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기원 청년유니온 노동상담팀장

2019년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예년보다 춥지 않은 날씨에 그나마 나은 한 해를 마무리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되지만,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면 쉽지만은 않은 시간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돌아보면 안 그랬던 때가 있었겠냐마는 올해는 유난히 어수선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그 어수선함은 역설적으로 대한민국에 지금 무엇이 결여돼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 줬다.

그 징조는 봄부터 드러났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1기는 취약계층을 대변할 수 있는 계층별대표들을 본위원회 위원으로 위촉하면서 주목을 받았고, 청년유니온도 계층별대표로 참여해 힘을 보태고자 했다. 하지만 결국 사회적 대화기구는 파행을 거듭했다. 정부와 경사노위의 거대단체들은 탄력근로제 확대안을 통과시키려고만 했다. 경사노위는 대화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 그저 정부가 하고자 하는 무언가의 명분을 쌓기 위한 과정일 뿐이었다. 결국 경사노위 1기는 집단 사퇴와 해촉을 끝으로 막을 내렸고, 지난 10월 여성계 대표 노동자위원은 위촉조차 하지 못한 반쪽짜리 경사노위 2기가 출범했다. 그리고 그 첫 회의에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탄력근로제 확대안이 그대로 통과했다.

총선이 불과 반년도 남지 않은 이 시점에 국회 역시 논란의 한복판에 서 있다. 파행을 거듭하며 간신히 넘어온 탄력근로제 확대안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탄력근로제가 확대돼서는 안 된다는 입장과는 별개로, 그렇게 밀어붙이던 법안이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저 씁쓸함만 남는다. 정쟁 속에서 민식이법(도로교통법 개정안)은 간신히 본회의의 벽을 넘었지만, 포항지진특별법과 유치원 3법 등 민생법안들이 여전히 선거제 개혁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에 밀려 표류하고 있다. 공직선거법은 후퇴에 후퇴를 거듭했다. 그리고 20대 국회 1호 발의법안이었던, 모든 정당이 합의해 안을 만들었던 청년기본법 제정안도 3년 반째 국회 본회의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여름을 들썩였던 ‘조국 사태’는 다시 한 번 청년을 사회에 등장시켰지만, 언제나 그랬듯 청년이 아닌 사람들만이 ‘청년’을 호명할 뿐, 그 안에 청년은 없었다. 청년들은 서초동과 광화문 사이에서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못했다. 언론은 일부 유명대학들의 학생회 집회가 마치 전체 대학생과 청년들 의견인 것처럼 보도했고, 청년들이 ‘공정’을 원한다며 ‘공정한 경쟁’을 만들 것을 촉구했다. 그에 발맞춰 정부는 공정한 경쟁을 위해 대입 수능 비중을 대폭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것 역시 학생부 종합전형이 문젯거리가 되니 축소하겠다는 1차원적 대책에 불과했다.

청년을 둘러싼 조국 사태의 불편함은 ‘공정’과 ‘불공정’ 논쟁에서부터 기인한다. 그 논쟁의 목표는 어떠한 ‘경쟁’인지다. 학교 수업 중에는 ‘협력’과 ‘동료’를 강조하지만, 상대평가를 통해 옆자리 친구를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는 아이러니가 지금의 현실이다. 우리 눈앞에 놓인 근본적 문제는 ‘공정’과 ‘불공정’이 아니라, 어떻게 ‘협력’이 가능한 사회를 만들 것인지에 있다.

하지만 우리는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사노위에서, 그리고 국회에서 수많은 파행을 겪고 지켜봤다. 우리 사회는 사회적 대화로 불리는 무언가, 그리고 서로가 양보해 결론을 찾아가는 협의와 협상을 제대로 경험해 보지 못했다. 그리고 해 보지 못한 것을 넘어 어쩌면 할 줄 모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해 본 적이 없다는 것, 할 줄 모른다는 것, 그리고 아직 그것을 인정하지 못한다는 것. 그래서 대한민국은 아직 무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염원은 여전히 절박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이 무엇인지를 지난하지만 정밀하게 논의하고 고심하는 과정을 밟겠다는 의지일 것이다. 이슈로 떠오른 ‘공정과 불공정’이 아니라 ‘경쟁과 상생’ 사이에서 함께 살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명확히 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 그것을 가로막는 ‘사회적 불평등’이 무엇인지를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한다. 우리 사회가 제대로 ‘사회적 협상’을 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자는 것은, 그러니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유일한 길임에는 틀림없다. 그래야만 우리는 더 나은 2020년에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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