체계 입법을 추진했다.

여기에 최저임금위가 최저임금 인상률을 2.87%로 결정해 기름을 부었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까지”, 올해는 “임기 내”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됐다고 사과했다. 소득주도 성장과 최저임금은 문재인 정부에서 가장 많이 두드려 맞은 정책이다. 재계와 보수진영의 공격을 견디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 논란은 정부가 올해 10월 비준동의안과 노동관계법을 국회에 제출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6위·32표). ‘선 비준 후 입법’이냐, ‘선 입법 후 비준’이냐 논란 속에서 정부는 후자를 선택했다. 하지만 정부안은 지금까지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정부와 국회가 손을 놓은 사이 헌법상 권리인 ‘노조할 권리’가 방치되고 있다. 전교조가 대표적이다.

노동시간단축과 최저임금 훼손은 “노동존중 사회 후퇴했다”(공동 7위)는 비판을 낳았다. 노사정·전문가 30명이 반환점을 돈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을 평가한 뒤 내린 결론이다.

내년에도 핫이슈로 떠오를 ‘플랫폼 노동’

플랫폼 노동은 이른바 ‘4차 산업혁명’ 속에서 거침이 없다. 10대 노동뉴스에서 2위(42표)를 차지할 정도다. 노동법 사각지대에 있는 플랫폼 노동 종사자들은 노동자임을 내세우며 조직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올해 출범한 플랫폼노동연대와 라이더유니온이 눈에 띈다. 플랫폼 노동 종사자가 실제 노동자성을 인정받은 사례(요기요 플러스)도 있다. 플랫폼 노동은 ‘2020년 노동현안 이슈’에서도 2위에 올랐다. 내년에도 핫이슈가 될 전망이다.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의 직접고용 투쟁(3위·41표)은 하반기를 달군 이슈다. 올해 8월 대법원의 직접고용 판결에도 도로공사는 자회사 전환을 밀어붙였다. 요금수납 노동자들은 김천 도로공사 본사 점거에 들어갔다.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 사태를 촉발한 책임자인 이강래 전 사장은 내년 4월 총선 출마를 이유로 사표를 내고 지역구로 내려갔다.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 직접고용 투쟁은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정책의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고 김용균 노동자 1주기 ‘위험의 외주화’ 경종

이달 10일은 고 김용균 노동자 1주기였다. 그의 죽음은 2016년 서울지하철 구의역 김군 사망사건에 이어 한국 사회에 충격을 던져 줬다. 문재인 대통령은 유가족을 만나 “용균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한다”며 진상규명과 후속조치를 약속했다. 그리고 9월 말 활동을 종료한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가 22개 권고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 당정이 이달 12일 내놓은 ‘발전산업 안전강화 방안’에서 위험의 외주화 금지가 빠졌기 때문이다. 정부는 또 이행점검위원회를 구성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고인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이사장을 맡은 ㈔김용균재단이 10월 출범했다. 김미숙 이사장은 “비정규직이라서 당한 용균이의 처절한 죽음, 그 이전에 수많은 노동자들의 죽음이 잊히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노조파괴=감옥행”(4위·38표)을 재확인한 법원 판결이 속속 이어졌다. 삼성에버랜드·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해 책임자들은 실형을 선고받았다. 한일관계를 일순간 얼어붙게 만든 일본의 수출규제와 이에 대항한 ‘노 재팬’ 불매운동(공동 7위·30표)도 10위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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