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FTA 노동조항 위반으로는 세계 최초로 실시되는 전문가 패널 조사.” 올 한 해 열심히 달린 끝에 들은 소식이다. 12월30일부터 우리나라와 유럽연합(EU) 사이에 한·EU 자유무역협정(FTA) 13장 노동·환경 관련 조항 이행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전문가 패널을 개시한다. 이미 예고된 일이라고는 하지만 많이 안타깝다. 유럽연합이 지난해 말 우리나라가 자유무역협정(FTA) 13장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된 갈등이 1년을 넘기고 있는데도 별다른 해결책이 없다. 불명예만 남았다.

정말이지 이번만큼은 ‘세계 최초’가 자랑스럽지 않다. 그것도 ‘노동조항 위반’이다. 유럽연합과 선진국의 자국 이익을 위한 공연한 트집잡기로 보는 이도 있다. 전문가 패널 결과보고가 당사자 사이에 어느 정도 구속력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자유무역을 행하는 그 어떤 나라도 경험하지 못한 ‘노동기본권’조차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나라로 평가돼 세계만방에 알려질 위기에 처했다. 공교롭게도 노동존중 사회를 제1의 가치로 내세운 정부에서 말이다. 결과를 속단해서는 안 되겠지만 전문가 패널이 개시된다는 사실만으로 현장 노동자들에게는 큰 부끄러움이다.

문제 삼는 노동조항 핵심에는 잘 알고 있듯이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98호와 87호가 있다. 기본협약 비준은 우리나라가 유럽연합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면서 한 약속이다.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니 협정위반 여부를 따져 보는 것은 그들의 권리가 맞다. 심각성은 우리나라의 대응과 처지에 있다. 협정 위반이 아니라는 정부 변명을 말하는 게 아니다. ILO 기본협약을 비준할 여지가 있는지, 정부에 비준을 위한 전략이 있는지 의문이라는 말이다. 무역협정이든 다른 분야든 간에 ILO 기본협약 비준 여부가 번번이 문제될 것이다. 심각성을 알기나 하는지 묻고 싶다.

선진국들이 우리나라의 노동인권 보장을 위한 제도와 정부 차원의 의지에 의문을 품고 있음은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난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NCP에서 우리나라 NCP에 대한 동료평가(Peer Review)가 있었다. OECD는 각 회원국에서 활동하는 다국적기업이 지켜야 할 노동인권환경에 관한 기준(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각국에서 이행하도록 요청하고 있다. 회원국 중 순서를 정해 매년 동료평가를 하는데, 지난주에 우리나라 NCP 활동을 평가했다. 이틀간 다양한 방법으로 조사와 평가가 촘촘히 진행됐다.

특히 OECD 노동조합자문위원회(TUAC)에서 온 담당자(블레이크)는 우리나라 NCP 활동에 많은 비판을 쏟아 냈다. 이는 정부의 노동인권보장에 대한 인식과 구조절차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그중 일부는 분명 국내 제도와 사정을 잘 이해하지 못한 탓도 있었다. 하지만 일일이 반박하기에는 우리가 처한 전체적인 노동환경이 노동선진국과 비교해 자랑할 정도가 아닌 것은 분명했다. ILO 기본협약조차 비준하지 않은 나라 아닌가.

저물어 가는 2019년을 돌아보면 ‘전문가 패널 조사’처럼 그저 실망의 연속이다. 노동제도만 보더라도 어느 것 하나 뚜렷하게 개선되거나 만들어진 것이 없다. 최저임금 인상부터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이르기까지 노동자들이 원하는 온전한 모습의 결과는 없었다. 주 40시간이 익숙해진 지 한참인데, 마치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 도입이 전에 없던 아주 큰 성과인 양 선전한다. 거기에 예외까지 왕창 늘리는 정부 모습에 노동현장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많은 이들이 “문재인 정부는 노동에 관심이 없다”고 한다.

ILO 기본협약 비준과 구체적인 노동정책에 대한 1차적인 책임은 정부에 있다. 하지만 좀 더 생각해 보면 근본적인 책임은 법률이 만들어지지 않은 데 있다. 정부를 두둔할 생각은 없지만 국회가 그 어떤 노동법률도 생산해 내지 않은 원인이 훨씬 더 크다. 우리가 보는 국회는 껍데기뿐이다. 헌법에서 명령한 기본적인 책무를 다하지 않은 최근 모습은 위헌 그 자체다. 헌법재판소에서 위헌결정이 났거나 한시적 적용기한이 끝나 가는 노동제도까지도 국회는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는 무슨 정책을 쓰더라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 2020년 새해에는 국회에 위헌행위에 대한 책임을 철저히 물어야 한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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